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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많이 쉬었네요” 편견 벽 높았지만…20번 두드려 취업문 열었어요
<일할 권리> 경력단절에 막혔던 취업문…30代 리턴맘의 눈물겨운 구직기
결혼·출산으로…경단녀 경험
재취업 면접때마다 차가운 시선
“기혼녀 채용부담”외면땐 너무 속상해

맥도날드·CJ 등 달라진 기업문화
성장가능한 새로운 분야 도전해볼만
“일할 수 있고 출근할 곳 있어 행복”




출산 등 개인 사정으로 인해 일을 쉬게 된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를 보는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일을 가볍게 생각했던 것이라거나 한 번 그만뒀던 일을 언제 또 그만둘지 모르는 것 아니냐는 등의 편견 때문이다. 일하고 싶다는 절절한 외침도 “한 동안 쉬었네요?”라는 면접관의 야멸찬 질문 앞에서는 소용이 없다. 남다른 열정과 최근 달라지고 있는 기업문화를 바탕으로 편견의 벽을 극복한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지난 21일 만난 한진희(31) 씨는 20세 때부터 회사에 다니기 시작해 중소기업 회계팀에서 경리로 일해왔다. 3년여 전 결혼을 하면서 남편의 직장이 있는 경북으로 옮기느라 직장을 그만두게 됐다. 2년은 남편을 돕는 역할에 충실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남편이 서울로 발령이 나자마자 이곳저곳 원서를 넣으며 재취업을 노렸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면접장에서 들리는 첫 마디는 “2년 쉬었네요”였다. “결혼했는데 직장 계속 다닐 수 있냐” “아이는 언제쯤 낳을 거냐” “아이 생기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이 판에 박아놓은 듯이 돌아왔다. 한 씨가 어떤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왔고, 직무에 대한 자세가 어떤지를 보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한 씨는 “면접장에 들어설 때마다 아이도 없는데 너무 먼 이야기까지 하면서, 내게 책임을 묻는 듯한 느낌이었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20여군데 이상 지원을 했지만 결론은 낙방이었다. 한 씨는 “면접관이 ‘나도 가정이 있고 아내가 있지만, (기혼 여성과) 같이 일을 한다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거절할 때가 가장 속상했다”고 전했다.

한 씨가 눈을 돌린 곳은 맥도날드. 맥도날드에서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은 한마디로 “어이없다”는 반응이었다. 한 씨는 “주변에서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하는 일 아니냐’며 만류했지만 교육시스템이 잘 짜여있고, 매니저(점장급)로의 진급 기회가 있다는 게 만족스러웠다”며 당시 결심을 전했다.

그간 벼려온 검이 날카로웠던 것일까. 메뉴 주문을 받는 크루(crew)로 입사한 한 씨는 2개월 만에 크루를 가르치는 크루 트레이너로 승진했다. 이르면 3개월 후에 승진을 할 수 있다던 맥도날드 내부에서도 깜짝 놀랄 만한 속도다. 한 씨는 점장도 “보통 열정이 아니다”라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열혈 직원이다. 오죽하면 한 씨가 안 보이면 고객들이 “어제 주문받던 언니 어디 갔냐”고 찾을 정도다.

맥도날드로 재취업에 성공한 한진희 씨가 일터인 맥도날드 양평SK점의 문을 열며 환하게 웃고 있다.

한 씨는 벌써 올해 말께 있을 매니저시험을 준비하며 근무시간 후에도 매장에 남아 공부를 하곤 한다. “일할 수 있다는 것, 아침에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는 한 씨는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서 재취업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사회 초년생의 마음으로 돌아가 새로운 부분, 지속적으로 성장 가능한 부분에 도전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김정미(33) 씨는 일하고자 하는 의욕과 직장의 변화가 맞물려 ‘리턴맘(return mom)’이 됐다. 2000년부터 스타벅스에서 일하기 시작한 김 씨는 아르바이트부터 정식 직원, 바리스타, 점장까지 두루 거치며 7년여를 스타벅스에서 보냈다.

집안 형편 때문에 학업을 그만두고 일자리를 구했던 김 씨에게 스타벅스는 새로운 보금자리였다. 심지어 남편도 스타벅스에서 만났다. 남부터미널점에서 점장을 했던 당시 커피를 싫어한다는 한 남자 고객에게 열심히 커피를 전파해 기어이 단골로 만들었고, 그와 결혼까지 하게 됐다.

그러나 2007년 김 씨에게도 아이 양육이란 과제가 넘겨졌다. 7년의 성과를 뒤고 하고 김 씨는 직장을 떠났고, 세 아이 양육에 열중했다.

김 씨는 “일을 하고 싶어서 고용보험센터를 통해 피부관리사 자격증도 따고, 창업도 생각해봤지만 번번이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며 “같이 일했던 파트너들이 지역 매니저로 승진도 하는 것을 보면서 부러웠다”고 말했다.

기회만 보던 김 씨에게 ‘스타벅스 리턴맘 재고용 프로그램’이 찾아왔다. 결혼, 출산 등으로 인해 스타벅스를 떠났던 이들에게 시간제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 첫 번째 차례로 김 씨를 비롯한 18명의 바리스타들이 스타벅스로 돌아오게 됐다.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김정미(왼쪽 첫 번째)씨가 이번 ‘리턴맘’ 프로그램을 통해 복귀한 동료 바리스타들과 함께 커피를 권하는 자세를 취했다.

뛸 듯이 기뻤던 건 김 씨만이 아니었다. 김 씨의 남편은 하루 4시간씩 일하는 아내에게 “썩히기엔 아까운 당신의 능력을 발휘할 4시간”이라며 든든한 지원군이 돼 줬다. 스타벅스는 입사자 중 원하는 이들은 종일제로도 일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김 씨는 “먼저 회사에서 손을 내밀어줘서 감사하다”며 “막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종일제로 일하며 아이들에게도 전문적인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전했다.

CJ에서도 재취업에 나선 ‘경단녀’들의 도전이 조만간 결실을 맺을 전망이다. 지난달 CJ 각 계열사에서 근무를 시작했던 150명의 ‘경단녀’들은 6주간의 인턴십을 마치고, 면접 등 정식 고용 과정을 진행 중이다. 여성 재취업 프로그램인 ‘리턴십’은 지난 8월 원서 접수부터 시작했는데, 당시 150명 모집에 2530여명의 지원자가 몰려 17대1의 치열한 경쟁률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도현정 기자/kate0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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