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험인증 취약…국가 주력산업 경쟁력 악화 심각
제품 개발 마치고도 출시 타이밍 놓쳐그 사이 경쟁업체 기술유출도 치명적
해외기관 자국 이익 우선 막을 길 없어
국내 주요기관 정부통제로 인력부족
공신력 떨어지는 민간업체 난립도 문제
국내 시험 인증산업의 취약성은 산업 전 분야에 걸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 시장에서 시간과 보안에서의 유ㆍ불리는 승부에 결정적이다. 실제 이 같은 사례는 다양한 분야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A 사는 2010년 하반기에 세계 시장을 겨냥한 신제품을 개발했다. 그런데 필요한 시험 인증 종류만 20개가 넘었다.
국내에서 일괄적으로 인증을 받고 싶었지만 해당 기관에선 “인력이 부족해 원하는 기간까지 인증을 끝낼 수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어쩔 수 없이 국내와 호주 기관에 나눠 인증을 받다 보니 평가 과정 보완 조치에 시간과 비용을 더 많이 지출해야 했다. 그런데 2012년 한 해외 전시회에서 디자인이 똑같은 제품이 이미 유통되고 있었다. 인증 과정에서 디자인 정보가 유출된 것이다.
의료기기를 취급하는 B 사 관계자는 “주문서가 도착해 있는데 검증 때문에 수출을 못하고 있다. 또 장비를 이미 보여줬기 때문에 복제도 염려된다. 주문이 들어온 후 검증을 최단기간에 해야 수출이 가능하다”고 털어놨다.
화학제품을 만드는 C 사 관계자도 “시험 인증 기간 사이에 무단 복제된 경우는 매우 많은데, 특히 대만이나 중국 등 경쟁 업체에 기술이 흘러들어 가는 경우는 치명적”이라며 “상당한 기술력을 갖고 있지만 이 때문에 적극적으로 수출에 나서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놨다.

선진국은 에너지 절약이나 환경 보호를 이유로, 신흥 개도국은 경제 성장에 따른 안전 인식 제고를 이유로 기술 규제 건수는 늘리는 추세다. 일종의 기술 규제 장벽인 셈이다. 실제 2005년 TBT(무역상 기술장벽 협정)에 통보된 규제는 771건이었지만 지난해에는 1419건으로, 배 가까이 늘었다.
시험 인증기관도 결국 자국의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 시험 인증산업이 낙후되면 경쟁국에 우리 제품의 생사를 대책 없이 맡기는 꼴이 될 수 있다.
더욱이 이 같은 문제점이 정부의 탁상행정으로 방치되고 있다는 데에 사안의 심각성이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민간이 시험 인증산업을 주도하지만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은 공공기관이 주도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공공기관’이 하다 보니 정부 통제를 강하게 받는다.
윤영석 의원(새누리당)은 “국내 주요 시험 인증기관은 정부의 공공기관 합리화 정책 추진 등으로 정원의 제한을 받다 보니 국내 1위 한국산업기술시험원도 지난해 전년 대비 90% 넘게 성장했음에도 정규직원은 4%밖에 증원을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숙련된 전문인력의 고용 유지를 위해 정규직 증원이 반드시 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간 업체의 난립도 문제다. 영세한 업체가 대부분이다 보니 인증의 국제적 효력도 없고 공신력도 약하다. 심지어 독자 인증은 없이 다국적 사의 인증 장비 판매와 인증 마크 대행으로 연명하는 곳도 적지 않다. 추미애 의원(민주당)은 “다국적 시험 인증업체는 금융 지원, 직접 마케팅 등 품목별로 차별화된 접근 전략을 사용해 국내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반면, 국내 시험 인증기관들은 이러한 운영 메커니즘에 대한 대응 전략이 부족하다”며 정부 차원의 대책을 촉구했다.
홍길용ㆍ이정아 기자/d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