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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석영 “역사에 대한 부담감 벗고 보편적 현실 조명 위해 집필”
[헤럴드경제(런던)=정진영 기자] “사실 나는 역사와 문학의 관계라는 주제를 다루는 이 자리가 편하진 않습니다. 1998년 출감 이후 나는 역사를 정면으로 다루는 일을 피하고 보편적인 현실을 글에 담는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황석영(71) 작가는 1970~80년대 민족문학의 상징이었다. 그는 늘 이념과 사상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점에 서있었고, ‘장길산’ ‘무기의 그늘’ 등 투철한 시대정신으로 무장한 그의 작품은 줄줄이 문제작으로 꼽혔다. 그런 그에게 망명 5년과 수감 5년 세월은 훈장과도 같았다. 그랬던 그였기에 짙은 회한 섞인 발언은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그의 발언은 작가는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말처럼 들렸다.

황 작가가 지난 8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런던 얼스코트에서 진행 중인 2014 런던도서전의 부대 행사로 마련된 문학 세미나에 참석했다. 그레이스 고 런던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세미나에는 파키스탄 출신 소설가 카밀라 솀시와 현지 독자들이 함께 했다.

황석영 작가가 지난 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얼스코트에서 진행 중인 2014 런던도서전의 부대 행사로 마련된 문학 세미나에 참석해 질문을 받고 있다. [런던=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황 작가는 “세계적인 거장 오에 겐자부로와 르 클레지오가 내게 이야깃거리가 많은 한국에서 사는 것이 부럽다는 말을 한 일이 있는데 내심 기분이 좋지 않았다”며 “이야깃거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역사적인 고통도 많았다는 말과 같은데, 나는 그들의 자유가 부러웠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황 작가는 70~80년대 내내 군사정권을 향해 몸과 글로 맞섰다. 통일 문제에도 적극적이었던 그는 정부 허가 없는 방북으로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문학은 출감 이후인 1998년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며 70~80년대의 행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회상했다.

황 작가는 “다시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당시와 같은 선택을 하겠지만, 돌이켜보면 작가로서는 대단히 불우했다고 생각한다”며 “역사적 중압감에 눌려 작품을 집필하는 일이 부담스러웠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는 “간혹 외국에서 집필을 하게 되면 풍부한 상상력으로 글을 쓸 수 있었는데 한국으로 돌아오면 심한 부담감을 느끼곤 했다”며 “역사에 대한 작가의 책임을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쑥스럽다. 서양 작가들처럼 자유롭게 글을 쓰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황 작가는 문학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지난 2005년 런던 폭탄 테러 현장과 파리 폭동 현장을 직접 보고 광주에서 벌어진 참혹한 일들이 우리만 겪은 특별한 일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며 “젊었을 때엔 사회를 바꿔보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고 여전히 정부가 불편하지만, 지금은 동시대 사람들의 삶과 관계를 최선을 다해 표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작가로서 불우했다는 고백과는 달리 황 작가는 한국 문학 시장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한국은 본격 문학이 100만 부 이상 팔릴 수 있는 나라다. 한국이 전쟁의 상흔을 딛고 불과 30여년 만에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은 문화적인 의욕과 열망이 강했기 때문”이라며 “한국의 독자들은 작가가 시대를 배신하지 않는 한 끝까지 작가를 사랑한다. 그런 한국에서 태어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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