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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無信不立…만인앞에 평등한 법집행으로 국민 신뢰 얻겠다”
한국경찰의 오늘 그리고 내일을 말하는 이성한 경찰청장
증원될 2만명 경찰인력 운용은
성폭력 척결 등 민생치안 집중 투입
경무관서장제 확대…첨탑형 구조 해소

성접대 사건 용두사미 논란
언론에 끌려가다시피 해 속도조절 실패
국민 원하는 결과 못 끌어내 아쉬워

국정원 댓글사건 비난 큰데…
범죄 소명할 증거부족…당시엔 수사 한계
강도높은 체질개선으로 공정성 높일것



“법과 질서가 무너지면 그 피해는 대응할 힘이 없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돌아갑니다. 법의 집행자로서 공정하고 엄정한 법질서를 확립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이성한 경찰청장의 각오는 간결하고 명료했다. 그래서 힘이 느껴졌다. 단정한 제복 차림으로 헤럴드경제 기자 일행을 맞은 이 청장은 인터뷰 내내 진지함을 잃지 않았다. 경찰의 아픈 과거를 들춰낼 때도 차분했다. 마치 예상 질문의 모범 답안을 준비한 듯 또렷하게 입장을 밝혔다. 그의 답변은 흐트러짐 없는 옷 매무새 같았다. 

이 청장은 “국민에게 늘 가족처럼 다가가는 경찰이 되고 싶다”며 국민과의 ‘소통’과 ‘공감’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신뢰가 없으면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다는 의미의 ‘무신불립(無信不立)’을 소개하면서 “누구에게나 공정한, 만인 앞에 평등한 법집행으로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얻겠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장 접견실에서 본지 윤재섭 사회부장이 진행한 이 청장과의 인터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경찰의 오랜 숙원이던 2만명 증원이 곧 현실화된다. 증원 인력은 어디로 투입되고, 현재 추진상황은 어떠한가.

▶증원된 인력 대부분은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등 사회악 척결과 범죄 예방 등 민생치안 분야에 집중 투입된다. 본청 사이버안전국과 지방청ㆍ경찰서 여청과를 신설하고 성ㆍ학교ㆍ가정폭력 수사팀을 새로 만드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간부급은 경무관 10여명과 총경 30여명 수준에서 증원할 계획이다. 7개 지방청에 부장제를 두고 경무관서장제를 확대 운영할 방침이다. 현재 경위 이하 정ㆍ현원 불일치가 심각한 상황이라 하위직 중심으로만 증원될 경우, 수동적 조직문화가 심화될 수 있다. 구조 개혁을 통해 경찰의 ‘첨탑형’ 구조를 해소하고 조직에 안정성을 더해 검거에도 기여할 것으로 본다.

-올해 초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건설업자의 ‘성접대 의혹’ 사건 수사는 ‘용두사미’로 마무리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찰 수사력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는데.

▶3월 14일 언론에 첫 보도된 직후 즉각 내사에 착수했으나 경찰 수사가 언론 보도에 끌려가다시피 속도조절에 실패했던 측면이 있다. 국민의 기대가 컸던 것을 감안하면 결과적으로 국민이 원하는 수사 결과를 충분히 끌어내지 못했다. 아쉽게 생각한다. 하지만 건설브로커 윤모 씨 등 2명을 구속하고 관련자 16명을 불구속 송치하는 등 어려운 수사 여건에서도 적잖은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한다.

-이로 인해 경찰의 수사력에 대한 의구심도 생겼다. 수사 역량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은 있는지.

▶범죄는 날로 지능화ㆍ흉포화되고 있다. 성폭력, 보이스피싱, 대출 사기 등 범죄를 집중적ㆍ전문적으로 수사하기 위해 지방청 단위 전문 수사부서를 확충하고 회계분석이나 디지털 포렌식 등 분야별로 전문인력 채용을 확대할 계획이다. 또 사이버테러ㆍ해킹 등에 대한 수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사이버안전국 신설을 추진 중이다.

