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젊은 명의들> “심장급사 7%가 비후성 심근증(좌심실 근육 두꺼운 선천적 질환)…‘시한폭탄’ 피해갈 수 있다”
⑮ 중앙대학교병원 흉부외과 홍준화 교수
다년간 수술 · 실력 겸비 ‘젊은 베테랑’
심근절제술로 좌심실 통로 확보
호흡곤란 개선…정상적 생활 가능

국내선 수술 치료 외과醫 적어
약물 복용 · 주사치료 의존 안타까워
“돌연사 불안한 환자에 희망될 것”


12년 전, 건장한 체격에 운동을 즐기던 당시 35세의 정운택(47) 씨는 지하철에서 갑자기 실신해 병원으로 이송된 후 간단한 응급조치를 받고 곧바로 퇴원헸다. 이후 가끔 가벼운 호흡곤란을 느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2년 전 동호회 모임에서 농구를 하던 중 또다시 극심한 가슴통증과 호흡곤란 때문에 다시 병원으로 이송됐다.

심장초음파와 심장 MRI 등 검사를 한 결과 정 씨의 병명은 ‘비후성 심근증’으로 판명되었고, 병원에서는 완전한 치료나 수술은 힘들며 약물치료만 처방받았다.

이후 정 씨는 흉통, 호흡곤란 등의 증상으로 자신의 몸에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불안감과 언제 갑자기 또 실신해 돌연사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 수소문 끝에 중앙대병원 흉부외과 홍준화 교수(43)를 찾게 됐다.

홍 교수는 “정 씨의 경우 심장의 하반부에 위치해 혈액을 심장으로부터 순환계로 내보내는 부분인 심실을 좌우로 나누고 있는 벽이 지나치게 두꺼워 좌심실에서 혈액이 나가는 통로가 폐쇄되어 있었다”며 “이 경우 두꺼워진 심장근육을 일부 절제하는 심근절제술로 좌심실의 통로를 확보하게 되면 일상생활에서의 호흡곤란 증상 등도 개선돼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중앙대병원 흉부외과 홍준화 교수는 약물치료로 개선되지 않는 국내 중증의 비후성 심근증 환자의 적극적인 치료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한창 때의 젊은이들이 축구나 농구 등을 즐기다가 갑자기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와 ‘손도 써 보지 못하고’ 돌연사하는 경우를 볼 때마다 가족의 일인 것처럼 아찔한 가슴을 쓸어내린다. 특히 돌연사의 원인이 ‘비후성 심근증’으로 밝혀지면 더욱 그렇다. 정확한 진단을 받고 적극적으로 치료했다면 급작스럽게 사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비후성 심근증은 좌심실 근육이 선천적으로 정상인보다 1~2㎝정도가 두꺼워 심장에서 피가 뿜어져 나가는 출구가 두꺼운 근육으로 인해 막히게 되는 질환이다. 환자는 걷거나 운동하는 등의 일상생활에서 호흡곤란 증상을 겪는데 심지어 계단 1~2개를 못 올라가기도 한다. 베타 차단제나 항부정맥제 등의 약물을 복용해 증상을 조절하며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약물치료로도 호전되지 않는 환자가 마라톤이나 축구 같은 운동을 무리해서 할 때 호흡곤란, 가슴통증, 어지러움을 느껴 실신하거나 심하면 급사할 가능성은 커진다.

“중국ㆍ일본의 경우 인구 약 500명당 1명(0.2%)꼴로 이 병을 가지고 있는데 이 중 약 70%가 혈액의 출구가 좁아져 돌연사 등의 위험성이 큰 환자로 알려져 있어요. 2011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각종 ‘심장질환 급사자’가 연간 2만3000여명에 달하는데 일부지역의 경우 심장질환 급사자의 약 7%가 비후성 심근증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됩니다.”

문제는 이런 비후성 심근증에 의한 돌연사를 예방할 수 있는 수술적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치료에 대한 환자의 정보가 부족해 오래 전에 진단을 받았어도 국내에서 수술을 통한 치료가 흔치 않아 많은 환자들이 위험을 안은 채 지내다 자칫 사망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미국 메이요 클리닉에서는 연간 약 150~200건의 비후성 심근증 수술이 시행되고 있는 반면에, 국내에는 수술이 잘 알려지지 않거나 수술 경험이 있는 흉부외과 의사가 많지 않아 치료로 추천되는 비율이 낮다.

홍준화(가운데) 교수의 록밴드 활동 모습.

홍 교수는 아주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2006년에 미국 의사고시를 통과해 미국 의사면허를 취득한 후, 미국 메이요 클리닉에서 심장외과 펠로를 지내고 국내에 들어와 비후성 심근증 수술에 다년간의 수술 경험과 실력을 겸비한 베테랑급 심장수술 전문가다. 심장수술의 대가인 메이요 클리닉의 흉부외과 과장인 샤프 박사(Dr. Hartzell schaff)가 그의 스승이다. 우리나라 외과의사들의 실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홍 교수가 미국에 가서 보고 느낀 것은 수술은 ‘손재주’만이 아니다.

“사프 박사가 심장수술 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무슨 한 편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같이 손놀림이 자연스러워 감탄했죠. 하지만 외과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수술 중 여러가지 돌발상황과 선택의 갈림길에서 적절한 판단을 내릴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샤프 박사에게 배운 것은 바로 반복된 수술 경험도 중요하지만 ‘경직되지 않은 사고’가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홍 교수가 메이요 클리닉에서 인정을 받으며 서서히 자리를 굳혀가고 있을 무렵, 그는 돌연 귀국을 택하게 된다. “국내에서는 수술적 치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아직도 약물 치료나 알콜주사 치료에만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웠어요. 메이요에서 습득한 지식을 국내에서 펼쳐보고 싶었습니다.”

2009년부터 중앙대병원에 자리 잡은 그는 약물치료로 개선되지 않는 국내 중증의 비후성 심근증 환자의 적극적인 치료에 매진하고 있다. 또한, 홍 교수는 수년 전에 비후성 심근증 진단을 받고 오랫동안 약을 복용하거나 확실한 치료법을 몰라 치료를 고민해 온 환자들을 위해 직접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관련 정보를 제공해 그동안 제대로 된 치료법을 찾지 못하고 돌연사의 두려움에 떨고 있던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흉부외과 특성상 1년 365일, 24시간 내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홍 교수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묻자 뜻밖의 얘기가 나왔다. 고교 때부터 밴드를 시작했는데 현재도 홍대에서 공연까지 하는 록밴드를 구성해 ‘현역’으로 활동 중이란다. “창피한 얘기지만 밴드가 좋아 아주대 수석으로 들어가면서 받기로 한 장학금도 못 받았어요. 밴드 활동은 제가 흉부외과 의사로서의 삶을 더 열중할 수 있게 해주는 청량제죠.”

동료 의사 1명과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기장 1명씩으로 구성된 ‘스위트 퍼플(sweet purple)’의 기타리스트 겸 리드보컬인 홍 교수의 실력이 궁금했다. “멤버들이 너무 바빠서 짬짬이 시간을 내서 공연 연습을 합니다. 제가 제일 골치죠. 중간에 호출이 오면 바로 나가야 하니까요. 노래 실력이요? 공연 한번 보러 오세요.”

김태열 기자/kty@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