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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레프 폰트랴긴(구소련 시각장애인 수학자)’ 맞을 준비됐습니까?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세네 자릿수의 단순 곱셈이라도 암산만으로 답을 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배우는 수학 문제라면 어떨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레 포기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답을 적어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수능을 치르는 시각장애인 수험생들이다.

최근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등의 주최로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수능시험 편의제공 개선을 위한 시각장애인 증언대회’에서 수능을 치른 시각장애인 수험생들은 한 목소리로 “수능을 칠 때 ‘한소네’를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한소네’는 비시각장애인이 눈으로 읽을 수 있는 텍스트 파일을 곧바로 점자화해주는 기계로 시각장애인 대다수가 공부할 때 이용한다. 하지만 인터넷 기능 등이 있어 부정행위 등의 문제로 현재 수능시험에서는 이 기계를 쓸 수 없다. 대신 전맹인 학생에게 점자 문제지와 녹음 테이프, 시험시간 연장 등의 편의가 제공되고 있지만 이로는 불충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학문제를 푸는 경우 비장애인 수험생들은 쓰고, 읽고, 생각하는 과정을 거의 동시에 진행해서 문제를 빠르게 풀 수 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들은 적어가며 계산을 하기 위해 점자지를 끼우고, 다시 문제를 읽기 위해 점자지를 빼고 하는 과정을 계속 반복해야 해서 쓰고, 읽고, 생각하는 작업을 모두 따로 진행해야 한다. 지난해 수능을 친 한성현 씨는 “결국 이런 과정들이 너무 불편해 암산에 의존하게 되지만, 암산해낸 답이 정확한 것인지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며 “한소네만 사용할 수 있었어도 이런 문제들을 해결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다른 과목에서도 마찬가지. 언어영역의 경우 시각장애 수험생들이 난감해 하는 문제 유형 중 하나는 ㄱ,ㄴ,ㄷ과 같은 기호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점자 시험지로 바꾸면 한 문제가 여섯 페이지에 달한다. 문제를 풀다가 ‘앞에 무슨 내용이 있었더라’ 궁금해 다시 읽어보려면 여섯 페이지를 일일이 손으로 더듬거려 원하는 부분이 나올 때까지 찾아야 한다. 박인범 씨는 “한소네를 사용하면 책갈피 기능이 있어서 한결 편해진다”고 했다.


시각장애를 무릅쓰고 국내 최초로 변호사가 된 김재왕<사진> 변호사는 자신이 로스쿨을 준비하던 당시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에서 스크린리더가 설치된 컴퓨터로 시험을 볼 수 있게 배려해 준 것을 상기시키며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규정된 ‘정당한 편의 제공’에 따라 시각장애인 학생들이 공부에 익숙한 보조기기를 수능시험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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