-경찰 간부가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에 개입해 수사를 축소ㆍ은폐하고, 수사과정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신뢰도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당시 범죄 혐의를 소명할 수 있는 증거가 부족하고, 관련자들의 인적사항이 특정되지 않아 수사에 한계가 있었다고 본다. 법과 원칙에 따라 범죄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다만 일부 경찰이 검찰 조사를 받고 기소되는 등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안타깝게 생각한다. 축소ㆍ은폐 의혹은 재판을 통해 실체적 진실이 규명될 것으로 믿는다. 경찰 수사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강도 높은 체질개선 방안을 추진 중이다. 지난 6월 경찰수사제도개선위원회를 발족해 3개월간 논의 끝에 제도개선 권고안을 도출했고, 이를 토대로 신뢰받는 경찰로 거듭나겠다.

-검ㆍ경 수사권 조정 문제는 언제나 ‘뜨거운 감자’다. 경찰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선 어떤 식으로 수사권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보나

▶궁극적으로는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다만 그 전 단계로 ‘송치 전에는 경찰이 책임수사’를 하고, ‘송치 후에는 검찰이 보완수사’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 상태에선 어떤 부작용이 있다고 보나.

▶현재 검사는 경찰의 수사 개시ㆍ진행 등을 지휘하고, 수사 중지ㆍ송치명령 등을 통해 경찰 수사를 사실상 중단시킬 수도 있다. 검사가 마음먹기에 따라 경찰 수사를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에 ‘제 식구 감싸기’ 논란도 끊이질 않았다. 지난해 김광준 부장검사의 뇌물 사건이 대표적이다. 검찰이 특임검사를 임명해서 사실상 경찰 수사를 중단시킨 것이다.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검찰은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청하거나 잘못된 수사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는 게 바람직하다.

-‘송치 전 경찰 책임수사’에 대해 인권침해 소지나 일부 비리 경찰의 부적절한 사건처리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송치 전 경찰 책임수사’가 이뤄지더라도 경찰은 모든 사건을 검사에게 송치한다. 검사는 보완수사 요청과 기소권을 통해 경찰수사를 사후통제를 할 수 있다. 인권침해 우려가 있을 경우 경찰의 강제수사는 검사가 영장청구권을 통해 통제할 수 있다. 다만 경찰 비리와 인권침해 우려는 지속적으로 근절해야 한다. 수사권 조정에 대해 ‘아직 때가 아니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이를테면 운전면허를 따놓고도 위험하다며 계속 운전을 못하게 하는 셈이다. 우려도 따르겠지만 일단 차를 주고 운전을 하면서 부족한 부분은 보완해 가야 한다.

-밀양에서 송전탑 건설 반대 시위로 법질서와 집회ㆍ시위의 자유 사이에서 긴장감이 높다.

▶법과 질서는 사회를 유지해 나가기 위한 구성원 간의 소중한 약속이다. 법치야말로 신뢰와 사회통합을 위한 근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법치 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미흡하다. 국가경쟁력 보고서를 보더라도 우리 사회의 법치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25위에 그치고 있다. 기본적인 교통질서 위반부터 집단민원 현장 등에서 ‘떼법’이 앞서는 것을 보면 경찰의 역할이 새삼 중요하다고 느낀다. 다만 강한 법집행만을 앞세워 피해가 발생한다면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의 가능성도 있어 탄력적으로 변수를 통제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안전’ ‘행복’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이성한 경찰청장은 ‘임기 중 꼭 이루고 싶은 게 있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한편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것으로는 법질서 확립을 꼽았다. 법치 수준을 일정 궤도에 올리고 사회 갈등을 관리하는 등 법질서 확립을 통해서만 국민의 안전과 행복, 삶의 질 개선도 가능하다는 게 그의 치안 철학이었다. 작은 사진은 이 청장이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접견실에서 윤재섭 헤럴드경제 사회부장과 대담을 나누고 있는 모습.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최근 미국 하원의원이 불법시위로 인해 현장에서 체포된 사례가 있어 화제가 됐는데.

