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입가경’
우크라이나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정국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과 야권이 휴전에 합의한 지 하루만인 20일(현지시간) 반정부 시위대와 경찰이 또다시 충돌하면서 최대 1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피의 목요일’을 보냈다.
국제 사회의 압력을 받고 있는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사태 해결을 위해 조기 대선 및 개헌까지 치를 수 있다면서도, 한편으로는 진압 경찰에 총기 사용을 허가해 내전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또 우크라이나 해법을 둘러싸고 미국ㆍ유럽연합(EU)과 러시아가 팽팽히 맞서고 있어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조기 대선 가능성은?=우크라이나가 출혈을 최소화하면서 자체적으로 사태를 해결하려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한 발짝 물러나는 게 최선이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20일 프랑스ㆍ독일ㆍ폴란드 3국 외무장관과의 면담 자리에서 올해 안에 조기 대선 및 총선, 연립내각 구성, 개헌 등의 요구를 수용할 용의가 있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이 같은 가능성을 밝혔다.
앞서 우크라이나 야당 지도자들은 야누코비치 대통령과 집권 내각이 총 사퇴하고 내년으로 예정된 대선과 총선을 조기에 치러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아울러 지난 2004년 좌절된 헌법 개정을 재개해 대통령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일각에선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러시아에 정치적 망명을 요청했으며 가족들이 이미 우크라이나를 떠났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정보가 모두 사실로 드러나면 우크라이나의 정국 혼란은 야권의 주도 아래 조기에 수습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대통령 공보실 측은 아직 어떤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으며 망명설도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한 상황이다.
▶경찰 총기 사용…내전 번지나=우크라이나 정부가 시위 진압 경찰들에게 총기 사용을 공식 허용하면서 내전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비탈리 자하르첸코 우크라이나 내무장관은 20일 경찰들에게 전투무기를 지급하고 이를 경찰법에 따라 사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경찰법상 경찰관은 시민 보호나 경호 시설물 방어를 위해 무기를 사용할 수 있어, 사실상 경찰을 공격하는 시위대를 향해선 총기 사용이 가능해졌다고 볼 수 있다.
총기로 무장한 일부 과격 시위대가 경찰에 대한 공격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경찰까지 무기 사용을 공식 허가받음으로써 양측의 무력 충돌이 내전으로 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병력이 3000∼4000명에 불과한 특수진압부대 ‘베크루트’와 경찰 외에 군대를 투입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USA투데이는 “군대가 거리 시위대를 진압하라는 명령에 따를 지 확신할 수 없다”며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군병력을 동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점쳤다.
▶서방ㆍ러시아 ‘힘겨루기’=설상가상으로 우크라이나 유혈 사태가 서방과 러시아 간 ‘파워게임’으로 비화되는 양상이다. 이미 지난해 우크라이나와 EU의 경제협력 논의를 두고 양측이 자존심 싸움을 벌인 터라, 한쪽이 굽히지 않으면 사태를 조기에 해결하기 어려워진다.
미국과 EU는 우크라이나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20일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우크라이나 정부의 시위 강경 진압에 격분했다면서 야누코비치 정권 주요 인사들에 대해 입국 금지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EU도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외무장관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인사들의 EU 비자 발급 중단과 역내 계좌 동결 등의 제재 조치를 내놨다.
더 나아가 미국과 EU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경제 원조를 통해 입김을 강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한 지원도 추진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 시리아 사태에 개입해 인권을 억합하는 데 일조했다며 맹공을 퍼붓기도 했다.
러시아도 사태 해결을 위해 우크라이나에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20일 우크라이나 정부와 야당 간의 중재를 위해 블라디미르 루킨 인권담당 특사를 키예프로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또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는 이날 내각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정국 위기가 계속될 경우 지난해 약속한 차관 지원을 중단할 수 있다”며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강승연 기자/sparkli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