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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나는 죄가 없습니다”... 20살 ‘계륵' 수능의 변명
-수능, 암기에서 사고력 위주로 고교 교육방식 개선에 기여

-외풍 끝에 ‘사고력 시험’서 ‘발전된 학력고사’로 변모

-교육당국 ‘교각살우 개악’ㆍ대학 ‘입도선매 꼼수’ 문제



[헤럴드경제=신상윤 기자]첫 시험(1994학년도)이 시행된 1993년 이래로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암기 능력보다 사고력 측정에 방점을 두겠다며 시행 전인 1990~1992년 총 7회에 걸쳐 내놓은 실험평가 문제는 파격이었다.

실험평가 수리탐구영역에 출제됐던 ‘장난감 큐브 맞추기’ 같은 문제들은 당시 시행되던 대학입학학력고사와 비교하면 차라리 IQ(지능지수) 테스트에 더 가까웠다. 당시 이 같은 문제를 접한 일선 고등학교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현재 학교에서 가르치는 수준으로는 도저히 (시험을) 준비할 수 없다”고 읍소했다. 수능이란 새로운 ‘대입 평가’ 도입에 대한 회의론도 제기됐다.

결국 수정을 거쳐 수능은 ‘사고력 중심의 통합교과형’ 형식으로 출범했다. 그러나 문제가 너무 어렵다는 지적과 함께 사교육을 부추기는 이른바 ‘만악의 근원’ 중 하나라는 의견이 제기됐다. 정치권과 교육계 일부에서는 ‘수능 폐지론’까지 흘러나왔다. 이처럼 여러 차례 굴곡을 거치면서 수능은 현재의 ‘교과 내용 중심의 선택교과형’ 형식을 띄게 됐다.

수능이 정말 사교육 발호와 대학입시 제도 혼란을 부추기는 ‘만악의 근원’일까. 이 질문에 대해 대부분 교육 전문가는 “그렇게 볼 수 없다”고 답했다. 수능이란 제도 자체는 한국인이 전형(銓衡)에 있어 중요시하는 ‘객관성‘을 만족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대입이라는 제도와 수능이라는 시험을 완벽하게 일치시켜 해석하려는 국민 대부분의 선입견도 수능을 질시하게 되는 원인라고 했다. 특히 수능을 통해 대입을 운용하는 교육당국과 각 대학에 상당 부분 ‘실책‘이 있다고 그들은 지적했다. 이들은 “수능이라는 제도 자체는 변별력이 있고 객관적인데, 교육당국은 ‘문제가 있다’며 위정자의 입맛에 맞춰 자꾸 손을 대다 오히려 개악하는 교각살우(矯角殺牛)를 범하고 있다”며 “대학들도 자꾸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려고 활용 방법을 복잡하게 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고력 측정 시험’에서 ‘발전된 학력고사’로=수능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신뢰롭고 타당하며 변별력 있는 시험을 위해 교육과정의 변화와 입시제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반영해 단순한 암기력이 아닌 대학 수학(修學)에 적합한 능력을 측정한다’는 것이 수능의 기본 취지다.

수능은 도입될 당시에는 ‘범교과적 사고력 측정 시험’에서 출발했지만, 1997년 7차 교육과정이 적용된 2005학년도부터는 학업 성취도 측정 시험의 성격이 가미됐다. 현재 수능은 고교 교육과정의 수준과 내용에 맞추어 고차적인 사고력을 측정하는‘발전된 학력고사’로 규정되고 있다.

실제로 수능은 이처럼 성격이 바뀌면서 도입 이래 여러 차례 크고 작은 변화를 겪었다. 올해까지 20년간 전년도와 동일하게 치러진 해는 단 네 차례에 불과했다.

첫 시행된 1994학년도에는 8월과 11월 두차례 실시돼 이 중 더 나은 점수를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난이도 조절 실패 등으로 심각한 혼란이 초래된 탓에 이듬해인 1995학년도 수능부터는 매년 11월 한 차례만 시험을 보는 것으로 변경됐다.

1997학년도 수능부터는 200점 만점 체제가 400점 만점으로 바뀌었고, 2001 수능부터는 5교시 제2외국어영역이 선택과목으로 추가됐다. 특히 6차 교육과정이 적용된 1999학년도 수능에서는 사회ㆍ과학 탐구영역에 선택과목제가 도입됐으며, 선택과목간 난이도 차이로 인한 유불리 현상을 막기위해 표준점수제가 도입됐다.

2004학년도 수능부터는 문항별 배점이 모두 정수로 바뀌었다. 7차 교육과정이 적용된 2005학년도부터는 모든 시험영역과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형 수능이 도입됐으며, 만점도 탐구과목 4개 응시 기준 500점으로 상향 조정됐다.

