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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 신창훈> 늑대에게 자유는 양에게는 죽음이다
정부가 조만간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을 내놓는다. 예년과 달리 올해는 국회에서 새해 예산안이 처리된 후에 발표될 것 같다.

큰 그림은 이미 공개돼 있다. ‘수출과 내수의 균형성장’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내수를 이루는 투자와 민간소비 확대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수출과 내수의 균형성장이란 용어를 경제정책 운용 계획에 명시하는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뒤집어 말하면 그동안 수출과 내수가 극심한 불균형 성장을 보여왔다는 뜻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의 정책 방향은 옳다. 수출과 내수의 불균형 성장은 올해 7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경상수지 흑자 규모에서 잘 드러난다.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도 수출은 그런대로 유지가 되고 있지만 기업들이 투자를 안 하고 가계의 소비여력이 떨어져 자본재와 소비재 수입이 늘어나지 않으면서 생긴 현상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보고서에서 “기본적으로 경상수지는 우리 경제의 수출과 내수의 격차를 나타내는 지표”라며 “경상수지 흑자는 내수 침체를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달러화에 대한 원화강세 흐름은 수출과 내수의 불균형이 가져온 당연한 귀결이다. 달러가 넘쳐 들어오는데 원화 값이 오르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기업과 가계의 소득 불균형도 ‘임계점’에 달했다. 2000년 우리나라 총소득(GDP)의 69%에 달했던 가계소득 비중은 2012년에 62%까지 하락했다. 반면 기업소득은 같은 기간 17%에서 23%로 증가했다. 우리나라의 가계소득 비중 하락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헝가리, 폴란드에 이어 세 번째로 크다는 게 KDI의 분석이다. 국책 연구기관인 KDI가 이런 주장이 담긴 보고서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 또한 주목할 포인트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특정 대기업에 의존하는 ‘절름발이 경제성장’ 역시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최근 헤럴드경제가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의뢰해 코스피 상장사 156곳의 최근 3년간 영업이익을 집계한 결과, 삼성전자를 제외한 상장사의 영업이익은 되레 줄어들었다.

갈수록 벌어지는 대기업과 중견ㆍ중소기업 간 격차, 계층 간 소득격차, 가속화하고 있는 영세자영업의 붕괴 흐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갈등도 성장의 불균형이 초래한 결과물이다. 늑대에게 자유는 양들에게는 죽음이다. 또 양들의 죽음은 늑대에겐 ‘미래의 죽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냉혹한 정글의 법칙이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성장의 불균형을 방치했다가는 산업생태계 전체가 파괴될 것이다.

박근혜정부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국정의 핵심과제로 추진 중이다. 법과 질서의 권위를 세우겠다는 얘기인데 뭐라 딴죽 걸 일은 아니다. 다만 법질서를 강조할수록 국민의 행복감은 떨어지고 피로도는 커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금 정부가 할 일은 ‘비정상의 정상화’가 아니라 사회 곳곳에 뿌리 깊이 박힌 ‘불균형’을 시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신창훈 경제부 정책팀장 chuns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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