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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등골 빼먹는다는 ‘등골브레이커’ …2013년 대한민국 노스페이스는 가고 한벌당 백만원 넘는 ‘캐몽’ 신분 급상승
노스페이스에 식상함 느낀 중고생
‘캐나다 구스+몽클레르’ 합친 ‘캐몽’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 1위 영예
초등생은 수십만원대 란도셀 대유행

“내아이만 기죽을까봐 어쩔수 없이”
가뜩이나 경기불황에 부모 부담백배
노페 이어 캐몽의 신계급도도 등장


‘등골 브레이커’. 부모의 등골을 빼먹는다는 의미의 이 단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겨울철이면 중고생들이 너도나도 입고 다니던 노스페이스사의 점퍼에서 유래됐다. 한 벌당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노스페이스 점퍼를 사 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에게 부모는 등골이 휘어질 정도로 부담을 느낀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노스페이스를 넘어 ‘캐몽’(캐나다구스+몽클레르)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노스페이스에 식상함을 느낀 아이들 사이에서 한 벌당 백만원을 넘는 고급 패딩점퍼 브랜드인 캐몽이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노티카에서 노스페이스, 캐나다구스까지…등골 브레이커의 역사=등골 브레이커의 역사는 9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됐다. 당시 중고생들사이에서는 교복 상의 위에 입는 점퍼로 노티카라는 브랜드가 유행했었다. 원색의 컬러와 함께 브랜드 영어명이 점퍼에 새겨진 것이 특징이었던 이 브랜드는 당시 가격으로 10만원대 후반에서 30만원까지의 고가였지만 학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중학 시절 처음 노티카 점퍼를 입었다는 홍영호(32) 씨는 “당시 한 반에 10명 정도는 노티카 점퍼를 입고 있었다”며 “요즘 노스페이스 정도는 아니었지만 또래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었다”고 회상했다. 홍 씨는 “노티카 점퍼가 소위 일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옷이라는 인식 때문에 학교에서 선생님들에게 압수되기도 했었다”고 덧붙였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대유행하는 일본 직수입 가방 브랜드 란도셀. 최소 30만원에서 최대 100만원까지 가격대를 형성해 새로운 등골브레이커로 부상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부모의 등골을 휘게 하는 수준이었던 중고생들의 패션은 최근 몇 년 사이 부모의 등뼈를 부수는 수준이 돼버렸다. 지난 2011년 겨울 처음 등장한 노스페이스사의 패딩점퍼는 최저 25만원에서 최고 70만원대의 고가에도 불구하고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네티즌들은 노스페이스 점퍼를 가격에 따라 저가모델은 노예, 중간가격의 모델은 평민, 최고가는 왕족이라는 계급까지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등골 브레이커가 등장했다. 바로 캐몽이라고 부르는 고급 패딩점퍼다. 수입 브랜드인 캐나다구스와 몽클레르는 한 벌당 기본 100만원이 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중고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 1위로 꼽힌다. 롯데백화점 에비뉴엘(명품관)에 입점한 몽클레르는 올 들어 월평균 1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캐나다구스도 매출이 월 7억원에 달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고가 패딩 구매고객 중 상당수가 부모와 함께 온 중고생들”이라며 “작년만 해도 구입 고객 중 청소년 비중이 절반도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본사 차원의 마케팅은 전혀 없었다”며 “매장에 방문한 청소년들이 먼저 모델명을 알아와 상품을 보여 달라고 할 정도로 또래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사이에서는 수십만원대의 일제 가방이 유행이다. 란도셀이라고 불리는 이 가방은 대부분 일본에서 직수입 되는데 최소 30만원에서 최대 100만원까지 가격대가 형성돼 있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교사인 박모(36) 씨는 “각 반에 5~6명은 란도셀을 가지고 다닌다”며 “최근 일본만화 등이 유행하면서 만화에 등장하는 가방을 사 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 “비싸도 내 아이 기 살리기 위해서” vs “또래집단의 자연스러운 차별의식”=이처럼 고가의류와 학생용품이 유행하면서 부모들의 부담은 당연히 커지고 있다. 중학생 자녀를 둔 김용희(44) 씨는 “불과 1년 전에 국산 고급 브랜드의 점퍼를 사 줬는데 올해 또 다른 브랜드를 사 달라고 조르는 아이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마음같아서는 아무 브랜드나 입으라고 하고 싶지만 혹시나 학교에서 우리 애만 기가 죽지 않을까라는 마음에 지갑을 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자녀를 둔 박모(39) 씨는 “교복을 입으면 의류비 부담이 조금 덜할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며 “학생들에게 수십만원대의 옷을 사 입히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것인지 회의감이 들지만 남들도 다 산다는데 우리 아이만 못해 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씁쓸해 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또래집단에서 차이를 드러냄과 동시에 집단에 소속되고 싶은 심리가 청소년 사이에서 존재한다”며 “한 시기에 유행하는 옷이나 용품에 대해 무리를 해서라도 소유하고 싶어 하는 게 청소년들의 성향”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이에 대해 남들과 차이를 보이고 싶어하는 청소년의 자연스러운 특성이라는 의견도 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른바 등골 브레이커라고 불리는 옷들에 대해 어른들이 더욱 부정적 반응을 보인다”며 “노스페이스가 처음 이슈가 됐을 때 어른들의 반응은 고작 학생 명품이 왜 이렇게 비싸냐”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고 분석했다. 황 교수는 “아이들에게 노스페이스는 우선 기능적으로 추위를 막아줄 뿐 아니라 종류가 다양해 또래 사이에서 차이를 드러낼 수 있는 옷으로 인기를 끌었다”며 “막상 옷을 입는 학생들은 계급의식이나 과시욕구는 없는 데 비해 기성세대와 언론 등이 자극적인 비판을 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서상범 기자/tig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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