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피카소 작품도 아닌데 도대체 왜들 이럴까? 미술품 경매시장이 뜨겁다. 희귀작을 사려는 이들로 경매장은 발디딜 틈이 없고, 작품들은 추정가를 훌쩍 넘어 팔리고 있다.

지난 12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열린 ‘전후(戰後) 현대미술 이브닝 경매’에서 프랜시스 베이컨(영국)의 세 폭짜리 유화 ‘루시안 프로이트에 대한 연구’는 뭉크(노르웨이)의 ‘절규’를 누르고 역대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사람을 마구 일그러뜨린 베이컨의 기괴한 인물화는 1억4240만달러(한화 약 1528억원)에 팔리며 기염을 토했다. 이날 경매에선 제프 쿤스, 윌렘 데 쿠닝의 작품도 작가의 이전 최고가 기록을 깼다. 

크리스티는 하루 저녁 경매에서 6억9158만달러(7386억원)라는 어마어마한 낙찰액을 달성했다. 단 두 시간 만에 거둔 기록이자, 크리스티 247년 역사상 최대 이브닝 낙찰액이다. 이에 따라 크리스티는 올 연매출이 70억달러를 훌쩍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튿날 개최된 소더비 뉴욕의 이브닝 경매도 열기가 뜨거웠다. 앤디 워홀의 작품 ‘실버카 크래시’는 추정가를 크게 웃돌며 1억544만달러(1120억원)에 팔렸다. 이 같은 낙찰가는 워홀의 기존 최고가 낙찰기록을 또다시 경신한 것이었다. 
소더비 또한 이날 총 3억8064만달러(404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양사가 놀라운 신기록을 달성한 것. 이에 뉴욕타임스는 “슈퍼리치들이 마침내 벽(에 걸 그림)에도 돈을 투자하기 시작했다”며 대서 특필했다. 일각에서는 근래 미술품값이 비정상적으로 뛰고 있다며 ‘거품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일부 검증이 덜 끝난 작가의 작품까지 뛰고 있는 건 문제라는 것. 하지만 CNN머니는 “모든 작품이 고공행진 중인 것은 아니다. 일부 주요 작품의 경우가 그렇다. 그리고 그 흐름은 수요층이 늘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현대미술품이 슈퍼리치들의 확실한 투자대상으로 편입된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 미술시장 경매 최고가를 경신한 프랜시스 베이컨의 세 폭짜리 유화‘ 루시안 프로이트에 대한 연구’

▶뉴머니와 뉴페이스의 활발한 진입=글로벌 미술시장이 최근 2, 3년간 뜨거운 활황세를 보이는 것은 ‘뉴 머니’, 곧 새로운 수요층이 대거 진입했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 속속 유입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유명 경매사의 이브닝세일(하이라이트 작품 50~70점을 추려 판매하는 특급경매)에선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중국, 중동, 러시아, 인도, 남미 고객들이 앞다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진 2007년, 2008년 미국의 큰손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중국, 러시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브라질의 새로운 수요층이 빠르게 유입되면서 프리미엄 아트마켓은 더욱 뜨거워졌다. 그 대표적인 예가 카타르 왕실과 아랍에미리트 왕실이다. 막강한 오일머니로 무장한 이들 나라는 ‘22세기 문화강국’을 목표로 천문학적인 돈을 ‘걸작 쇼핑’에 쏟아붓고 있다. 카타르의 공주(알마야사 빈트 하미드 빈 할리파)는 국왕의 특명을 받고 지난해 1조4500억원어치의 미술품을 사들였다.

소더비 측은 “올 뉴욕 이브닝세일 참가자의 64%는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온 고객이었다”고 밝혔다. 해외 고객의 비중이 더 높은 것은 1위 업체인 크리스티도 마찬가지다. 

제프 쿤스의 ‘풍선조각’626억원

▶수익률 좋고, 환금성 좋으니 자꾸 끌리네=슈퍼리치들은 변동폭이 큰 금융상품과 주식, 금(金), 부동산 투자를 보완해줄 대상으로 미술품을 꼽기 시작했다. 알짜 미술품에 투자하는 것이 지구촌 큰손들 사이에 불문율이 되고 있다.

