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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화, 예술로의 귀환…한 컷속의 스토리텔링
아라리오 갤러리 한 · 중 · 일 작가 3인‘ 그래픽 노블’展
‘아토마우스’ 작가 이동기 신작 소개
한류 드라마속 장면 회화 재구성

쑨쉰, 중국인 일상 애니 영상으로
목판화로 생산…투박한 질감 눈길

日팝아트 유망주 에노모토 고이치
‘작품단골’ 소녀로 폭력·부조리 역설


어릴 적 만화를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일상에선 절대 겪지 못할 모험과 꿈이 가득한 세계도 신비로운데, 또래 주인공들은 어른들과 동등하게, 아니 우월한 위치에서 문제를 해결하니 그 매력은 아이들을 힘껏 끌어당긴다. 아기공룡 둘리, 달려라 하니, 떠돌이 까치 등 만화영화는 어린이들을 TV 앞으로 끌어모았다. 그러다 철이 들면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며 점점 멀어져 간다.

그렇게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만화가 사회현상이나 구조적 문제를 다룰 때 생경하면서도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이른바 ‘그래픽 노블’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만화’를 통칭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하는 그래픽 노블은 냉전 이후 자본주의가 급속히 팽창하던 시기에 유행하던 슈퍼 히어로물에서 벗어나 문학성과 예술성이 강조된 새로운 장르를 일컫는다. 유럽의 소설적 상상력과 복잡한 스토리라인을 바탕으로 회화적 표현력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그래픽 노블은 애니메이션 마니아 집단(오타쿠)의 광적인 취미활동이 예술 영역으로 발전한 결과물이다. 만화라는 장르가 아이들 취향과 유치함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드러낸다.

이런 그래픽 노블의 현재와 미래를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아라리오 갤러리는 오는 2월 20일까지 한ㆍ중ㆍ일 작가 3인전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을 개최한다. 이동기(47), 쑨쉰(34), 에노모토 고이치(37)가 각국의 대표작가로 선정됐다. 세 작가 모두 컬러TV가 대중적으로 확산된 1980~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영향인지 게임ㆍ애니메이션ㆍ만화 등의 하위문화가 작품세계 곳곳에서 공통적으로 보인다.

아톰과 미키마우스를 합친 캐릭터 ‘아토마우스’로 유명한 이동기는 이번 전시에서 신작을 대거 선보였다. 한류 열풍을 일으킨 드라마가 그 대상이다. 이동기는 다양한 듯 보이는 이 드라마가 사실은 오랜 시간 축적된 드라마 제작방식의 전형적인 노하우 안에서 매회 반복된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결과물이라고 여긴다. 여러 이미지를 수합하고 분류하는 과정을 통해 얻어진 상투적 화면구성을 캔버스로 옮겨담았다. 여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모습이나, 침대에서 남녀가 서로 다른 생각에 잠겨 있는 장면, 꾸깃한 가족사진은 드라마에서 쉽게 차용하는 클리셰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에노모토 고이치 ‘기사, 죽음, 악마, 혼합’, 캔버스에 유채, 112×145.5㎝, 2010. 쑨쉰 ‘혁명을 통해서도 미해결된 몇 가지 것들’, 단채널 애니메이션,12분 22초, 2011. 이동기 ‘침대에서’ 캔버스에 아크릴,140×240㎝, 2013.
[사진제공=아라리오 갤러리]

중국 작가 쑨쉰은 중국 사회의 현실을 애니메이션이라는 가벼운 매체로 풀어냈다. 하지만 오히려 더 무겁고 진하게 다가오는 것은 작가만의 조형언어가 그만큼 명확하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 1~2세대 작가들이 보여주었던 냉소적 사실주의나 정치적 팝아트 성향에서 벗어나, 구축된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중국인의 일상적 삶을 다뤘다. 목판화로 제작한 이미지를 애니메이션으로 작업했다. 거칠고 투박한 판화가 갖는 특성 때문인지 디스토피아적 서곡처럼 보인다. 전염병을 옮기는 곤충,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대중, 상대의 얼굴을 드릴로 뚫으려는 모습 등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들이 일상과 뒤섞여 있다.

에노모토 고이치는 무라카미 다카시나 요시토모 나라에 이은 일본 팝아트의 차세대로 꼽을 만한 작가다. 회화, 비디오, 조각, 집필의 범위를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이 시대 젊은이들이 보여주는 복합적이면서도 다양한 면모를 하나의 화면에 복잡하게 담아내면서도 기교가 뛰어난 페인팅을 자랑한다.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어린 소녀는 천사나 구세주 같은 모습이지만 그 뒤로 폭력과 잔인함, 부조리가 만연한다. 죄악과 유머라는 두 개 요소를 병치시켜 그로 인해 발생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더욱 도드라진다.

그래픽 노블전은 그래픽보다는 ‘노블’에 방점이 찍혀 있다. 한 컷 한 컷이 중요하다기보단 그 속에 담겨 있는 스토리가 관객에게 더 다가온다. 전시를 기획한 아라리오 갤러리 관계자는 “그래픽 노블이나 팝아트 모두 똑같이 만화를 그래픽적 요소로 차용한다. 1세대로 볼 수 있는 팝아트는 단면적ㆍ가상적 화면을 주로 작업한 반면, 2세대인 그래픽 노블엔 독자적 스토리텔링 요소가 들어 있다”며 팝아트의 변화 방향을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만화라는 가벼운 매체를 사용하지만 이면에 담은 이야기는 한없이 무겁고 병리적이기까지 하다. 이번 전시는 아라리오 갤러리 청담점의 마지막 전시로 3월부터는 소격동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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