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휴먼다큐> “도전 뒤의 새로움을 즐긴다”…진정성으로 승부하는 글로벌CEO 김효준 BMW코리아 사장
[헤럴드경제=김대연ㆍ신동윤 기자]지난 2012년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이하 방통대) 40주년 기념 졸업식장. 행사장이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했다. 축사를 하던 연사가 갑자기 감정에 북받친 듯 눈물을 흘리며 잠시동안 말을 잇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사는 김효준(57) BMW그룹 코리아 사장이었다.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학업에 대한 열의를 갖고 공부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 크다. 그 역시 ‘고졸’로 사회에 뛰어든 뒤 치열하게 생활하다 뒤늦게 방통대를 다녔고, 45세가 되어서야 대학 졸업장을 받은 만학도였다.

지난 6일 서울 퇴계로 남산스테이트타워 14층 BMW 그룹 코리아 본사에서 만난 김 사장에게 대뜸 일반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당시 상황에 대해 물었다.

“원래 예정에 없던 축사였다. 축사를 하는데 내가 방통대에서 공부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 때 시험을 보기 위해 잠시 차를 세워둔 후 답안지만 제출하고 바로 뛰어나가는 택시기사, 만삭의 몸으로 강의실을 찾던 여인의 모습을 통해 얻었던 참 배움의 의미가 불현듯 떠올라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김효준 BMW 사장.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학력, 대학 졸업장 문제를 넘어 인생에 있어 배움을 놓치지 않으려는 그들의 열정에 고개가 숙여진다는 것이다.

올해로 직장 생활 40년, BMW 그룹 코리아 근무 20년, BMW 그룹 코리아 사장 14년째를 맞는 김 사장. 그는 그 비싼 BMW를 연간 4만여대 팔며 BMW를 국내 수입차 업계 부동의 1위로 올려놨다. 수입차 업계 대표 토종 CEO(최고경영자)로서 마침내 지난해 6월에는 한국인 최초로 독일 BMW그룹 본사 수석부사장 자리까지 올랐다. 

‘고졸 신화’, ‘가난 극복’, ‘성공 스토리’ 등은 이제 지겹지 않냐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하던 그였지만 인생 선배로서 최근 진로와 취업 문제로 방황하는 청춘들, 삶의 무게에 짖눌린 후배들에게 ‘선배로서의 책임(?)’을 다해달라는 집요한 요청에 결국 시간을 할애했다.

▶꿈은 소아과 의사, “학력이 문제 되진 않았다”= 김 사장은 아이들을 너무나도 좋아해 소아과 의사가 되는 것이 어릴적 장래희망이었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에 진학할 때 쯤 생계를 책임지던 아버지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몸져 누운 뒤 맏이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됐다. 평소 똑똑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꿈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어린 아이 13명을 모아 과외를 해서 번 돈으로 내 학비와 동생 넷의 학비를 모두 댔다”는 그는 “당시 교장과 담임이 한사코 말렸지만 나에겐 실업계 고등학교를 거쳐 최대한 빨리 사회에 진출해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이 가장 컸다”고 말했다. 


덕수상고를 졸업한 뒤 사회에서 치열한 나날을 보내온 그는 해가 거듭할수록 배움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경영자의 위치에 오르니 내가 아는 지식만큼만 경영이 보였다”며 “학위에 대한 욕심보다는 사고의 틀을 확장하고 싶다는 생각에 공부를 계속했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장, 학력 콤플렉스 때문에 공부를 하게 된 것은 결코 아니라고 했다.

결국 지난 1997년 45세의 나이로 방통대에서 늦깎이 대학 졸업장을 받은 그는 연이어 연세대학교와 한양대학교에서 각각 경영학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식이란 작은 기술만 연마하기 보다는 배움과 사색을 통해 나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철학과 가치를 공부를 통해 세우고 싶었다”는게 박사학위까지 받은 이유다. 


남들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한 김 사장이지만 ‘고졸’이란 말은 평생 그를 따르는 하나의 수식어가 됐다.

그는 “최근 소치 올림픽에서 러시아 대표로 귀화한 뒤 화려하게 부활한 안현수(빅토르 안) 선수에 대한 이야기가 회자되는 것처럼 여전히 한국 사회는 편견이 심한 편”이라며 학연, 지연, 혈연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외국계 기업에 몸담았던 것도 현재의 성공에 어느정도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기업 경영의 가장 큰 자산...“결국 사람이더라”= 어떤 경영 판단에도 항상 ‘사람’을 가장 큰 가치로 여긴다는 김 사장. 그는 “성공을 통해 얻는 희열만큼 자신과 가치를 공유하는 많은 사람을 얻었다는 사실 또한 큰 기쁨”이라고 말한다.


