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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19세기초 고춧가루김치 등장…통배추김치 역사는 불과 100여년
2200년 이어온 유구한 김치의 역사
中 한나라때 한반도로 유입
소금에 절인 ‘짠지’의 형태
임란 전후 日서 고추 유입
독성물질 인식 200여년간 안쓰여

조선시대 채소 재배기술 보급
재료 많아지고 종류 다양해져
‘침채→팀채→짐채→김채→김치’로…




“밭 두둑에 외가 열렸다. 이 외를 깎아 저(菹)를 담가 조상께 바치면 자손이 오래 살고 하늘이 내린 복을 받는다”

김치에 관한 최초의 기록인 중국 ‘시경(詩經)’에 담긴 내용이다. 여기에서 ‘저’가 가리키는 건 소금절임한 채소로, 바로 김치의 원형인 셈이다. 시경이 쓰인 시기를 대략 2600~3000년 전으로 추정하니, 대한민국 최고의 음식 브랜드 ‘김치’의 역사도 수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한(漢)나라의 경우 관이 주도해 순무, 죽순, 미나리 등을 이용해 7가지 저를 담가 관리했다는 문헌 기록이 있는데, 이처럼 채소를 염장해 먹는 방식이 BC 108년께 낙랑을 통해 한반도로 전해지면서 비로소 우리 민족도 김치를 먹게 됐다는 게 유력한 설이다. 한민족과 김치의 인연은 2200년 정도 되는 셈이다.

먹을 게 턱없이 부족하던 고대에는 소금에 절인 ‘짠지’가 김치였고, 지금과 같은 고춧가루가 가미된 것은 임진왜란 이후다. 전쟁과 기아에서 살아남으려는 민초들에게 매운맛이 당겼던 모양이다. 고춧가루는 김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자재가 됐으니, 그때나 지금이나 현실은 민초들에게 너무나 팍팍하다.

일본 도다이(東大)사가 소장하고 있는 ‘신라촌락문서’ 등의 기록에 따르면 삼국시대 이전부터 김치를 담가 먹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농경문화가 발달에 따라 곡류를 주식으로 삼으면서, 곡물 소화를 돕기 위해 염분이 든 채소류를 함께 먹게 된 것이다.

김치를 최초로 우리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고려 때에나 가능하다. 고려 중기의 문인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에 “순무를 장에 담그면 여름철에 먹기 좋고, 소금에 절이면 겨우내 반찬이 된다”고 기록해 김장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엔 오이, 미나리, 부추, 갓, 죽순 등 김치에 들어가는 채소가 다양해진 것은 물론 파, 마늘, 생강을 사용한 양념형 김치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의 김치는 여전히 장아찌나 소금절임 형태에 그쳤다. 고춧가루나 젓갈을 쓰지 않고 소금에 절인 채소에 향신료를 섞어 재우는 형태라 해서 ‘침채(沈菜)’라는 특유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채소에 소금물을 붓거나 소금을 뿌려두면 숙성되면서 수분이 빠져나와 채소가 물에 잠기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이 침채란 말이 나중에 ‘팀채→짐채→김채→김치’로 변화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김치를 담그는 작업을 뜻하는 ‘침장(沈醬)’이란 말도 ‘팀장→딤장→김장’으로 변화했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선 중농 정책에 따라 농업이 권장된 데다 인쇄술의 발달로 우리 환경에 맞는 농서가 널리 보급되면서 채소 재배 기술도 향상됐고, 덕분에 김치 종류도 다양해졌다. 하지만 한민족 특유의 정서를 상징하는 ‘매운맛’은 임진왜란 이후에나 가능했다. 선조 25년(1592년) 왜란을 전후해 일본으로부터 고추가 처음으로 전해진 것이다. 고추는 당시만 해도 독성 물질로 여겨져 200여년간 식품으로 활용되진 않았다.

그러다가 19세기 초반부터 김치에 고춧가루가 들어가고, 젓갈이 다양하게 쓰이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농민항쟁 등 당시의 격변하는 사회상이 매운 음식을 찾게끔 했다고 설명하는 이도 있다. 19세기 중반 유학자들이 쓴 책엔 고추, 마늘, 파, 젓갈 등의 양념을 김치에 많이 쓰라는 권유도 있다. 이는 채소를 염장하기 위한 구황식품으로 나라에서 하사하던 소금이 잦은 기근으로 부족했던 탓도 있다.

이렇게 생겨난 매운맛에 배추가 결합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과거 김치의 주재료는 오이, 무, 가지, 순무 정도였고 배추는 지금의 속이 꽉 찬 배추가 아니었다. 속이 꽉 찬 결구형 ‘조선배추’를 처음 육종하기 시작한 건 1850년대에 중국 산둥 지역에서 ‘호(胡)배추’를 들여와 개량한 이후부터다.

조선배추 보급이 퍼진 이후에야 지금의 모습과 유사한 통배추 김치 제조법이 보편화될 수 있었다. 담금법도 장아찌형, 물김치형, 박이형, 섞박지형, 식해형 등으로 다양하게 발달하게 됐고, 제조방법에 있어서도 소금을 털어 토렴하는 절차를 거치는 2단계 담금법으로 발전하게 됐다.

이처럼 김치의 원조 격인 저(菹)의 역사는 수천년을 거슬러 간다지만, 지금의 모습을 온전히 갖춘 김치의 역사는 이제 100여년에 그친다. 이에 근대화 시기 민족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선의 전통’을 찾는 과정에서 김치를 ‘역사적으로 유구한 우리의 전통’으로 삼았던 데에 대한 자각의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한국인은 김치 없이 못 산다’는 사실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어디 가지 않는다.

백웅기 기자/kgu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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