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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요즘 CP의 ‘C’자도 못꺼내요!”
[헤럴드경제=권남근 기자]“증권사에 20년 넘게 근무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CP의 ‘C’자도 꺼내기 어렵습니다. 증권사 전체가 사기꾼 이미지로 비춰지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A증권사의 모 임원은 동양그룹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문제가 발단이 된 이번 사태와 관련해 이렇게 푸념했습니다. 회사채와 CP를 발행한 동양 계열사들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투자자들이 돈을 잃게 되면서 증권사 전반에 대한 불신이 쌓이고 있다는 불안에서 나온 말입니다.

동양그룹은 동양시멘트, 동양네트웍스, 동양, 동양인터내셔널, 동양레저 등 5개사에 대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습니다. 법정관리 신청으로 채권채무가 동결됐고 이들 회사의 CP나 회사채에 투자한 개인들은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됐습니다. 동양그룹 계열사 채권 가운데 개인에게 팔린 규모는 1조원이 넘고 투자자 수는 4만명을 훌쩍 넘습니다. 이는 2011년 저축은행 후순위채권투자자(2만명)보다 배 이상 많은 것입니다.

이 때문에 증권사들은 동양 사태가 증권업계 전반의 불신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동양증권의 경우 동양그룹의 특수한 상황에 의한 탓이 크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증권사 직원들의 상품 권유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판매 저조로 가뜩이나 어려운 영업환경이 더욱 열악해질 수도 있습니다. 코스피 지수가 모처럼 2000선을 넘어서면서 상품 투자 판매에 적기인데 이번 동양 사태로 호기를 놓쳤다는 볼멘 소리도 나옵니다. 실제 동양증권에서 빠져나온 투자금 중 상당 부분이 은행 등 다른 금융기관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동양그룹 계열사들의 법정관리 신청은 소매 채권시장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동양그룹 채권 투자자들의 경우 다른 소매채권에도 투자하는 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웅진, STX그룹사태로 움츠러든 소매채권시장에 동양 건마저 터지면서 당분간 소매채권 시장이 꽁꽁 얼어붙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고금리 소매채권 판매를 접은 증권사도 많습니다. 판매해도 예전만큼 인기가 높지 않습니다.

모 증권사는 얼마 전 금리 5% 초반의 금융회사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어음을 내놨습니다. 예전까지만 해도 나오자 마자 완판됐지만 이번에는 판매율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투자자들이 CP나 회사채에 대한 안정성을 걱정해 선뜻 투자에 나서지 않은 것입니다. 이 증권사의 한 PB는 “담보를 130%나 잡은 안전한 상품임에도 동양 사태를 바라본 고객들이 쉽게 믿지 못하고 투자를 망설이는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기존에 판매한 상품에 대한 전화문의도 평소보다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

강남의 모 증권사 지점장은 “회사채에 투자한 고객들의 문의가 동양 사태 이후로 크게 늘었다”며 “오늘 아침에도 전화를 받았는데 본인이 투자한 회사가 괜찮은지가 주된 질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지점장은 “투자적격 등급이라 괜찮다고 안심시키고 있지만 고객들이 ‘동양도 괜찮다고 했다가 이렇게 된 것 아니냐’고 되묻는 경우가 많아 무척 난감하다”고 털어놨습니다.

이번 사태로 증권업계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위험자산 기피현상이 강해지면 증권업 전반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금융투자업계는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내부적으로 다시 한번 점검하고 고객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한번 등을 돌린 고객을 되돌리는 것은 신규 유치보다 몇십 배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happyd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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