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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플러스>3D 프린터, 미래를 ‘프린팅’하다
[헤럴드경제=이슬기 기자] 우리는 미래를 ‘조형’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파피루스(papyrus)가 만들어진 약 5000년전 고대 이집트 시대에서부터 최근까지, 우리는 늘 미래를 종이 위에 그려왔다. ‘미래를 그린다’, ‘상상을 그린다’는 흔한 표현처럼 꿈과 상상을 표현하는 동사는 언제나 ‘그리다’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상상과 사고의 세계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공간으로 하얀 종이 이상의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 한계가 조금씩 깨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3D 프린터’가 종이의 시대를 대체할 주인공이다. 플라스틱부터 금속까지 여러 소재를 이용해, 상상하는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3D 프린터는 줄곧 도면 형태로 평면에 머물러 왔던 미래의 가능성을 입체적인 형태를 가진 실체로 불러냈다.

▶총, 과자, 제트기 엔진, 태아 모형까지= 3D 프린터는 3D CAD(computer aided design)나 3D 모델링 프로그램 또는 3D 스캐너 등으로 제작한 3차원 설계도를 바탕으로 플라스틱 가루나 금속성분, 고분자 복합 소재를 이용해 입체적인 조형물을 만들어 내는 기기다.

현재 3D 프린터 시장은 FDM, DLP, SLS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우선 FDM(Fused Deposition Modeling)은 필라멘트 형태의 플라스틱 소재를 녹여 노즐을 통해 분사, 재료를 층층이 쌓아 물체를 만드는 방식이다. DLP(Digital Light Processing)방식은 액체나 분말을 분사한 뒤 빛을 쏘여 굳히는 기술이다. SLS(Selective Laser Sintering)는 나일론, 석고, 금속 등 다양한 가루 형태의 소재를 분사한 뒤 레이저를 통해 굳힌다. DLP와 SLS 방식의 기기는 정밀도가 높은 대신 가격이 비싸다.

즉 거대한 고체 형태의 소재를 조각해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서부터 설계도에 맞춰 하나씩 층을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아무리 복잡한 구조를 가진 물건이라도 얼마든지 실체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미국에서 3D 프린터로 제작한 플라스틱 총이 등장한 이후 속속 새로운 ‘3D 프린팅 제품’이 등장하고 있다.

영국 항공방위산업체 BAE시스템스는 지난 6일 3D 프린터로 만든 금속 부품을 장착한 토네이도 전투기가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회사 측에 따르면 시험 비행에 성공한 토네이도 전투기에는 3D 프린터로 제작한 조종석 무선통신장치 보호덮개, 착륙장치 보호대 등이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전자제조업체 지멘스 역시 지난해 말 3D 프린터로 가스 터빈 부품을 제작한다고 밝혔다.

3D 프린터로 만들 수 있는 것은 금속제품뿐만이 아니다. 음식도 제작이 가능하다. 지난해 12월 스페인의 ‘내추럴 푸드’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3D 프린터 ‘푸디니’를 공개했다. 플라스틱이나 금속 대신 신선한 음식 재료로 만들어진 5개의 캡슐을 장착한 뒤 기기를 작동하면 음식이 프린트된다.

의료분야에서도 3D 프린터는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순천향대 서울병원 소화기병센터 조주영 교수는 최근 3D 프린터로 만든 내시경 수술 기구를 이용해 종양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내시경을 쓸 때는 반드시 렌즈 끝에 ‘캡’을 끼워야 하는데, 3D 프린터로 환자 상태, 병변 크기, 장기 종류에 맞춘 캡을 제작해 사용한 것이다. 서울성모병원 성형외과 이종원 교수 역시 지난해 11월경 선천성희귀안면기형 환아의 코 수술에 3D 프린팅 기술로 만들어낸 치료 보형물을 이용했다. 일본 한 산부인과는 초음파 사진을 이용해 태아의 모형을 기념품으로 만들어 주는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점점 커지는 시장규모, 국내 업체도 속속 시장진출= 3D 프린터의 활용 범위가 넓어지면서 관련 시장의 규모도 비약적으로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월러스어소시에이츠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3D 프린터 시장규모는 약 2조원대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연평균 성장률 27.5%를 보이며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월러스어소시에이츠 리포트는 2021년까지 3D 프린터 시장의 규모가 12조원대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나라의 3D 프린터 산업은 아직 제대로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전 세계 3D 프린터 시장은 미국(시장 점유율 72.9%ㆍ월러스어소시에이츠 리포트)이 지배하고 있다. 그 뒤를 유럽 10.2%, 이스라엘이 9.3%, 일본 3.7%, 중국 3.6%이 따르고 있다. 3D 프린터 설비 활용도 측면에서는 미국이 전 세계 3D 프린터 설비의 38.3%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 2.2%에 불과하다.