▶불법행위에 대해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한 법집행을 한다는 게 경찰의 입장이다. 다만 특권을 당연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엄격한 법집행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정치인ㆍ경제인 등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격한 법집행을 통해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도록 노력하겠다.

-보이스피싱ㆍ스미싱, 파밍 등 신종사기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범죄는 날로 지능화되는데 경찰 수사는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기존의 대응으로는 신종 범죄를 쫓아가기에도 바빴다. 신종 범죄 유형을 분류ㆍ분석해 각 지방청 단위에서 집중 수사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홍보하는 역할이 중요하다. 또 관계부처ㆍ금융기관들이 긴밀히 공조해 피해예방 정보를 적극 알릴 계획이다. 신종 범죄는 대개 해외 서버를 이용하고 조직책 등이 외국에 있어 외국 수사기관들과의 공조체제도 강화해야 한다.

-경찰은 격무에 시달리는 반면 처우가 좋지 않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많다. 개선안은 있나.

▶현장 경찰관의 보수나 수당에 경찰 직무의 특수성이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경찰의 경우 일반직 대비 기본급 우대율이 1.7%다. 하지만 교정직, 국회 경위, 검찰, 국정원 등 공안직은 5.0%다. 경위ㆍ경사는 일반직보다 기본급이 -2.6%, -0.3% 각각 낮다. ‘경찰의 보수ㆍ수당 현실화’는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발표한 핵심 사안이다. 처우개선과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

-올해로 경찰 근무경력 31년째인 것으로 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지난해 9월 부산청장 재직 시절 이른바 ‘울산 자매 살인사건’ 범인을 검거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생업을 전폐하고 부산ㆍ울산ㆍ포항 등지에 수배 전단지를 붙이며 자식의 억울한 죽음에 오열하던 피해자 부모님께 조금이나마 위로를 드릴 수 있었던 게 보람이다.

-당시 구조 신고가 119에 먼저 걸려오고, 이후 현장에서 112신고가 이뤄져 피의자 검거에 어려움이 많았던 것으로 안다. 112와 119 통합이 필요하지 않나?

▶112와 119는 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신고자가 구조상황에 112에 전화하거나 범죄상황에 119에 전화하는 경우뿐 아니라 범죄로 인한 부상자 발생 등 경찰과 소방이 동시 출동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다만 통합 방법은 신중해야 한다. 준비 없이 통합만을 서두를 경우 분리 운영만도 못한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관련 전문가가 참여한 제도 연구, 범정부 차원의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경찰은 112와 119의 시스템 연계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기술 검토가 완료되는 대로 예산 확보를 추진할 예정이다.

-조두순 사건을 재조명한 ‘소원’이라는 영화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2차 피해 예방을 위한 대책은 마련돼 있는지.

▶2005년 경찰병원의 ‘학교ㆍ여성폭력 원스톱지원센터’를 시작으로 전국 25개 원스톱지원센터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여성가족부 협조를 통해 2017년까지 60개소로 확대할 계획이다. 원스톱지원센터를 통해 경찰서와 병원을 전전하지 않고 의료ㆍ수사ㆍ법률 서비스를 통합해 지원받을 수 있다. 아울러 수사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성폭력 전담 수사체계’를 구축했다. 지난 2월 지방청별 ‘성폭력 특별수사대’에 이어 지난달에는 52개서에 ‘성폭력 전담수사팀’을 설치, 성폭력 사건 수사와 피해자 보호ㆍ지원을 전담토록 하는 등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임기 중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보다 민생치안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불식시키고 싶다. ‘강력한 범죄척결 활동’과 더불어 국민을 가족처럼 돌보는 ‘따뜻한 서비스’를 통해 국민들의 지지와 신뢰를 쌓을 수 있었으면 한다.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해 ‘체감안전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게 최우선 과제다. 아울러 법치 수준을 일정 궤도에 올리고 사회갈등을 잘 관리하는 등 법질서 확립에 역점을 두고 싶다.
대담 : 윤재섭 사회부장

정리=김기훈 기자/kih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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