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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책도 사서도 없지만…매달 40만명 찾는 e 도서관 정체는…
“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육체와도 같다.”

로마 최고의 웅변가이자 정치가로 집정관을 역임한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명언이다.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로 종종 회자되지만, 여기에는 ‘도서관’의 역할과 의미를 강조하는 뜻도 담겨 있다. ‘책 없는 방’이 ‘영혼 없는 육체’처럼 껍데기뿐인 공간이라면, 반대로 책으로 가득 찬 도서관은 인류 영혼의 정수가 집대성된 ‘보물창고’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 국가들이 끊임없이 도서관을 늘리고 그곳에 들어갈 장서(藏書)를 확보하는데 열을 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우리의 다문화정책은 말 그대로 ‘영혼 없는 빈 껍데기’다. 국내에 거주 중인 외국인주민이 144만명을 돌파해 명실상부한 다문화사회에 접어들었지만, 이들의 영혼을 위한 도서관에 대한 정부 지원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7일 안전행정부가 발표한 ‘2013년 지방자치단체 외국인주민 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주민(장기체류 외국인ㆍ귀화자ㆍ외국인주민 자녀)은 지난해 1월 1일 기준 144만5631명이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주민등록인구 대비 2.8%에 이르는 수치다. 특히 외국인주민의 자녀도 19만1328명이나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또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국내 다문화가정 학생은 5만5780명으로 전체 학생의 0.86%를 차지하고 있다.

결혼이주민과 외국인근로자, 다문화가정 자녀의 학습과 정서함양을 위한 사회ㆍ제도적 지원 방안이 절실한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이들 외국인주민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서관은 다문화정책의 혜택을 거의 보지 못하고 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지난해 10월 문화관광체육부에 ‘공공도서관의 다문화자료실 설치 현황’을 정보공개 청구를 한 결과, 전국 공공도서관 중 다문화자료실이 설치된 곳은 현재 29곳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

다문화자료실의 설치가 진행 중인 공공도서관 10곳을 포함해도 전국의 다문화자료실은 39곳에 불과하다. 국내 공공도서관이 830개(2013년 3월 기준)인 것을 감안하면, 외국인주민을 위한 시설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의 4.7%뿐이다.

다문화자료실을 설치하는 데 들어간 예산도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총 24억여원(국비와 지방비 합산)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다문화자료실의 소장 자료 숫자도 적게는 600여권에서 많게는 1만여권 정도로 평균 3480여권에 그쳤다.

기존 공공도서관에 설치되는 자료실 형태가 아닌, 오로지 외국인주민만을 위한 ‘다문화 전용 도서관’으로 시야를 넓히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현재 전국에 운영 중인 대부분의 다문화 전용 도서관은 민간단체가 운영주체로, 이들은 정부의 지원을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기업의 후원금이나 모금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08년 STX그룹의 후원을 받아 지역 풀뿌리시민단체인 푸른시민연대가 전국 7곳에 만든 다문화어린이도서관 ‘모두’는 지난해 말 STX그룹의 경영악화로 존폐 기로에 놓이기도 했다.

STX는 2008년 9월부터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첫 ‘모두’도서관에는 매년 1억원, 창원ㆍ부산ㆍ구미ㆍ대구ㆍ충주ㆍ안산 등 나머지 6개 도서관에는 매년 각각 5000만원 씩 총 4억원을 도서관 운영비로 지원해 왔지만, 지난해 그룹이 사실상 와해되면서 이 지원이 끊기게 된 것. 익명을 요구한 한 다문화도서관 관계자는 “다문화정책이 점차 강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다문화어린이들의 공부방 역할을 하고 한글이 서툰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책을 읽는 기쁨을 선사할 수 있는 다문화도서관에 대한 지원은 전혀 없는 실정”이라며 “다양한 문화를 존중하는 차원에서라도 정부 차원의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yesye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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