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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 포럼 - 양준모> 금산분리와 동양사태
‘속죄양’의 사전적 의미는 유대교도들이 속죄일에 제물로 바치는 양이나 염소다. 멕시코의 고대 문명사 연구에 의하면 테오티우타칸(Teotihuacan) 왕국에서는 사람의 심장과 피를 제물로 바쳤다고 한다. 제물은 미약한 인간이 신에게 바치는 선물이다. 이를 통해 미지의 힘에 복종의 뜻을 전하고 재앙을 막고자 했다. 현대적 의미에서는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공공의 적을 만들어 자기의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속죄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재벌’은 속죄양의 대명사다. 지난 1997년 외환 위기에서 환율정책 실패 등 거시경제정책의 실패보다는 재벌의 문어발식 경영이 도마 위에 올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는 정책금융의 개입 실패보다는 시장의 탐욕이 그 죄를 뒤집어썼다. 요즘 동양그룹 사태에서 정치권은 다시금 손쉬운 속죄양을 찾고 있다. 금산분리가 강화되지 못해서 동양그룹 사태가 발생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동양그룹 사태는 동양그룹 5개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함으로써 대규모 개인투자자들의 피해가 발생한 사건이다. 약 5만여명이 피해를 입었으며, 피해액은 약 2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금융 피해 사태다. 지금 지적되고 있는 의혹은 동양증권이 계열사의 기업어음과 회사채를 불완전 판매한 것과 계열 대부업체를 활용해 계열사를 지원한 것이다. 기업어음을 돌려 막는 등 경영진의 부적절한 행위도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의혹이 사실로 밝혀져도 이러한 행동은 금산분리와는 관계가 없는 불법적 행위다.

동양그룹 사태는 시장성 차입금인 기업어음과 회사채를 발행하고 이를 개인투자자에게 집중적으로 판매해서 발생했다. 이미 투자부적격 회사채임에도 불구하고 그 위험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판매했다는 의혹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불완전 판매는 금산분리와 관계없이 언제 어디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전문적 지식이 없는 소액투자자들에게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에 위험고지 의무를 다하도록 하는 투자자 보호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기업어음과 관련된 규제가 다른 자금 조달 수단과 관련된 그것과 차이가 있어 자금난으로 은행 대출이 어려운 부실기업이 기업어음을 이용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기업어음 발행 잔액은 2010년 16조8000억원에서 2013년 143조8000억원으로 급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시에 문제가 되었던 섀도 뱅킹(shadow banking)과 유사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결국 기업어음의 발행 절차 및 한도에 대한 감독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동양그룹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문제 원인을 명확히 분석해 개별적으로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금산분리로는 이러한 사태 발생을 막을 수 없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금산분리 강화 방안은 금융사 대주주 적격성 심사, 의결권 제한, 그리고 중간 금융지주 의무화 등인데, 방법론에 대해 회의적인 게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동양 사태의 대응 방안으로 재벌을 속죄양으로 삼고 불합리한 입법을 추진하기보다는 투자자 보호 정책을 강화하고 금융기관에 대한 건전성 강화 정책 등을 추진하길 기대한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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