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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때로는 적으로, 때로는 동지로…3金 3洞 정치인들 ‘애증의 30년’
한때 우리 정치를 주름잡았던, 또 지금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는 3김시대 정치인들은 스스로를 ‘이웃사촌’이라 부른다. 현 정치상황에서는 여와 야로 나뉘어 있지만, 민주화운동을 함께 했고 또 대권을 향해 치열하게 경쟁했던 그들은 지금도 ‘형님, 아우’ 하며 사석에서는 스스럼없는 모습을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손꼽히는 홍사덕 전 의원과 서청원 의원은 상도동계 출신으로 19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이하 민추협)’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정치인의 꿈을 키웠다. 또 지금 정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도 동교동계 출신으로 민추협에서 이들과 함께 활동했다.

서슬 퍼런 5공화국의 정치 탄압에 맞서 만들어진 민추협은 민주화라는 큰 목표 아래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정치인들에게 구심점이었다. 동시에 민추협은 상도동, 동교동계 정치인들이 재야에서 국회로 나서는 기회가 됐다. 민추협이 주축이 된 신한민주당은 1985년 총선에서 67석의 제1 야당으로 등극했다.

이때 상도동, 동교동계는 당선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서울과 부산 등에 총력을 집중해 강삼재, 박관용, 박찬종, 김정길, 박실, 이기택, 김동영, 조순형, 홍사덕 전 의원 등, 이후 우리 정치사를 주름잡은 쟁쟁한 인물들을 당선시켰다.

사이 좋던 상도동과 동교동이 본격적으로 갈라선 것은 1988년 13대 총선부터다. 김영삼의 상도동계, 김대중의 동교동계, 그리고 한발 늦게 뛰어든 김종필의 청구동계는 각각의 지역 기반인 영남과 호남, 충청을 나눠가졌을 뿐, 노태우 대통령의 민정당에 제1 당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하지만 이때 당선됐던 김광일, 김덕룡, 노무현, 서청원, 이인재(상도동계) 등과 권노갑, 이해찬, 박지원, 정대철, 한광옥(동교동계) 등은 지금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김종필 전 총리 중심의 청구동계도 이완구, 김기춘 등 현 정부 핵심 인사들을 배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1990년 3당 합당은 상도동과 동교동 그리고 청구동계의 운명을 또 한 번 바꿔놓는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간다”던 김영삼을 따라 상당수 상도동계 정치인들은 하루아침에 집권 여당 국회의원이 됐다. 반면 노무현, 이기택 등 일부 상도동계 인사들은 김대중의 동교동계와 손을 잡고 외로운 야당 생활을 이어갔다.

이들의 운명은 그러나 또 한 번 뒤바뀐다. DJP연합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이 그 계기가 됐다. 동교동계와 청구동계는 집권세력의 핵심으로 떠오른 반면, 한때 권력을 나눠갖던 상도동계는 또다시 재야에서 정치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이들 3김세대 상도동, 동교동 그리고 청구동계가 현실정치에서 내리막을 타게 되는 것도 이때부터다. 여야 정권교체 이후 새 정치를 추구하던 정당들은 저마다 ‘새 얼굴’을 찾아나서고, 이들 3김시대 정치입문생들은 어느새 ‘낡은 정치 세력’으로 몰려 대거 공천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또다시 10여년이 지난 2012년 말, 대선을 전후로 이들은 다시 한 번 부활했다. 상도동계에서 김덕룡 전 의원은 민주당 후보 지지로, 동교동계에서 한광옥 위원장은 새누리당 후보 지지로 엇갈리는 등 예전 상도동, 동교동 그리고 청구동계의 개념은 흐려졌지만, 이들은 청와대와 여당 그리고 야당 곳곳에서 원로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최정호 기자/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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