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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기자의 화식열전> 국민연금은 되고, 삼성은 안되고?
‘업신여기거나 냉대한다’는 뜻의 ‘백안시(白眼視)’라는 말은 3세기 중국 진(晉) 나라 때 생겨났다. 이 때는 위촉오(魏蜀吳) 삼국이 하나로 모아지던 난세로, 당시 세상을 등지고 은거한 죽림칠현(竹林七賢) 가운데 완적(阮籍)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싫어하는 사람이 찾아오면 노려보고(白眼), 반가운 사람이 찾아오면 그윽히 바라봤다(靑眼)고 한다.

최근 일명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야당의원들에 의해 발의됐다.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가치가 보험업법이 정한 계열사 주식보유 한도인 총자산의 3%가 넘는데, 이를 시가가 아닌 취득원가로 평가토록 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등 일가에 특혜를 주고 있으니 이를 바로잡자는 내용이다. 그런데 왠지 삼성을 보는 눈이 백안인듯 여겨진다.

사실 시가평가 원칙은 옳다. ‘몰빵’ 투자도 막아야 한다. 하지만 죽림칠현도 아닐진데 현실 상황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가치가 ‘3%한도’을 넘어선 이유는 주가가 26배 이상 급증한 까닭이다. 국민연금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 7%도 운용자산의 3.31%에 달한다. 삼성전자 주가가 정점이었던 2012년말에는 이 비중이 4%를 넘기도 했다.

국민연금은 삼성과의 관계도 삼성생명만큼이나 각별하다. 삼성전자 단일 최대주주이며, 삼성전자 2대주주인 삼성물산의 단일 최대주주다. 삼성그룹 상장사 17개 가운데 14개사에서 5%이상 대주주다. 국민연금의 삼성 주식 가치는 삼성 특수관계인이 가진 지분 가치에 버금간다. 20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의 ‘삼성 몰빵’도 막아야 하는 게 아닐까?

반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투자는 주주들이 낸 자본으로 주로 이뤄졌다. 투자 차익도 대부분 자본 항목(기타포괄손익누계액)으로 관리된다. 엄밀히 따져 고객 돈과는 거리가 있다. 또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에 이토록 오랜기간 투자하지 않았다면, 과연 오늘날의 삼성전자가 가능했을까?

그래도 만약 법을 고쳐 삼성전자 지분 매각을 끝내 강요한다면, 그 피해는 삼성생명 계약자와 삼성그룹 투자자 등 국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지분 매각 차익이 당기손익에 반영되면 수조원의 세금을 내야하는데, 세금을 낸 만큼 자본이 줄면 보험 계약의 안정성도 같은 정도로 훼손된다. 지분을 팔더라도 경영권 안정을 지키려면 넘길 곳은 삼성 계열사가 될 확률이 높다. 결국 국민연금을 포함한 삼성 관계사 주주들에 부담이다.

삼성생명 총자산에서 삼성전자 주식가치가 3%를 넘은 지는 이미 10년이 넘었다. 오랜기간 합법이었는데, 지금와서 이를 새법으로 규제하게 되면 일사부재리 원칙에도 어긋날 수 있다.

불과 몇 해 전 정치권은 국민연금에 ‘10%룰’(지분 10% 이상 보유주주의 공시의무 강화)을 완화해주는 특혜까지 줬다. 삼성생명도 국민연금의 절반에 가까운 200조원의 국민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특혜까지는 아니더라도 백안시는 말아야 한다. 

홍길용 기자/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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