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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큐레이터의 예민한 사물읽기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처음엔 불이 들어온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온 사람들은 자기네들끼리 수다에 빠져 진동벨이 보내는 깜빡이는 신호따위 관심 없다. 이내, 점점 깜빡이다 결국 부르르르 진동한다. 다그르르 소리내며 테이블 위를 ’기어‘갈때 비로소 커피를 가지러 간다. 흔한 커피 전문점의 풍경이다.

진동벨한테 삼단 논법이 있다면 무엇일까. ‘기다리라, 그러면 벨이 울릴 것이다, 재빠르게 와서 커피를 받아가라!’ 정도이지 않을까. 큐레이터의 눈에 비친 사물은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품었다. 자하문로에 위치한 대안 갤러리 ‘시청각’의 큐레이터 현시원(34)씨는 2010년 10월부터 한겨레 21에 ‘너의 의미'란 제목으로 연재한 컬럼들을 초고로 ‘사물유람(현실문화ㆍ1만 6500원)’을 펴냈다.

큐레이터를 예술가와 일반인의 가교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큐레이터의 예민한 사물관찰기는 일반인들이 예술가를 이해할 수 있는 디딤돌 같은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몇 월 며칠 어떤 시간에 커피 전문점의 진동벨이 한꺼번에 몸을 떨기로 작정한다면 어떨까. 지진과 비교하고 싶지는 않지만 도시의 흔들림이 감지되어 하루쯤은 회사를 안가고 피신해 있어야 할지 모른다”
“과일가게라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과일행상의 천막”
“과일 3분 명상법. 빨간사과부터 초록과 검정 줄무늬의 수박까지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과일 모양새가 가져다주는 평온함이 있다. 자연의 색과 형태의 힘이다” …

등의 직관적이고 명료한 관찰은 읽는 내내 큐레이터의 사고과정을 훔쳐볼 수 있어 흥미진진하다. 1999년 한국에 최초로 상륙한 스타벅스가 지금껏 진동벨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를 스타벅스 트위터에서 찾아내고, 과일행상에 대해선 경제지의 기사를 인용하는 등 다양한 자료를 활용해 설명한다. 단순한 감상문이 아닌 보고서에 가깝다. 또한 한강 오리배를 놓고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언캐니(Uncannyㆍ두려운 낯섦, 친숙한 낯섦)’를 설명하는 등 인문학적 호기심도 깨운다.

저자인 현시원 큐레이터는 “주변 사물들에 대한 관찰, 사물과 상관없이 여기저기로 점프하는 이미지들과 듬성듬성 피어난 작은 생각들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예술가 특유의 극도의 예민함까지는 아니지만 큐레이터의 영민한 촉각으로 살핀 우리 주변의 사물은 범인들의 무딘 감각을 깨우기에 충분하다.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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