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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인의 자화상, 국립극장 국가브랜드 공연 ‘단테의 신곡’
만일 죽어서 저승에 간다면, 어느 곳을 예상하는가. 지옥? 연옥? 천국? 살면서 이렇다 할 큰 죄를 짓지 않았고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며 성실하게 살았다고 자부해도 천국 또는 극락에 도달하긴 어렵다. 연극 ‘단테의 신곡’에서 주인공 단테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자기애에 의한 죄성을 관객에게 일깨운다. 불의를 보고 참고 타인의 불행을 방기한 행위 역시 죄라는 것을. 700년 된 원작에서 관객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성찰하는, 의외의 기쁨과 보람을 이 연극은 안긴다.

국립극장 국가브랜드공연 ‘단테의 신곡’이 지난 2일 베일을 벗었다. 연출 한태숙, 재창작 고연옥, 무대디자인 임일진, 조명디자인 김창기에 배우 박정자ㆍ정동환 등 공연계에서 쟁쟁한 이름들이 뭉친 프로젝트여서 일찌감치 기대를 모았던 작품. “역시 한태숙!” 이란 말이 나올법하게 공연은 배우의 연기ㆍ무대ㆍ미술ㆍ음악ㆍ의상ㆍ음향 등이 거의 완벽하게 한덩어리로 어우러져, 참회와 속죄, 사랑을 통한 구원이란 묵직한 주제의식을 강렬하게 전달한다.


고 작가의 지난한 고민의 과정이 충분히 읽혀진다. 이탈리아 시인이자 정치가 단테(1265~1321)가 쓴 ‘신곡’은 지옥편 33가(歌), 연옥편 33가, 천국편 33가로 이뤄진 방대한 서사시다. 중간 중간 에피소드로 이뤄져, 한편의 극으로 만들기엔 기승전결이 분명치 않은데, 고 작가는 현대 군상에 부합하는 인물과 극적 장면을 골라내고, 단테를 불완한전 한 인간으로 그려냄으로써 관객이 단테를 통해 자기 자신을 발견하도록 했다. 1막 지옥편의 마지막에서 원작에 없는 단테의 그림자를 등장시켜, 단테와 논쟁 하는 대목이 주제를 압축한다. 단테는 자살, 애욕, 폭력, 기만, 배신 등의 죄를 짓고 그에 따른 형벌로 고통받는 인간을 보면서 연민을 느끼고 신께 따져 묻는다. 왜 인간에게 욕망을 심어 놓고 침묵만 지키고 있는지. 그리고는 그림자와의 대화를 통해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자, 세상이 어떻게 되는 신경쓰지 않았던 침묵의 공범자가 바로 자신이었음을 깨닫고,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속죄한다. 그 순간 지옥의 문이 열린다.


2막의 연옥 편이 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천국에 도달하지 못하면서도 중단 없이 참회의 절벽을 올랐다가 떨어지는 인간들은 돈버는 일에만 전념했던 이, 다른 사람의 행복보단 불행을 즐겼던 이 등 지금 현대인의 자화상들과 다를 바 없다.

조명은 무척 세련됐다. 특히 지옥의 각 장의 전환, 연옥으로, 천국으로 변화하는 무대의 변화가 조명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효과를 낸다. 글로는 무겁고 난해한 대사들은 창극단의 소리로 노래로 표현되고, 각종 음향이 적절히 삽입돼 전체 2시간 반이 넘는 공연이 지루하지 않다. 단테 역의 지현준은 준신인급 연기자인데 혼신을 다해 발군의 연기력을 보여준다.


지옥과 연옥, 천국이 동전의 앞뒷면처럼 결국 한 덩어리임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에선 거대한 감동이 쓸려 온다. 연극 ‘단테의 신곡’은 서양 고전의 깊이와 무게에 동시대적인 해석, 한국적 색깔 등을 입혀 한국 연극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림으로써 모처럼 국립극장의 존재 가치를 알린 수작이다. 공연은 오는 9일까지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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