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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고는 했는데, 남편 처벌은 말아달라? 가정폭력 딜레마
[헤럴드경제=김기훈 기자]지난달 말 경기도에 사는 40대 주부 A 씨는 “남편에게 폭행당하고 있다”며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경찰이 현장에 긴급출동했지만 A 씨는 되레 “남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만을 반복했다.

A 씨가 112 신고를 한 것도 이미 수 차례, 하지만 A 씨는 매번 “남편이 생활비를 주지 않는다. 경찰에 신고하면 겁을 먹고 생활비를 줄 거라 생각했다”며 신세를 한탄했다.

남편이 실형이나 벌금형을 받으면 당장 생계가 끊기고 가계에 타격을 입게 돼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만 반복되고 있다. 이에 가정폭력 피해자가 가해자 벌금을 대신 떠안지 않도록 제도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정폭력 사건을 일선에서 다루는 경찰의 애로사항도 적잖다. 경찰 역시 ‘가정폭력 근절’이란 사명감과 ‘피해자 의사 존중’이란 현실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고 있는 것.

한 일선서 경찰은 “요즘 같은 시기에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거나 사건을 해결하기 귀찮아서 현장종결을 하는 경우는 없다. 피해사실이 명확하면 형사과에 인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정폭력 유형이 다양한 만큼 현장에서 일처리에 한 가지 잣대만을 적용하기는 힘들다”고 토로했다.

실제 경찰이 가정폭력 사범에 엄정대응하고 있다는 것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지난해 가정폭력 사범 검거 건수는 1만6785건으로, 전년대비 91.6% 증가했으며 구속된 인원도 262명으로 무려 258.9% 급증했다.

문제는 피해여성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가정폭력 문제는 해결이 요원하다는 것이다.

고미경 여성의전화 가정폭력상담소장은 “가해자에게 벌금형이 내려질 경우 사실상 피해자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피해자가 가정폭력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어도 자립자활이 안되기 때문에 신고를 꺼리고 처벌을 원치 않는 경우가 많다”며 “피해자에 대한 조건없는 지원을 보장하고 경제적 자립 기반을 만들어줘야 가정폭력 문제는 해결이 가능하다”고 했다. 또 “가정폭력은 단순한 ‘집안 일’이 아니라 인권 문제로 접근해야 하며, 엄격한 사법처리와 교육을 통해 결코 경미한 범죄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kih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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