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파죽지세였던 일본 경제가 올들어 맥을 못추고 있다. ‘잃어버린 20년’ 탈출 계획이 ‘잃어버린 J커브효과’로 변질된 양상이다.
‘J커브효과’란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 통화가치를 절하하면 초반에 무역수지가 악화되지만 일정기간이 지난 후엔 개선되는 현상을 말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정권 초반부터 강력한 ‘엔저’ 드라이브로 수출을 증가시켜 일본 경제가 ‘J커브효과’로 살아나는 청사진을 그렸다.
그러나 아베노믹스 2년차인 지금 아베의 야심찬 계획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아베 총리의 예상대로라면 일본 경제가 ‘J자’ 모양으로 단기 침체를 딛고 반등해야 하지만 침체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1일 아시아판에서 “아베가 잃어버린 ‘J커브효과’ 미스터리로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엔저, 만병통치약 아니다=일본 경제의 ‘길 잃은 J커브효과’는 최근 경제지표에서 두드러졌다.
20일 발표된 무역적자는 2조7900억엔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는 작년 1월 적자액(1조6336억엔)보다 무려 1조엔 이상 커진 것이다. 엔화가치 하락으로 연료 수입액이 급증한 영향이 컸다.
또 수입물가는 상승하는데 임금은 오르지 않았다. 같은날 발표된 일본의 작년 풀타임 월평균 임금은 29만5700엔(약 312만원)으로 전년대비 0.7% 감소했다.
하루 전 나온 일본의 4분기 경제 성장률은 1.0%(연율)에 그쳐 예상치(2.8%)를 크게 밑돌았다. 성장률 흐름도 좋지 않다. 아베 정권 취임 직후인 지난해 1분기 4.8%에 달했던 성장률은 2분기 3.9%, 3분기 1.1%, 4분기 1%로 추락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의 재정적자는 선진국 중 최악이다. 일본 국가부채는 GDP대비 242%에 달한다. 이를 국민 1인당으로 환산하면 9만9725달러(1억718만원)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일본 정부에 정통한 한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경제에) J커브효과가 보이지 않는 것은 매우 놀랄만한 일이다”고 지적했다. 게이오 대학의 이케오 카즈히토 교수(경제학)도 “아베 정부는 과거 사례에서 엔저가 수출과 경제를 끌어올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블랙스완’ 짙어지는 그림자=이처럼 아베노믹스의 약발은 떨어지는데 오는 4월 예고된 소비세 인상(5→8%)은 일본 경제에 ‘블랙스완’ 우려를 키우고 있다. 블랙스완은 예상치 못했지만 한 번 나타나면 엄청난 충격을 주는 사건을 뜻한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일본이 1997년 1차 인상 때와는 달리 침체를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소비세 인상 타격을 완화해줄 수출이 부진한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자구책도 마땅치가 않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연료 수입을 줄이겠다며 중국산 태양광 전지를 사들이면 무역적자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소비세 인상 전 가계 수요를 증가시키는 것도 오히려 수입을 늘려 무역적자 폭을 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출도 힘든 건 마찬가지다. 일본 제조업체의 생산거점 대부분이 해외로 옮겨간데다 일본산 제품들도 신흥국에 밀려 경쟁력이 떨어진 상태다. 대표적인 예가 소니 등 일본의 전자제품이다. 도요타자동차를 필두로 글로벌 기업의 실적이 개선되고 있지만 이것도 수출이 증대됐다기 보다는 해외 판매에 따른 엔저 수혜 영향이 크다.
이와 관련 미국의 잭 류 재무장관은 최근 “일본 경제가 정말 회복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면서 “일본 국내 수요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아직 베노믹스에 대한 긍정론도 여전하다. 골드만삭스의 바바 나오히코 수석 일본 이코노미스트는 “모두가 J커브효과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면서 “수입구조에 변화가 보인다”며 “J커브효과에 따른 점진적 무역수지 개선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