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출범 동시에 국가안보실 신설…中 · 日도 NSC 구체화…잇단 창설 배경엔 G2 패권경쟁 그림자가…
한국ㆍ중국ㆍ일본, 동북아시아 3국간 안보사령탑 강화 경쟁이 뜨겁다. 한국은 박근혜정부 출범과 동시에 상설 국가안보 컨트롤 타워인 국가안보실을 신설했는데, 중국과 일본도 이달 들어 미국의 국가안보위원회(NSC)를 모델로 각각 국가안전위원회와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창설하겠다고 공언했다. 경제적으로는 교류·협력과 상호 의존도가 증대하고 있지만 군사·안보적으로는 불신과 갈등을 넘어 물리적 충돌 가능성마저 고조되는 ‘아시아 패러독스’ 현상이 한·중·일 NSC 삼국지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중·일 NSC의 명실상부한 핵심 권력기구화=한국은 일찌감치 박근혜 대통령 취임에 맞춰 기존의 청와대 수석급이었던 국가위기관리실을 비서실장급인 국가안보실로 확대·격상, 외교·안보 정책의 총괄적인 조율과 위기관리 기능을 맡도록 했다.
자위권 행사와 군국주의를 향해 달리고 있는 일본도 내년 1월을 목표로 국가안전보장회의 창설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 7일 중의원을 통과한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고 국민적 공감대도 조성돼 있다. 이에 질세라 중국 역시 지난 12일 막을 내린 공산당 18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3중전회)에서 중국판 NSC인 국가안전위원회를 설립하기로 했다. 중국은 기존에 외사영도소조와 국가안전부, 공안부 등으로 분산돼 있던 권한과 조직을 국가안전위원회로 통합해 국가 안보와 관련된 대내외 정책과 군사정책 등을 총괄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중·일 삼국의 국가안보기구는 외형은 물론 인적 구성에 있어서도 명실상부한 핵심 권력기구임이 여실히 확인된다. 한국의 외교안보사령탑 역할을 맡고 있는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현 정부의 실세 중 실세로 꼽힌다. 국가안전보장국 초대 국장으로 내정된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관방참여는 아베 총리의 ‘외교 브레인’이다. 직할체제로 운영하겠다는 뜻이 반영됐다. 중국은 한술 더 뜬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직접 국가안전위원회를 관장하는 가운데 권력 서열 3위인 장더장(張德江) 전인대 상무위원장 등 당 정치국 상무위원 7명 가운데 4명이 포진될 것으로 알려졌다.
▶“NSC, 복잡한 안보상황 대응에 효율적”=한·중·일 삼국이 앞다퉈 국가안보역량 강화에 나선 것은 북한 핵 문제, 한·일-중·일 간 영토와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 등 복잡한 안보 상황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할 필요에 따른 것이다.
현재 동북아 정세는 그야말로 복마전이다. 지난해 12월 장거리로켓을 쏘아올린 데 이어 지난 2월 3차 핵실험까지 감행한 북한의 핵문제는 해법이 오리무중이다. 한·일관계는 독도와 종군 위안부, 근로정신대 배상 문제 등이 얽혀 양국에서 새 정부가 출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조차 갖지 못할 정도로 꽁꽁 얼어붙었다. 중·일관계는 한층 더 심각하다.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를 둘러싼 양국의 갈등은 무력 충돌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동북아 정세가 이처럼 복잡하고 심각하게 돌아가자 한·중·일 삼국은 자연스럽게 전 세계를 무대로 안보전략을 구사하는 미국의 NSC 시스템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서주석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안보 관련 사안이 과거에 비해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면서 한·중·일 모두 보다 전략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생겼다”며 “미국의 NSC 시스템은 국가안보와 관련해 일관되면서도 포괄적인 전략을 짜는 데 유용하고 사안별로 집중적ㆍ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일본의 경우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창설이 정치인들의 잇단 도발적 망언과 집단자위권 행사 추진, 평화헌법 개정 등과 맞물리면서 우경화 행보의 일환이 아니냐는 의혹도 사고 있다.
▶미·중 패권경쟁의 그늘=한·중·일 NSC 경쟁의 보다 근본적인 배경에는 미국과 중국 간 피할 수 없는 패권 경쟁이 자리하고 있다.
중국의 전례없는 경제성장과 이를 기반으로 한 군사력 증강으로 동북아에서는 미국 일변도의 안보질서가 흔들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안보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는 형편이다. 중국은 시진핑체제 출범 이후 미국과 새로운 대국관계 정립을 요구하고 주변을 둘러싼 해역에서 영토 보호를 핵심 이익으로 제기하고 있다.
특히 서태평양은 미국의 한반도~오키나와~대만~괌~필리핀~인도네시아로 이어지는 해상방어선과 중국의 한반도~일본 규슈~대만~필리핀~말레이시아~베트남으로 연결되는 제1도련선(島鍊線)이 중첩되면서 새로운 화약고로 떠오를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일본이 한국과 달리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MD)체계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적극적인 것도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과 일본의 셈법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의 선택이다. 김 정책실장은 “자칫 잘못하면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이 될 수 있다”며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해나갈 수밖에 없는데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전략을 치밀하게 마련해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대원 기자/shindw@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