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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편 사망소식 57년만에 통보한 ‘황당한 軍’
결혼 1년만인 1954년 남편 입대
혼자 아기 키우며 13년간 기다려
알고보니 전염병으로 이미 사망
담당자 이름 잘못기재 통보 못받아
법원 “유가족에 위자료 줘라”


‘세상에 이런 일이’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입대한 남편의 사망 소식을 57년 만에 국가로부터 전해들은 부인이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게 됐다.

6ㆍ25 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54년 남편과 결혼해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 전모(80) 씨. 하지만 알콩달콩한 신혼의 단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군 징집 영장을 받은 남편은 전 씨의 뱃속에 새 생명만을 남긴 채 결혼 1년 만에 입대해버렸다. 부부는 미처 혼인신고도 올리지 못했다.

전 씨는 남편이 돌아올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혼자 아이를 낳았지만 남편은 3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전 씨는 1959년 할 수 없이 홀로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고, 남편이 돌아올 것을 믿으며 혼인신고까지 마쳤다. 그리고 다시 10년을 기다렸지만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가족들은 육군본부에 남편의 행방을 물었지만 “남편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답변만을 받았다.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전 씨는 시어머니와 상의해 남편의 사망 신고를 했다.

하지만 남편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남편은 입대한 지 한 달여 만에 호흡기 계통의 전염성 질환에 걸려 생을 달리했다.

남편의 사망 소식이 가족에게 전해지지 않은 것은 담당 군공무원의 실수 때문이었다. 공무원은 병적기록표에 남편의 이름 철자 중 ‘ㅇ’을 ‘ㅎ’으로 잘못 기재했고, 생년월일도 엉터리로 적었다.

사망 신고 후에도 남편의 행방을 수소문하던 아내는 2012년에야 육군참모총장으로부터 “남편이 순직했다”는 회신을 받았다. 스물한 살 청춘에 남편과 이별한 전 씨는 이미 팔순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 씨는 보훈청에 남편과 자신을 국가유공자와 그 배우자로 등록한 뒤 매달 지급되는 유족보상금이나마 받으려 했지만 2012년 3월 이후부터만 주어졌다. 이에 전 씨는 아들과 함께 “과거 3년여간의 유족보상금과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5부(부장 이성구)는 “국민이 병역 의무 이행을 위해 입대했다가 사망했다면 사망 사실을 유족에게 통지할 의무가 있고, 유족이 사망확인을 신청한 경우 최선의 노력을 다해 사망 사실을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이를 게을리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해 “전 씨에게 77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6일 밝혔다.

재판부는 오랜 시간 남편의 생사도 모른 채 청상과부로 지내온 부인이 겪었을 고통을 위로하며 위자료 지급 판결을 내렸지만, 너무 많은 배상금이 지급될 것을 고려해 위자료에 대한 지연이자 지급 기간은 제한했다.

김성훈 기자/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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