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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얼 나르시시즘의 비극
한 여성 출연자의 자살…‘짝’ 이 대체 뭐길래
‘짝’ 악마의 편집 등 숱한논란
일반인 “나도 연예인” 판타지
비판 대상땐 압박감 상상초월

포맷 해외수입 저작권때문에
내용 못바꾸고 자극성에 집착

美 출연진도 잇단 자살 사례
프로그램 폐지 불가피할듯

지난해 10월 미국 일리노이에서 폭스TV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마스터셰프 3’에 출연했던 조슈아 마크가 권총 자살했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지 1년 만이었다. 사고 당시 신실하게 묘사됐던 방송 속 모습과 달리 그는 조울증 등 심각한 신경장애를 앓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정신적 문제는 그가 TV에 출연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마크의 의붓아버지인 가브리엘 미셸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방송 출연 후 아들을 따르는 ‘팬’들이 생겼고, 사람들은 아들이 돈과 명성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며 “하지만 현실에서 아들은 정신적, 재정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시간이 그에게 극단적으로 스트레스를 줬다”고 말했다. 

지난 5일 미팅 서바이벌 프로그램 ‘짝’의 출연자가 촬영 현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면서 일반인을 출연시키는 ‘리얼리티쇼’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당연한 절차인 ‘악마의 편집(자극적인 요소를 모아 상황을 극대화하는 편집)’이 일반인 출연자들에게 연예인에 준하는 유명세를 주지만 한편으로는 갑작스러운 대중의 관심이 과도한 자기애로 이어져 연예인 이상의 스트레스를 안겨준다는 지적이다.

리얼리티쇼 일반인 출연자의 자살은 국내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지만 이미 미국에서는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지난 2011년에는 미국의 케이블채널 ‘브라보TV’의 리얼리티쇼 ‘베버리힐스의 주부들’에 출연한 남성이 해당 프로그램에서 ‘아내를 학대하는 남편’으로 묘사되면서 언론의 공격 대상이 된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사건이 있었으며, ‘슈퍼내니’ ‘아메리칸아이돌’ 등 화제가 된 대부분의 리얼리티쇼에서 출연자들의 자살사건 및 자살기도가 있었다. 가족들이 밝힌 대부분 사고의 원인은 갑작스런 대중의 관심과 이에 대한 부담감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이 대부분 ‘나르시시즘(자기애, 과대망상)’에 빠진다고 말한다.

TV 스타, 개그맨, 가수, 리얼리티 출연자 등을 포함한 유명인들은 일종의 나르시시즘적 성격을 갖게 되는데, 리얼리티 출연자의 경우 연기력, 가창력 등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있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나르시시즘의 수준이 일반적인 경우보다 훨씬 높다는 것. 미국의 유명한 리얼리티 재활 프로그램 진행자 드류 핀스키 박사는 그의 저서에서 “리얼리티쇼는 일반인들로 하여금 자신이 연예산업에 진입했다고 믿게 하는 일종의 판타지를 안겨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대중으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을 때와 달리 비난을 받을 때는 상상 이상의 스트레스가 된다. 국내에서도 리얼리티 프로그램 출연자들이 ‘연예인에 준하는 유명세’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짝’과 같은 미팅 프로그램에 나온 출연자들이 방송 직후 연예 뉴스를 장식하면서 갑작스런 유명세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모습이 종종 전파를 탔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출연자가 방송에 나오면서 모든 사람이 나를 알아볼 것이라는 과대 망상에 빠지게 되며, 이런 상황에 새롭고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려는 프로그램의 특성이 더해져 스트레스가 커진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출연자 개인의 문제로 몰아갈 수는 없다.

방송특성상 제작진이 출연자의 나르시시즘을 부추기고, 심리적 장애는 나몰라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국내의 한 방송관계자는 “프로그램이 해외에서 포맷을 수입한 탓에 저작권 때문에 함부로 내용을 바꿀 수 없는 것도 문제”라며 “방송이 자극적인 편집만 고심하고, 실제 출연자들이 겪게 될 정신적 고통과 국내의 문화적 차이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관련 프로그램 폐지 논란도 일고 있다. 곽 교수는 “방송 도중 의도치 않게 자신이 나쁜 모습으로 보일 경우, 수치심이 굉장히 커지게 된다”며 “이 수치심은 연예인이 느끼는 것 이상의 부담”이라며, “자극적인 리얼리티 편집은 확실히 높은 시청률을 보장하지만 이에 따른 병폐가 늘어날 경우 프로그램의 지속성에 대해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지혜 기자/gyelov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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