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새책> 곰, 몰락한 왕의 역사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사자는 오늘날 유럽을 비롯해 전 세계 많은 지역에서 ‘동물의 왕’ 대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유럽에는 사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중세 이전에 유럽에서 ‘동물의 왕’으로 인간들의 숭배를 받은 동물은 곰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존재하지도 않는 사자가 ‘동물의 왕’ 지위를 차지하게 된 것일까.

프랑스의 중세사가 미셸 파스투로이 지은 ‘곰, 몰락한 왕의 역사(오롯)’은 유럽 이교 문화에서 다양한 형태로 숭배 받던 곰이 어떻게 사자에게 자리를 내놓게 됐는지를 다루고 있다. 기독교 전파가 서기 1000년 전후해 중세 유럽에서 문화와 인식 체계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곰이라는 동물을 소재로 설명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곰은 고대 유럽에서 지중해 문화권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에서 ‘동물의 왕’이었다. 그러나 중세 교회는 야성의 상징이자 이교 제의의 주인공인 곰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려 했다. 곰 숭배는 이교도들의 개종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는 4~5세기경부터 곰을 야만스럽고 난폭한 존재로 만들어 악마의 화신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교회는 빈 ‘동물의 왕’ 자리에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 실제로 유럽의 숲에 존재하지 않는 사자를 내세웠다. 교회 입장에선 사자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통제하기 쉬웠다. 이후 곰은 점점 우둔하고 어리석은 동물로 조롱을 받기 시작했다. 이 같은 조롱은 인간의 비만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가치체계의 변화로도 이어졌다. 11세기만 해도 몸집이 크고 뚱뚱한 지배자들이 존경을 받았지만, 13세기에 이르러 날씬함과 쾌락의 절제가 지배자들의 덕목으로 떠오른 것이다.

우화ㆍ전설ㆍ영화 등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습득한 특정 동물에 대한 정보는 그 동물에 대한 특정한 인식을 형성한다. 그러나 동물이 역사 연구의 주제로 다뤄지는 일은 흔치 않다. 저자는 어느 사회에서나 동물은 경제ㆍ문화ㆍ종교 등 역사의 중요한 주제들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고 주장하며 역사학의 창의적인 연구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지난 2007년 프랑스에서 대중교양과 중세사 연구에 가장 크게 기여한 책을 선정해 수여하는 ‘제1회 중세 프로뱅상’을 수상했다.

123@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