2005학년도에는 직업탐구영역이 신설되고 제2외국어 과목으로 한문이 추가됐다. 2008학년도에는 영역 과목별 9등급제가 도입돼 점수 대신 등급만 제공했다가 2009학년도부터는 다시 표준점수를 성적표에 표기했다.

2012학년도 수능에서는 수학과 교육과정 개편에 따라 인문계 학생들이 주로 응시하는 수리 나형에 ‘미적분과 통계’ 과목이 추가되는 등 수리영역 출제 범위가 확대됐다. 또 사회ㆍ과학 탐구에서 선택 과목 수가 최대 4과목에서 3과목으로 줄었고, 영역별 만점자 비율이 1%가 나오도록 출제가 됐다.

다음달 7일 시행되는 2014학년도 수능에서는 영역 명칭이 언어는 국어, 수리는 수학, 외국어는 영어로 변경되고 수준별로 A/B형을 골라보도록 변경됐다. 사회ㆍ과학탐구의 최대 선택과목 수가 2과목으로 또 줄었다.

▶過보다 功이 많았던 수능…교육당국ㆍ대학 ‘악용’이 혼란 야기=이렇게 수능의 성격과 세부사항이 바뀌는 과정이 순리에 따라 전개됐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그동안의 수능 개편은 시행 과정에서 촉발된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보다는 당장 정권 상황에 따라 수능과 대입 제도를 전리품처럼 여겨져 고치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는 일부 교육학자의 실험 대상이 되기도 했다는 것이 상당수 교육계 인사의 지적이다.

한 입시업체의 평가이사는 “수능은 손 대면 손 댈수록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온 부분이 있다. 교육당국의 섣부른 판단과 의사 결정이 수능 운용 상의 혼란을 야기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교육과정 변화에 따른 수능의 개편이라는 대전제를 무시하지 않으면서 수능 자체에 자율을 주는 것이 지금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능이 처음 출범했을 때 모습은 과(過)보다 공(功)이 많았다고 대부분 교육 전문가들은 회고했다. ‘누가누가 더 많이 외웠나’를 시험하던 학력고사와 비교해 수능은 말 그대로 수학능력, 즉 사고력을 측정하는 데 주안점을 뒀기 때문에, 암기 위주였던 고교 교육과정을 어느 정도 바로잡는 데에도 일조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초심으로 돌아가 일관된 방향으로 수능을 개편해야지, 학생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명분으로 엉뚱한 방향으로 수능을 개편했다가는 오히려 학생들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문법과 단어 위주였던 영어는 듣기평가 등이 추가되면서 실용영어 위주로 평가가 바뀌었다. 국어의 경우도 사조(思潮)나 문학작품을 달달 외우던 수준을 넘어 비문학의 비중이 늘면서 ‘글에 대한 이해‘로 비중이 높아졌다.

하지만 수능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은 말 그대로 사교육이다. 난이도의 높고 낮음에, 과거 통합교과형이나 현행 교과 위주에 상관없이 온ㆍ오프라인을 통해 문제풀이에 몰두하는 사교육을 이기기에는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서울 지역 한 고교의 진학 담당 교사는 “현재처럼 문제은행식이 아닌 해마다 문제를 출제하는 방식은 해마다 비슷한 문제를 양산할 가능성이 있고, 교과서 위주 출제 방식에서는 모든 과목이 암기과목화될 수 있어 사교육 위주의 수능 대비를 막기 어렵다”며 “EBS(교육방송) 강의도 장기적인 대안이 될 수 없는 만큼 사교육을 막을 수 있는 근본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학도 수능을 ‘악용‘했다는 지적을 피해가기 어렵다. 수능이라는 제도가 충분한 변별력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상당수 대학은 우수한 학생을 입도선매(立稻先賣)하겠다는 목적으로 수능이 쉽고 어려움에 상관없이 ‘원하는 인재상의 인ㆍ적성을 보겠다’며 논술, 면접, 적성고사 등을 전형에 추가해왔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올(2014학년도) 대입에서 ‘대입 간소화 정책’에 따라 당국이 논술과 인ㆍ적성검사 등의 비중을 줄이자 대학들은 수능의 활용 지표인 표준점수, 원점수, 등급을 선택하는 것도 모자라 합작하는 등 일종의 ‘꼼수’를 부리고 있다”며 “수능의 변별력을 인정하려는 대학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수능에 대한 점진적 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교육계 내부에서도 논란이 있지만 수능의 자격고사화, 연 2~3회로 확대 실시 등이 그것이다. 폐지가 예정된 ‘국ㆍ영ㆍ수 A/B형 분리 시행’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정책 중 하나다.

양 교수는 “수능이란 건국 이래 대입 제도 중 가장 오래 가고 있는, 검증된 틀이라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며 “사교육 등 각종 부작용을 막을 수 있도록 하면서도 혼란을 주지 않는 일관되고 점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k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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