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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묵비권 고지않고 남성이 여성을 단둘이 조사하고…”
국정원 합동신문센터 인권침해 실태
탈북자 77% 묵비권 들은적 없고
신문내용 마지막 확인절차 생략
10대여성 남성에 조사 받기도


“혹시 여기 답하러 오신 분들 중에 ‘대답하기 싫은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고 들으신 분 계신가요?”
“그런거 없습니다. ‘허위로 진술하면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은 들었습니다만…”
“혹시 자신이 진술한 내용을 선생님(국정원 조사관)이 컴퓨터에 기억(입력)한 걸 보여주신 경우나 원한다면 볼 수 있다는 말을 들으신 분은요?”
“(40대 남성)제 경우에는 진술한거 선생님이 보여주고 사인하라 했습니다.”
“여성분들 중에 남성조사관과 단둘이 조사받으신 분은 계신가요?”
“(10대 여성)저는 남성 조사관과 단둘이 조사받았습니다. 아버지처럼 친절하셨습니다.”

간첩 증거위조 사건과 관련해 핵심 증인이자 간첩사건 피의자 유우성 씨의 여동생이 합동신문센터에서 강압에 의해 거짓증언을 했다는 폭로를 하면서 합동신문센터가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지난 4일, 합동신문센터가 마침내 문을 열었다. 기자들을 초대해 탈북자들과 만나 인터뷰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때마침 기자는 대한변호사협회가 발간한 ‘2013 인권보고서’에 실린 황필규 변협 인권위원의 ‘북한이탈주민의 국내정착과정에서의 인권문제:합동신문을 중심으로’라는 보고서를 보고 보고서에 나온 질문을 탈북자들에게 던질 기회를 얻었다. 그 결과 보고서에 나온 묵비권 및 사전권리 고지 없음, 여성에 대한 남성조사관의 단독 조사 등의 인권 침해적 요소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경기도 가족여성연구원의 실태조사 결과 약 50%의 북한이탈주민이 조사기간이나 조사 이유, 독방구금 등에 대한 사전 설명이나 안내를 받지 못했다고 나온다. 실제로 4일 가진 인터뷰에서 탈북자들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이 얼마나 이곳에 있을지에 대해 공식 안내를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대부분 센터에 남아있는 다른 탈북자나 먼저 탈북한 가족들로부터 알음알음 ‘두달정도 있을 것’이라는 등의 내용을 전해듣는 정도였다.

탈북자의 76.8%가 묵비권을 고지받지 못했다던 실태조사결과와 마찬가지로, 이날 인터뷰에 응한 탈북자 중 어느 누구도 묵비권을 고지받았다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하면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을 조사관으로부터 들었다던 탈북자도 있었다. 엄중한 감시와 경계를 받고 있는 통제사회 북한에서 살다온 이들은 이 말이 인권 침해적인 요소라는 사실을 인지조차 못했다.

국정원 합동신문센터 전경. [합신센터 제공]

인터뷰에 응한 3명의 여성 중 2명은 여성조사관으로부터 조사를 받았지만 10대 여성은 남성 조사관과 단둘이 조사를 받았다고 했다. 국정원 측은 이에 대해 “탈북자 중에는 여성이 많지만 조사관 중에는 남성이 많아 어린 여성이나 할머니들의 경우 남성 조사관의 조사를 받게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조사실을 소개하면서 “여성 탈북자는 여성 조사관과 남성 조사관으로 이뤄진 2인조로부터 조사 받는다”던 설명과 달라진 것이다.

심지어 신문내용을 기록한 내용을 마지막에 확인해주거나, 확인해볼 수 있음을 알려준 경우도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5명 중 10대 여성 한 명은 ‘선생님이 보고싶다고 하면 보여주겠다고 했다”고 답했고, 40대 남성의 경우 “읽어보라고 주고, 읽은뒤 사인했다”고 답했지만 나머지 3명은 신문내용을 기록한 것을 읽어볼 수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40대 남성의 경우 실제로 읽어보고 사인도 했지만, 이는 참고인 조서나 피의자 조서로서 법적 효력을 갖게 하기 위해 한 것일뿐 남성의 권리를 실현시켜주기 위한 장치는 아니었다. 심지어 그 남성은 자신의 진술이 법정에서 증거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이에 대해 황 인권위원은 “북한이탈주민법은 분명 탈북자보호를 위해 임시보호 등 필요조치를 하라”며 하위법에 위임한 것을, 시행령에서는 ‘보호여부 결정을 위해 필요한 조사도 할 수 있다”고 한 것은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다”며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조치를 법률이나 시행령에 정하지 않고, 국정원장에 포괄적으로 위임한 것 역시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보호신청장의 보호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조사와 간첩혐의에 대한 조사가 혼재된 불법적인 강제수사 가운데서 탈북자들은 변호인의 조력권을 박탈당한 채 묵비권 등 기본권리에 대한 고지 없이 조사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황 인권위원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행정절차로서 보호결정과 범죄수사로서 형사절차를 엄격히 분리하고, 영장주의의 취지를 반영해 조사기관의 명확화, 이의신청제도 도입, 변호사의 접견권, 재판청구권 등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개선책을 제시했다.

김재현 기자/madp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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