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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수출 신기원 연 박정희 대통령…이젠 딸이 ‘수출 드라이브’ 바통
박정희 대통령 수출지향 승부수…박근혜 대통령도 무역투자진흥회의 정례화

수출업체 지원 공통점…대기업 중심 국가주도-창조경제·中企 활로 모색 차이점




2013년 5월 1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최대 규모의 인사들이 영빈관에 모였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를 비롯해 각 부처 장관은 물론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한덕수 한국무역협회 회장 등 180여명의 정재계 인사들 손에는 모두 두툼한 서류들이 들려 있었다.

“특수장비차를 수출하는데 바이어에게 보여주려고 해외에서 쇼를 하면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예산을 지원해 달라” “대통령님께 떼쓰는 심정으로 왔다” “FTA 체결 국가마다 기준이 달라서 행정기준을 마련하기 어렵다”등 기업인들의 민원은 끝도 없이 계속됐다. 장장 110분간 진행된 이날 회의에선 250여개에 달하는 현장 애로사항이 쏟아졌고 소관 장관들은 박 대통령 앞에서 일일히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박 대통령의 ‘무역투자진흥회의’는 이렇게 시작됐다. 매분기 한 차례 정례적으로 하기로 했던 이 회의는 다음달에 벌써 4차를 맞는다. 5월에 첫 테이프를 끊은 회의가 불과 두 달에 한 번꼴로 열리는 셈이다. 게다가 다른 회의와 달리 무역투자진흥회의는 청와대 비서실에서 아예 날짜까지 박아서 경제수석실 등 관련 수석실로 하달된다. 박 대통령이 이 회의를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수출입국’에 한국경제의 명운을 걸며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자신의 응접실에서 직접 주재했던 아버지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수출 DNA가 대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수입대체 vs 수출지향…갈림길에 섰던 아버지= ‘수출입국’의 포문이 공식화된 시점은 196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자립경제의 기초를 확립하는 제1과제로 ‘수출진흥을 통한 외화 획득’을 꼽고 ‘수출제일주의’를 역설했다. 수출액 1억달러 달성을 기념해 11월 30일을 ‘수출의 날’로 제정한 것도 이때다. 이듬해 65년 연두교서에선 ▷증산 ▷수출 ▷건설 이라는 3대 지향점을 분명히 하고, 이 해를 ‘수출의 해’로 지정했다. 박 대통령이 가장 챙기는 무역투자진흥회의의 모태인 수출진흥확대회의가 매월 청와대 응접실에서 열린 것도 이때가 처음이다.

하지만 ‘수출제일주의’를 표명하기까지 박정희 대통령의 선택은 쉽지 않았다. 통상 한국경제의 용틀임을 1962년 1월 13일 경제기획원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당시 국가재건최고위 의장으로 있던 박 대통령은 내자(內資) 이용과 기간산업 건설을 강화하는 방향에 주안점을 뒀다. 하지만 ‘내자’를 끌어내기 위해 62년 6월 깜짝 단행했던 화폐개혁이 실패로 끝나고, 미국마저 기간산업 건설을 위한 자금 지원을 거절하면서 난관에 부닥쳤다.

이후 국가재건최고위는 수입대체냐 수출이냐를 놓고 격론에 빠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당시 유원식 최고회의 재경위원장 등 최고회의 핵심 주체세력들은 수입대체산업 건설을 강력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당시 세계적인 분위기도 수입대체로 기울고 있었다.

반면 박충훈 상공차관 등 상공부는 비교우위가 있는 경공업을 육성해 수출산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출지향적 경제는 전향적이고 적극적인데 반해 수입대체형은 방어적이고 소극적이다. 뿐만 아니라 수출제일주의는 자유기업, 시장경제 원칙과 자유민주주의 창달에도 기여할 것이다”는 당시 상공부의 논리에 최고위 의장이던 고 박 대통령이 “물건을 만들기만 하면 무엇하냐. 팔야야 된다. 그러니 우리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선 상공농사가 돼야 한다”고 손을 들어주면서 비로소 한국경제가 수출주도형 경제로 바꿀 수 있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수출지향으로 승부수를 띄운 계기는 61년 6월 당시 김용완 경방사장, 전백보 천우사 사장, 정인욱 강원산업 사장 등과의 만남에서 시작됐다는 시각도 있다. 당시 최고위 부의장으로 있던 박 대통령은 홍콩이 보세가공을 해서 수백만이 살아가고 있다는 전 사장의 경험담에 솔깃했다고 한다.

아무런 기반시설도 없는 황무지와 다름없던 한국이 외국에서 원자재를 들여와 값싼 노동력으로 가공해 되파는 보세가공무역으로 수출을 개척하게 된 것도 여기서 시작된 셈이다.

▶‘닮은 듯 다른’ 부녀의 수출정책=전문가들에 따르면 부녀(父女)의 수출정책은 ▷무역업무에 대한 애로 타개와 장려책 ▷수출품 제조업체에 대한 지원책 등 양대 골격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은 닮은꼴이다. 부녀 모두 현장에서 답을 찾았다. 무역투자진흥회의나 수출진흥확대회의나 모두 트러블 슈팅(trouble shootingㆍ분쟁 조정)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수출기업에 대한 애로점 해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버지의 수출정책이 노동집약적, 그리고 대기업 위주로 정부주도의 ‘탑다운 방식’으로 진행됐다면, 박 대통령의 수출정책은 창조경제와 수출저변의 확대, 내수시장에 한정돼 있는 중소ㆍ중견기업의 활로 모색에 출발점이 있다는 게 다른 점으로 꼽힌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수출은 단순히 물건을 팔아 이윤을 남기는 것에 있지 않다”며 “상호호혜적 세일즈 외교를 통해 긴 안목을 갖고 템포는 늦더라도 시장을 확대해 나가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무역협회 정책협력실 인근배 실장은 이와 관련 “수출을 진흥하는 형식에 큰 변화는 없다”면서도 ”국제 무역규범으로 자의적인 정부 지원이 불가능해진 데다 공정무역 등의 분위기로 인해 디테일한 지원시책에선 상당한 차이점이 보인다”고 말했다.

한석희ㆍ원호연 기자/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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