사실 그에게는 인간 관계의 소중함을 크게 깨달은 판단의 순간이 있었다. 한국신텍스를 청산하고 BMW로 옮길 당시였다. 거액의 인센티브를 받아 회사를 떠나면 그만이었지만 동고동락했던 127명의 직원들이 눈에 밟혔다. 그 상황에서 김 사장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인센티브를 포기하고 자신을 따랐던 직원들에게 모두 나눠줬다. 그는 “당시 나에게도 그들을 돌봐야 할 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비록 돈은 잃었지만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사람이란 자산을 얻은 그 결정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뢰의 중요성을 믿었던 그의 판단은 회사가 어려웠던 순간에 빛을 발했다. 외환 위기로 많은 수입차 업체들이 한국에서 철수하던 지난 1998년 1월, BMW 그룹 코리아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일하던 그에게도 독일 BMW 본사는 한국 시장에서의 철수나 사업 축소를 검토하라는 지시가 내렸다. 하지만 이 때 김 사장은 독일 본사에 깜짝 놀랄 역제안을 했다. 사업 축소나 철수보다 오히려 딜러에게 낮은 이자로 자금을 대출해주고 교육을 강화해 한국에 대한 투자를 늘리라는 것이었다.

“딜러사를 살릴 경우 소비자들에게 지속적인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신뢰를 확보, 시장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독일 본사는 그의 판단이 타당성있다고 생각해 투자를 늘렸고 이때 직원들을 전문가로 키운 것이 BMW코리아가 성공하는데 가장 큰 자산이 됐다.


▶“차를 몰라서 성공했다”...진정성이 핵심= “내가 BMW를 국내 1위 수입차로 성장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자동차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다.” 김 사장이 털어 놓은 BMW 성공의 또 다른 비결은 다소 의외였다. 하지만 이내 그 말 속에 숨은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동차 업계에 대한 무지(?) 덕분에 객관적으로 회사를 바라보고 회사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었다는 것. 그는 “지난 2000년 BMW 그룹 코리아의 사장으로 선임된 후 약 6개월간 매주 토요일마다 전시장에 몰래 찾아가 그곳을 찾은 손님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며 “350명 이상의 고객을 만나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사업 아이디어로 적용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의 성공에는 필요할 때 과감하게 베팅할 줄 아는 그만의 두둑한 ‘배짱’도 한 몫 했다. 지난 2000년 프랑스에서 열린 7시리즈 공개 행사에 참석한 그는 한 눈에 이 차의 매력에 빠졌다. 곧장 본사 임원에게 달려가 한국시장에 1년 간 배정되는 공급량을 600대에서 최소 1500대로 늘려달라고 졸랐다.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는 “모니터에 한글 표기만 가능하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 큰소리를 쳤다”며 “결국 그 해 2000대 가량의 7시리즈를 한국 시장에서 판매하는 성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시대의 흐름을 읽고 도전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김 사장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새로움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리더는 결코 1등만을 쫓는 게임을 하지 않는다”는 그가 강조한 도전 정신의 핵심은 바로 ‘진정성’이다. 김 사장은 “실패가 두려워 도전을 하지 않았다면 현재 BMW 코리아가 전세계 법인의 롤모델이 된 1대1 모터쇼나 7시리즈 요트 라운지, BMW 코리아 미래재단, BMW 인보이스 핫라인, BMW 코리아 고객 서비스 평가단, 아시아 최초 BMW 그룹 드라이빙 센터 등은 탄생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도전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수십번 고민하고, 변화가 가져올 사회적 가치에 대한 확신을 갖고 일관성있게 추진할 수 있는 진정성이 있어야 도전은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은퇴 후엔 쳐다도 안볼 것...“그래도 할일 하나 남아”= 인생의 선배로서 최근 심각한 취업난으로 인해 힘들어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김 사장은 진정성을 갖고 자신있게 도전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등고자비’(登高自卑,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뜻)의 자세로 무엇이든 처음부터 남을 의식해 번듯한 모양새의 성과를 얻길 원하는 조급함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40세까지는 무슨 일이든 호기심을 갖고 실패를 두려워말고 최선을 다해 부딪쳐야 한다”며 “그러면 어느새 기회가 눈 앞에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영원히 불리고 싶은 닉네임은 ‘글로벌 CEO 김효준’이다. 정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그는 지금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김 사장이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바로 딜러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는 “직접 팔고 수리하는 3500여명의 딜러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 BMW의 철학과 가치를 완벽하게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임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마지막으로 현대ㆍ기아차 등 국산차 업체에 대해서도 애정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불과 40여년이란 짧은 시간동안 현대ㆍ기아차가 독일, 미국, 일본 등 자동차 선진 브랜드를 따라 잡은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라며 “이제는 선진국을 따라잡는 것을 넘어 전기차 등 미래차의 패러다임을 주도해야하며 보다 고객 지향적으로 바뀔 때 더 크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앞만 보고 달려 온 만큼 은퇴 이후 계획은 아직 없다고 했다. 다만 회사 쪽은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말했다. 혹시나 후배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어서가 그의 이유였다.

realbighead@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