걱정할 것은 없다. 최근 3D 프린터가 다음 시대를 이끌어갈 신기술로 주목받으며 국내에서도 관련 사업에 뛰어드는 중견규모 이상의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도리코는 지난해 10월 미국의 3D 프린터 제조업체인 3D 시스템스와 독점 판매 계약을 체결, 3D 프린터 ‘큐브(Cube)’를 국내에 선보였다. 신도리코는 사무용기기 제조회사에서 제조업의 미래를 바꿀 3D 사업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이뤄낸다는 계획이다.

하이비젼시스템은 최근 카메라모듈 자동화장비 세계 1위 기업이라는 경쟁력을 바탕으로 3D프린터 제작에 뛰어들었다. 하이비젼시스템은 산업용 3D 프린터 ‘큐비콘’을 내놓고 “고가의 외국산 3D 프린터를 국산으로 대체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TPC메카트로닉스 등 중견 코스닥 상장기업의 진출도 활발하다. 과거 로킷, 오픈크리에이터즈, 오브젝트빌드 등 중소 벤처기업이 오픈소스 기반의 저가 가정용 제품을 보급하던 것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그동안 국내에 산업용 3D 프린터 제품을 제조하는 회사는 캐리마나 인스텍 등 극소수에 불과했다.

사업 확대 흐름에 정부도 거들고 나섰다. 조달청은 지난해 11월 다수공급자계약으로 나라장터 종합쇼핑몰에 3D 프린터를 공개했다. 3D 프린터의 종합쇼핑몰 등록은 혁신형 창업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창업기업에는 다수공급자계약 시 적격성 평가 면제 등 혜택을 부여해 공공기관 시장 진입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했다.

▶무조건적인 장미빛 전망ㆍ착각은 금물= 일각에서는 3D 프린터의 급부상에 ‘거품’이 끼어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부 업체가 양산을 추진하고 있는 FDM 방식의 3D 프린터가 산업용으로는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강민철 한국마그네슘기술연구조합 상임이사(공학박사)는 지난달 17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3D 프린터 산업의 동향 및 전망’ 코스닥 산업 컨퍼런스에서 “고체수지 재료를 녹여 쌓아 만드는 FDM 방식은 정밀도 부분에서 떨어지기 때문에 산업용 제품을 만드는 데에는 적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강 이사는 또 플라스틱을 주재료로 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이미 과당 경쟁으로 부가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며 “반면 금속분야는 향후 기술발전 및 응용분야 확대로 시장 성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실제 포드와 재규어, 폭스바겐, 애스톤 마틴 등 3D 프린터를 사용 중인 일부 외국 자동차 업체들은 ‘시제품 제조’에 한정지어 3D 프린터를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품의 대량생산에 3D 프린터를 이용하기에는 가격이 너무 비싸고, 제품제작 속도 또한 너무 느리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역시 “1.5인치 정육면체 크기 제품 생산에 평균 1시간가량 소요되기 때문에 대량생산을 위핸 생산 속도 향상이 급선무”라며 “제작방식 특성상 사출성형 속도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다만 올 2월 3D 프린터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미국 3D시스템스 사의 ‘3D프린팅 특허 권리’가 만료되면서 다시 한 번의 기회가 찾아올 전망이다. 3D시스템스는 SLS 방식 3D 프린터 기술의 특허를 가지고 있는데, 특허의 만료로 현재 1억원을호가하는 SLS 방식 프린터 가격이 수천만원대까지 낮아질 것이라는게 업계의 관측이다.

yesye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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