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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은 명의들 ⑩> 삼성서울병원 유방내분비외과 이정언 교수
“유방암 환자도 비키니 입을 권리 있잖아요”

“헬스장을 다니면서 6개월 동안은 얼굴 숙이고 혼자 운동만 했어요. 죄진 것도 아닌데 시선을 못 견디겠는 거예요. 공중목욕탕은 아예 못 가고, 요가를 할 때도 여름에 앞이 파인 옷을 못 입어요. 엎드리면 가슴이 보일까봐서요.” 2009년 유방암 진단 후 유방 전체를 잘라내는 ‘전(全) 절제술’을 받은 정모(47) 씨는 암으로 인한 고통이상으로 여성성(性) 상실했다는 자괴감에 시달린다.

유방암 환자들의 ‘눈물’은 여전하다. 유방암학회의 설문조사결과를 보면 정 씨처럼 유방암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유방암에 대한 재발(59.4%)보다 여성으로서 매력을 상실(66.8%)했다는 점을 더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삼성서울병원 유방내분비외과 이정언(44) 교수가 유방암환자로부터, 특히 나이가 젊은 환자들로부터 명의로 입소문을 타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치료 후 5년 생존율 91%의 화려한 성적 뒷면에 가려진 우리나라 유방암 환자들의 진짜 슬픔이 무엇인지 이 교수는 안다. 환자의 생존율을 끌어올리면서 수술보다 더 쓰라린 마음의 상처가 남지 않도록 유방을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 데 온힘을 기울인다.

“유방암은 수술을 하고 나면 달라진 점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수술을 앞두고 여성성의 징표가 사라지지 않을까 우울해하죠. 가급적이면 유방보존수술을 하고 수술 전과 비교해 모양 또한 크게 달라지지 않도록 수술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삼성서울병원 유방내분비외과 이정언 교수가 유방암 환자에게 검사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유방암 환우 카페 등 인터넷 공간에서는 환자들끼리 ‘어느 병원의 누구누구가 어떻다더라’ ‘누구누구 중 어떤 의사가 나은 거요?’라는 식의 글들이 여과없이 올라온다. 이정언 교수는 실력도 최고이지만 환자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주는 ‘친절한 이 선생님’으로 이미 유명하다.

“병원 복도에서 마주쳐도 손을 꼭 잡아주시고 위로해주세요” “환자에게 자상하고 무엇보다 설명도 웃으면서 잘해주셔서 위안이 많이 돼요” 선생님과 얘기하다보면 병이 다 아는 것 같아요” 등 이 교수를 칭찬하는 댓글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연간 500건의 이상의 수술을 직접 집도한다. “일주일에 이틀 수술일정이 있는데 하루에 적게 하면 5건 이상 해요. 연간 500여건 정도인데 수술하신 분들의 상태나 수술 후 경과 등을 공책에 꼼꼼히 기록해둡니다. 혹시 재발 등이 있어 다시 오실 때를 대비해 기록하죠.”

연간 500여건은 국내 의사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다. 이 많은 수술 가운데 대부분을 유방 보존하는 수술법을 적용하고 있다. 유방을 잘라내야 하는 경우도 가능하면 피부를 보존하고 복원하는 방법을 택한다.

특히 이 교수의 주특기인 ‘성형적 유방암수술’은 환자들로부터 반응이 뜨겁다. 성형적 유방암수술은 기존 유방보존술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유방암을 떼어내기 전부터 가슴의 기능적, 심미적 요소들을 고려해 수술하는 것을 말한다.

먼저 암 덩어리를 떼어낸 뒤 그 자리에 남은 유방 조직이나 다른 조직을 채워 넣는 식이다. 수술 부위가 움푹 꺼지거나 변형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그 뒤 수술을 하지 않은 다른 한쪽 가슴과 비슷하게 유방모양을 다시 잡아 수술 이전 상태로 되돌린다.

“서양 여성과 달리 가슴이 더 단단하고 마른 체형이 많은 우리나라 여성들의 특징에 맞는 수술방법을 찾으려고 지금도 연구 중이에요”

이 교수는 수술 후 가슴에 남을 수밖에 없는 흉터까지 최소화하는 데 남다른 애정을 쏟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유방암 환자도 목욕탕을, 비키니를 당당하게 즐길 권리까지 찾아줘야겠단 생각에서라고 한다.


특히 그가 주로 하는 유륜 주위를 따라 절개해 수술하는 ‘라운드 블록술’은 환자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지금까지 이 교수가 진행한 라운드 블록술에 관한 수술에서 90% 이상이 미용적으로 마음에 든다고 답해 유력 국제 학술지인 ‘Annals of Sugical Oncology’ 최근호에 게재되기도 했다.

당연히 일반적인 수술에 비해 까다롭고 힘들다. 시간도 오래 걸린다. 하지만 이 교수는 그런 수고를 당연하다고 말한다. 환자를 생각해 새벽 3시가 넘어 수술이 끝날 때면 ‘이렇게는 못 살겠다, 다음에는 이러지 말자’ 다짐하고선 새벽 4시를 넘기면서 수술을 하기도 한다. 이 교수는 또 수술과 더불어 유방암 중에서 특히 재발률이 높다고 알려진 ‘삼중음성유방암’에 대한 새로운 치료방법을 찾기 위하여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꼭 강조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여성들의 유방 암 3기 발병률이 15%인데 이걸 줄여야 해요.” 유방암 3기는 80% 이상의 생존율을 보이는 초기 유방암에서 말기유방암으로 넘어가는 길목이기 때문에 생존율이 50% 이하로 급격히 하락한다. “유방암학회 가이드라인에 보면 솔직히 유방암을 예방하는 특별한 방법은 없어요. 결혼해서 아기 낳고 모유수유하면 좋고 이런 식이죠. 가장 좋은 예방법은 20살이 되면 한 달에 한 번씩 유방 자가검진을 반드시 하고, 35살이 되면 증상이 없어도, 40살 넘어서는 1년에 한 번씩은 꼭 유방암 검진을 받아야 해요. 유방암 환자의 평균나이가 50세 정도인데 거의 40~50대에서 발병합니다.”

“스스로 유방을 만져서 몽우리 등을 확인하는 자가검진을 왜 한 달에 한 번 자가검진을 해보라고 하냐면, 보통 여성들이 생리할 때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데 아프니까 만져봐요. 그리고 나서 잊어버리죠. 때문에 정확한 검진이 안 됩니다. 따라서 자가검진은 생리가 끝날 때쯤에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시기입이다.”

“이 세상을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아 있는 환자가 여성으로서의 자존감, 만족감을 유지하며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 역시 저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진료실에서 환자를 마주한 그는 오늘도 입버릇처럼 말한다. “괜찮습니다. 다 잘될 거예요.”

김태열 기자/kt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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