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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따보다 무서운 사이버학폭>벗어날 수 없는 은밀한 폭력, 사이버비방
[헤럴드경제=서상범 기자]이수현(가명ㆍ14ㆍ여) 양은 요즘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카카오스토리(카스ㆍ청소년에게 유행중인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에 자신에 대한 악담과 비방글이 올라오는 꿈을 꾸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자신이 태그된 게시물이 있다는 카스의 알림이 악몽의 시작이었다. 얼마 전 이 양과 사소한 일로 다퉜던 한 친구의 카스에는 “수현이는 X나 병신이니까 이제부터 놀지 말자”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다른 친구들의 동조글도 빼곡했다.

비방의 수위는 점점 더 심해졌다. 비방을 주도하는 이 양의 반 친구들의 카스에는 “수현이와 인사하면 알아서 하라”는 협박부터 ‘PC방 요금을 안 내고 도망간 도둑X’이라는 허위 내용까지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자신에 대한 욕설로 도배된 글을 보면서 이 양은 수치심과 함께 친구들에 대한 배신감으로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에 대한 비방글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게시글에 이용자의 이름을 태그하면 자동 알림이 울리는 이른바 ‘소환’이라는 방식으로 친구들은 이 양을 괴롭혔다.

계속된 비방에 힘들어하던 이 양은 결국 열린의사회에서 운영중인 모바일 학교폭력 상담 프로그램인 ‘상다미쌤’에 고민을 털어놨다. 이 양은 “카카오스토리의 알림이 울릴 때마다 오늘은 또 어떤 욕이 올라왔을까 두렵다”며 내가 죽으면 이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도 했다”며 울먹였다.

 
스마트폰을 꺼내든 학생들이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사진은 특정사건과 관계없으며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연출된 사진임을 밝혀둡니다. 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모바일 메신저인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를 이용한 사이버 비방이 활개치고 있다.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이 지난 6월 10대에서 50대 전국 남녀 2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6.5%가 카카오톡을 주 메신저로 사용할 정도로 카카오톡은 국민 메신저로 자리잡았다. 네이트온UC(1.5%), 라인(1.5%), 마이피플(0.5%) 등 경쟁사를 압도할 정도다. 최근에는 단체 채팅방을 통해 학교 공지사항 등이 카카오톡으로 전파되는 등 청소년 사이에서 카카오톡은 필수가 됐다.

하지만 이처럼 카카오톡을 이용한 사이버 메신저가 활성화되면서 부작용도 함께 발생하고 있다. 과거 오프라인에서 일어나던 왕따와 뒷담화가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헤럴드경제가 열린의사회와 함께 지난 7월부터 11월까지 상다미쌤을 통해 상담을 한 사례 621건을 대상으로 사이버 폭력에 대한 유형별 분석을 한 결과, 피상담자의 40.9%(254건)가 카카오톡이나 카스를 통한 비방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 중 초등학생이 131건으로 가장 많은 빈도를 나타냈고, 중학생 77건, 고등학생 46건 순이었다.

이들에 따르면 사이버 비방의 유형은 직접적으로 카카오톡을 통해 욕설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물론 카스에 비방 대상에 대한 험담을 올리고 이를 가해자들이 공유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또 가해자들은 피해 학생을 겨냥해 자신의 프로필 사진에 욕설은 물론, 피해자의 사진을 포토샵 등으로 합성한 엽기사진을 카스에 올려놓고 조롱하기도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피해자가 이를 보고 싶지 않아도 앞서 이 양의 경우와 같이 ‘소환’이라는 방법을 사용해 강제적으로 괴롭힘을 주는 것이다.

카카오톡이나 카스를 탈퇴해 고통을 벗어나기도 쉽지 않다. 10대들 사이의 거의 유일한 대화수단으로 자리잡은 카카오톡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생활 자체가 어려울 정도이기 때문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이버 비방의 경우 은밀하고도 신속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물론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된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가지며, 사이버 공간의 문제가 현실의 폭력으로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tig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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