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새책> 빨간 도시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꼭 닭장 같았습네다.”

목숨을 걸고 탈북한 한 여성이 서울의 아파트를 보고 남긴 말이다. 남한의 아파트는 왜 북쪽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도 닭장 같았을까. 건축가 서현 한양대 교수의 건축사회학서 ‘빨간 도시(효형출판)’는 건축물을 한국 사회의 뒤틀린 현실을 바라보는 매개로 활용하고 있다.

저자는 한국의 건축과 도시, 그리고 건축가가 처한 뒤틀린 현실에 대해 질문하고, 그 질문은 부메랑처럼 한국 사회에 대한 또 다른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저자는 씨족, 일제강점기, 북한, 반공, 군사ㆍ향락 문화, 경쟁, 거짓말, 과열, 월드컵 등 기형적인 건축에 새겨진 흔적들은 하나 같이 빨간색으로 수렴한다며 한국 사회를 ‘빨간 도시’로 정의한다.

저자는 닭장 같은 아파트의 모양을 ‘씨족공동체의 해체’ 측면에서 바라본다. 경제적 기회를 찾아 매일 같이 밀려드는 이주민을 수용하기 위한 주거시설이 현재의 아파트이다보니 외양과 그 안에 담을 삶은 고려 대상에 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저자는 현재 예식장과 장례식장의 형태는 ‘씨족공동체의 재결합’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집안의 위세를 보여줄 수많은 하객과 화환을 담아야 하니 결혼식장의 로비는 비대해졌고, 로비에는 바로크 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화려한 조각과 장식이 들어섰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병영을 닮은 학교의 배치와 기어이 승패를 겨뤄야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일제강점기가 남긴 ‘주홍글씨’ 같은 찌꺼기가 아니냐고 묻는다.

빨간색은 우리에게 오랫동안 단순한 색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지칭하는 민감한 단어였다. 그러나 2002년 한일월드컵은 북한과 대치하는 한 이데올로기의 굴레를 벗지 못할 것 같았던 빨간색에 면죄부를 씌운 대사건이었다. 빨간색이 이데올로기에서 자신감의 표현으로, 나아가 보수 정당을 상징하는 색으로 변화하는 과정은 그 논리를 이성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작스럽게 전개됐다.

저자는 “빨간색을 축제의 색으로 당당하게 쓸 줄 아는 세대는 도시에 광장을 선물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광장을 제대로 쓸 줄 모른다”며 “벼락 같이 들끓는 변화가 그 포문을 열었다면 그 변화가 건강히 뿌리내릴 수 있느냐는 사회 구성원의 지속적인 노력에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

123@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