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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박심(朴心), 있는거야 없는거야?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새누리당 서울시장 경선후보인 정몽준 의원과 김황식 전 총리의 ‘박심(朴心ㆍ박근혜 대통령 의중) 논란’이 연일 계속되다보니 이제는 경선 공정성 시비로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당 지도부가 박심은 없다고 공언했지만, 아무래도 경선이 끝날 때까지 후보 간 박심 논란은 더욱 가열될 것으로 관측됩니다.

그런데 박심 논란이 3개월 가까이 이어지다 보니 이제는 이런 의구심도 생깁니다. 과연 박심이란 게 있는 걸까요? 친박에게 기대려는 후보들이 만든 가공의 그 무엇은 아닐까요? 아니면, 박심이 있다고 한다면 박심은 도대체 누구를 향하고 있는 걸까요? 박심이 움직이고 있는 걸까요?

▶김 전 총리에게 박심이 있다? = 서울시장 경선 후보인 김황식 전 국무총리에게 집중됐던 박심 논란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6ㆍ4 지방선거를 앞둔 지난 1월 새누리당 지도부는 선거 승리를 위해 득표력 있는 중량급 인사를 수도권을 비롯한 주요 격전지에 후보로 내세워야 한다는 ‘중진차출론’을 부각시킵니다. 그리고 이 당시에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된 인물이 김 전 총리입니다. 친박 주류가 대다수인 당 지도부에서 왜 갑자기 MB정권 시절 헌법기관인 감사원장을 거쳐 국무총리로 장수한 친이계 김 전 총리를 미느냐라는 의구심으로부터 ‘박심 논란’이 시작된 셈이지요.

그런데 이 와중에 김 전 총리가 서울시장 출마 여부에 대해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은 채 돌연 미국행을 택했습니다. 그러다 새누리당이 지방선거 경선 일정을 최종 확정할 시점, 김 전 총리는 귀국을 합니다. 그러고선 그는 “비록 늦었지만 지금부터 나라 사랑을 보여줄 것”이라면서 서울시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집니다.

이에 맞춰 새누리당도 공천 신청 접수 마감을 김 전 총리 귀국일 다음날로 연장합니다. 그리고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박근혜 캠프 조직총괄단장을, 2012년 대선 때는 새누리당 국민소통본부장을 맡았던 친박계 인사인 이성헌 전 의원이 김황식 캠프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습니다. 정 의원이 당선되면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군으로 우뚝 서며 박 대통령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짜여진 각본에 맞춰 척척 준비해나가는 이같은 김 전 총리의 선거 준비과정이 “박심이 김 전 총리에게 있다”고 유추하게 만든 대목입니다. 주류인 친박계가 김 전 총리를, 비주류가 정 의원을 민다는 얘기에 신빙성이 생기기 시작한 무렵도 이쯤입니다.

▶김 전 총리 지지율 답보… 박심은 떠났다? = 그런데 김 전 총리가 점점 노골적으로 박심을 이용(?)하기 시작한다는 느낌을 주게 한 것도 바로 이때부터 입니다. 박심 논란이 한창 불거질 무렵 김 전 총리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청와대 핵심 실세인 김기춘 비서실장과의 친분을 과시했습니다. 김 전 총리는 한 라디오에서 “김 실장님과 이런저런 문제에 관해 상의를 한 적은 있다”면서 박심 논란에 불을 지폈습니다. 차후 청와대 측에선 “김 비서실장의 취임을 축하하는 통화였다”고 해명했지만 석연치 않은 대답이었습니다. 당시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는 선거 중립을 지켜야 하는데 자꾸 오해의 소지를 만드는 발언들을 하고 있다”면서 불쾌감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김 전 총리의 발언이 실수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날 이후 김 전 총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 친박계가 돕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오히려 박심이 본인에게 있다고 쐐기를 박았기 때문입니다. 답보상태에 빠진 지지율을 반등시키기 위한 김 전 총리의 계산된 발언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올 법 합니다.

그런데 여의도에선 한두 달 전만해도 김 전 총리에게 박심이 있다는 말이 이미 구문이 된 분위기입니다. “역전 굿바이 히트를 치겠다”고 장담했던 김 전 총리의 지지율이 여전히 움직이지 않자, 친박 주류의 지지설이 사그라지는 형국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지율이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박심이 떠났다’고 보는 건 결과론적인 해석이긴 하지만, 나름 일리도 있습니다. 김 전 총리 측은 “이혜훈 최고위원이 결국 자신의 세를 정 의원에게 몰아주고 그의 지역구(서울 동작을)를 물려받을 것이라는 빅딜설이 있다”고 역공을 취하며 이 최고위원의 컷오프(Cut off) 탈락을 주장했으나 새누리당에선 3자가 경선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기 때문입니다.

▶박심이 있기를 바라는 후보들 = 박심 논란이란 이른바 ‘청와대가 점찍은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 어째 돌아가는 사정을 보니 후보들이 ‘없는 박심‘이라도 만들어 낼 기세입니다. 후보들이 서로 앞다퉈 박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오히려 ‘박심을 받고 있는 사람’이란 듯 인상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 의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 방문해 “좋은 추억이 많아서 찾아왔다”고 했고 심지어 “박 대통령과 초등학교 동기동창이니 친박으로 분류해달라”고 기자들에게 농을 던지기도 합니다. 친박 원로인 최병렬 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표를 영입했다고 성급하게 발표했다가 이를 번복해버린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이혜훈 최고위원은 “내가 원조 친박”이라고 말합니다. 박심 논란을 제기하며 김 전 총리를 몰아붙였던 후보들 스스로 박심에 기대려는 모습입니다.

이같은 ‘박심 마케팅’이 친박 성향의 표심을 끌어들이는 데 효과가 있어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새누리당 서울시장 경선의 경우 대의원, 당원, 국민선거인단, 여론조사를 각각 2:3:3:2의 비율로 적용해 후보를 선출하기 때문에 서울시 당협위원장의 70%에 달하는 친박 성향의 당협위원장 당심(黨心)의 향배가 선거에 크게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아울러 박대통령의 지지율이 꾸준히 50%대 후반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른 그 누군가에게 박심이 쏠리는 걸 경계하면서도 정작 후보 본인들이 박심에 기대고 싶어하는 상황은 경선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 때문에 경선후보들이 박심 마케팅을 조장하는데 얼마나 사활을 걸지, 한발 물러서서 지켜본다면 이 또한 흥미롭겠지요. 다만, 유권자가 투표를 하는데 있어 지켜야할 최소한의 덕목을 잊어선 안됩니다. 후보자들이 “내가 누구랑 친하다”, “누가 나를 밀어준다”고 하더라도 그 말에 현혹되지 않고 후보자의 비전이 무엇인지, 공약은 어떻게 되는지, 공약의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고민해보고 소중한 한표를 던져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야 권력에 기대려는 후보들이 사라질 테니까요.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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