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용기자의 貨殖列傳
21일은 현대그룹 창업자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13번째 기일이다. 굳이 이날을 꺼내는 이유는 14일 현대제철 등기임원직을 내려 놓은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MK) 때문이다.정 명예회장은 생전에 일관제철소를 짓겠다는 꿈을 가졌지만, 끝내 이루지 못했다. MK는 이같은 선친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보철강을 인수했고, 2005년부터는 아예 현대제철 등기임원을 맡아 고로 건설을 직접 지휘했다. 그리고 지난 해 고로3기 가동으로 일관제철소가 완성되자 등기임원 직을 내놓았다. 정 명예회장의 13주기는 ‘일관제철소 건설 ’이라는 꿈의 대물림이 이뤄졌다는 의미가 크다.
눈에 보는 것으로는 일관제철소가 가장 크지만, 사실 정 명예회장과 MK 간에는 보이지 않는 부전자전이 많다.
MK는 얼마전 사흘간 유럽 4개국을 도는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했다. 내달 77세 희수(喜壽)가 되는 현역 최고령 재벌총수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정 명예회장도 생전 전세계 현장 곳곳을 직접 발로 누빈 것으로 유명하다.
오래 입어 반질반질해진 MK의 양복도 선친과 닮았다. 정 명예회장도 생전 와이셔츠가 헤지면 소맷단만 바꿔 입곤 했다. 주변에서 “새로 장만하시라”라고 하면 “아직 입을만하다”며 손사래 치는 것도 부자가 꼭 같다고 한다. 정 명예회장이 살던 청운동 자택은 삐그덕거리던 마루와 낡은 가구 뿐이었다. 침실에도 침대 하나, 책상 하나가 전부였다. MK의 자택은 아직 공개된 적이 없지만, 선친과 마찬가지로 화려함이나 사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게 주변의 설명이다.
유달리 크고 거친 MK의 손은 선친의 모습을 가장 짙게 떠올리게 한다. 현대그룹이 대기업이 된 것은 MK가 성인이 된 지 한참 뒤다. MK는 직접 삽질까지 선친을 도왔다. 거친 손에는 부자간 동고동락의 추억이 배어 있다. MK는 말이 2세지, 실제로는 창업 세대다.
대기업 총수들이 최선의 삶을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큰 기업을 만들어, 더 많이 일자리를 만들고, 나라에 기여하기 위해서다. 기업가 정신(entrepren eurship)의 핵심이다. 돈은 꿈의 결과일 뿐이다.
미국인들은 록펠러나 카네기를 위인으로 칭송한다. 그런데 우리는 ‘재벌’이란 말 탓인지 기업인 칭찬에 인색하다. 이번 정 명예회장의 기일엔 재계 모두가 기업가 정신을 기리며 잠시 묵념하는 게 어떨까. 또 내달 MK의 희수연에도 다함께 박수를 보내봄 직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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