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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산업관료-외교관료 힘겨루기…정권마다 뗐다 붙이는 ‘통상’
업계 이익이냐 협상교섭력 강화냐
1994년 미국이 슈퍼 301조를 무기로 국내 자동차 시장 개방을 압박하면서 시작된 한ㆍ미 자동차 협상에서 한국 협상단은 부처 간 이견으로 자중지란에 빠졌다.

보복조치를 우려한 자동차 업계의 입장을 받아들인 통상산업부가 미국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하길 원한 반면, 외무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으로 맞받아치자고 주장하며 분열됐다.

이 같은 분란은 통상교섭에 주무부처인 통산부뿐 아니라 협상전문 조직으로서 외무부, 사안에 따라 재무부와 농림부 등이 참여하는 느슨한 체제가 주 원인이었다. 당초 김영삼 정부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결로 열리는 세계무역기구(WTO) 시대에 대비, 상공자원부를 통상산업부로 개편했지만 부처 간 기득권 다툼으로 통산부에 전권을 몰아주지 못했다.

이후 통상교섭 기능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직개편 과정의 전리품이 된 것은 교섭력과 산업 연계성을 두고 산업관료와 외교관료 사이의 힘겨루기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통상교섭본부를 설치키로 했지만, 새 조직을 어느 부처 소속으로 하느냐 논쟁이 다시 벌어졌다. 역시 쟁점은 교섭력과 산업계와의 연관성 중 어느 것이 중요한가였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처럼 대통령 직속 기구를 설치하자는 중재안도 나왔지만, 평소 협상 경험이 풍부한 외교통상부가 맡는 것으로 결정됐다.

노무현정부 들어 통상교섭본부는 한ㆍ미자유무역협정(FTA) 논란의 중심에 섰다. 농업과 서비스업 등 피해 예상 산업을 중심으로 “외교부 출신 통상관료들이 한ㆍ미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나라 경제를 미국에 갖다 바친다”는 비판이 일었다. 정무적 판단에 산업계 이익이 무시됐다는 불만이 깔려 있었다.

결국 박근혜정부 들어 통상 기능은 다시 산업관료 손에 넘어갔다. “산업부처가 통상을 맡는 것은 개도국형 보호주의”라는 외교부와 경제학자들의 격렬한 반발이 있었지만, 결국 산업계 상황을 잘 이해하는 부처가 통상업무를 틀어쥐어야 한다는 명분이 앞서 교섭조정권까지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됐다. 대신 최경림 전 FTA 교섭대표를 통상차관보에 선임하는 선에서 반발은 무마됐다.

정부조직개편 10개월이 지난 현재, 선택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김영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원은 “산업부로 통상정책이 이관되면서 중소기업 등의 해외 진출 지원 등 산업정책과의 연계가 잘 이뤄지고 있고 시장 개방에 치우쳐 있던 통상정책이 경제협력을 포괄하는 상생 모델로 진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는 “WTO 협정에 따라 내년 말까지 반드시 진행돼야 하는 쌀 관세화 문제가 산업부의 무관심으로 전혀 논의조차 되지 않는 등 통상 현안이 많이 지체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미ㆍ일 중심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중국ㆍ호주가 중심이 된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간 경쟁 등 새로운 통상환경 앞에 부처 간 이견도 다시 표출되고 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국감에서 “TPP의 중요성에 대해 범부처 간 강한 공감대가 있다”고 밝혔지만, 정작 주무부처장인 윤상직 산업부 장관은 “신중히 검토 중”이라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내보였다.

통상전문 인력 양성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협상능력이 저하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10여개의 FTA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돼 각 협상단의 분과장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내년 3월까지 파견돼 있는 외교부 직원들도 속속 복귀를 서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원호연 기자/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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