그 이유는 걸작의 경우 수익률이 대부분 좋기 때문이다. 미술사적으로, 또 시장에서 검증된 작가의 대표작은 작품값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 각종 지표들이 이를 말해준다. 이를 테면 5년 전 경매에서 높은 가격에 낙찰됐던 앤디 워홀의 작품이 다시 경매에 나와 그 가격의 1.5배 또는 2배 이상의 가격에 리세일되는 것을 부호들은 지켜봐왔기 때문에 미술품에 신뢰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제2의 금융위기가 와도, 검증된 작품은 결코 가격이 추락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광범위하게 확산돼 있는 것이다. 게다가 세월히 흐르면 흐를수록 걸작은 더욱 오를 것이 확실하니 끌릴 수밖에 없다. 그림과 조각을 믿을 만한 투자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신흥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앤디 워홀의‘ 실버카 크래시’1120억원, 워홀 작품으로는 최고가

▶풍부하고 다채로운 콘텐츠도 매력포인트=현대미술품을 다루는 글로벌 아트마켓은 최근 들어 상차림이 매우 다양해졌다. 풍부한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이전 작품의 경우 스타 작가의 숫자와 작품이 한정돼 있어 마켓에 좋은 작품이 나오기 힘들다. 반 고흐, 세잔의 걸작은 이미 미술관에 소장돼 있기 때문이다. 반면 현대미술의 경우 스타 작가의 층이 대단히 두껍다. 앤디 워홀, 마크 로스코, 잭슨 폴락, 바스키아 같은 슈퍼스타가 있는가 하면 드 쿠닝, 리히텐슈타인, 톰블리, 재스퍼 존스 등도 그에 못지않는 작가들이다. 게다가 제프 쿤스, 데미안 허스트, 마크 퀸 등 이제 고작 40~50대 중에도 걸출한 작가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아시아에서도 중국의 쩡판즈, 차이궈창, 일본의 무라카미 다카시 등 스타 작가들이 속속 부상 중이다. 바로 이 점이 슈퍼리치들로 하여금 ‘골라서 수집하고’ 싶게 만드는 요인이다.

▶투명한 거래, 그리고 풍부한 정보=국내에선 고가의 미술품이 비자금 조성이나 세금 탈루를 위한 수단으로 비쳐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 홍콩에선 부자들이 좋은 작품을 사서 미술관에 내걸고 대중과 함께 즐기는 예가 많아 꼭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게다가 경매에서의 거래는 투명성이 관건이다. 비록 낙찰자 신원은 공개하지 않지만 가격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공정하게 제시된다. 아울러 글로벌 미술시장의 거래정보는 아트넷, 프라이스닷컴 등 관련 웹사이트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곧바로 확인이 가능하다. 21세기 들어 미술경매와 거래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제고된 것도 투자자를 끌어모으는 요인이다.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의 경매장면

▶부호들의 공통된 화두로 떠오른 문화예술투자=슈퍼리치들은 단순히 투자메리트가 있다고 해서 작품을 사는 건 아니다. 전 세계에 오로지 하나밖에 없는 걸작을 온전히 보유하고, 매일매일 이를 음미하는 것에서 정신적 포만감을 얻기 때문이다. 미술품은 투자인 동시에, 감상이 더욱 중요한 덕목인 것이다. 고가의 보석, 슈퍼카, 별장을 모두 섭렵한 이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게 미술품인 것도 바로 정신적 만족감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아트가 최후의 럭셔리, 럭셔리의 끝으로 불리는 이유다. 아울러 풍부한 스토리를 지니고 있는 것도 부호들의 구미를 당기게 하는 요소다. 하버드 의대 출신의 과학스릴러 작가 마이클 크라이튼이 수집했던 작품, 영화배우 휴 그랜트가 아끼던 그림이라는 이력은 수집가들을 더욱 짜릿하게 만든다. 이 같은 이력이 화려할수록 그 작품은 더욱 높은 부가가치를 지니게 된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