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법관기피신청제도‘유명무실’
5년간 법관기피신청 2553건 중 단 1건만 인용
민주당 서영교 의원 국감자료
판사 “재판 고의 지연사례 많아”
변호사 “눈밖에 나면 지장 초래”
재판부와 독립된 심사주체 필요




‘공정하지 못한 법관을 재판에서 배제할 방법은 없는 건가요?’

최근 서울시변호사협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변호사의 열 명 중 아홉명이 전관예우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을 정도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여전한 가운데 누구나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도입한 ‘법관기피신청제도’의 유명무실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법관기피신청제도는 법관이 해당 사건과 관련이 있거나 불공정한 재판을 할 우려가 있을 때 ‘해당 법관을 재판에서 배제해 달라’고 신청하는 제도다.

서영교 민주당 의원이 최근 법원행정처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전국 법원에 2553건의 법관 기피ㆍ회피ㆍ제척 신청이 있었지만 인용된 것은 단 1건에 불과했다. 인용된 1건도 법원사무관에 대한 기피신청으로, 사실상 재판부에 대한 기피 신청이 받아들여진 것은 단 한 건도 없었다.

법관기피신청은 소송 당사자가 불공정하다고 생각되는 재판부의 결정에 불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따라서 낮은 인용률은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더 키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사법부의 인용률은 법제선진국인 독일, 일본은 물론 이 제도를 도입한 국가 중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꼬집는다.

이에 대해 법관들은 악성 민원인들이 기피신청을 하는 경우가 많아 단순히 인용률이 낮다는 통계가 현실을 반영하지는 못한다고 항변한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법원에 여러 건의 소송을 걸어놓고 재판을 고의로 지연하는 사례가 많다”며 “상대편 소송 당사자의 반발도 극심해 기피신청을 함부로 인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주장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 최근 한 민사소송 당사자는 자신의 소송을 담당하는 판사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피신청을 냈다가 기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변호사들이 바라보는 법정의 현실은 판사들과 분명한 괴리가 있다. 임대차 관련 소송을 진행하며 기피 신청을 내려다가 포기했다는 한 변호사는 “재판부가 상대편에게 법률 조언까지 해주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좁은 법조 바닥에서 재판 진행에 문제를 제기했다가 눈 밖에 나면 다른 사건들을 변론하는 데 지장이 많다. 그래서 그냥 넘어갔다”며 기피신청 포기 배경을 토로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기피 신청을 내기까지 엄청난 고민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렵사리 기피신청을 해도 거의 인용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남들이 지켜보면서 느끼는 일인데도 정작 판사들은 자신이 불공정한 재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법관 기피 신청 인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재판부와는 독립된 심사 주체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서영교 의원은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기피 신청을 당한 법관이 소속된 법원이 신청 기각 여부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 교수는 “별도의 심사기구를 만드는 것은 효율적이라 보지 않는다. 다만, 적어도 해당 재판부가 기피신청 심사에 관여하도록 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김성훈 기자/paq@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