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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 형제 소송에서 갑자기 불거진 ‘승지회’, 과연 탄생 배경은?
[헤럴드경제=김영상 기자]삼성그룹 창업주 고(故) 이병철(호 호암) 회장의 차명 상속 재산을 둘러싼 형제 간 법정 공방에서 갑자기 ‘승지회(承志會)’ 역할 설전이 벌어지면서 과연 승지회가 무엇이었는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고법에서 지난 1일 열린 항소심 두 번째 재판에서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측은 “선대 회장은 승지회를 통해 이건희 회장의 일방적인 경영을 통제하려고 했다”고 주장했고, 이 회장 측은 “(승지회는)이 회장이 삼성그룹의 유일한 계승자라는 점을 전제로 다른 상속인들에게 증여한 삼성그룹 계열사들을 분리하지 말고 이 회장을 통해 경영하라는 취지로 구성됐던 것”이라고 맞섰다. 이맹희 씨 측은 승지회를 통한 이 회장 경영 견제를 위해, 이 회장 측은 통합 경영 지원을 위해 구성됐다고 각각 다른 주장을 한셈이다. 이에 호암이 별세한 뒤 경영권 수습을 위해 만들어진 승지회 실체에 대해 상반된 견해가 나오면서 과연 그 배경이 무엇이었는지 화제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일단 이 씨 측은 법정에서 “소병해 당시 삼성비서실장, 이건희 회장 이인희 한솔고문, 신세계 이명희 회장, 이맹희씨 부인 손복남 씨를 모이게 한 후 ‘승지회’를 통해 주요 사안을 논의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일반적인 시각은 다르다. 승지회는 호암이 생전에 다른 상속인들에게 분배해 준 전주제지, 신세계 등을 포함한 그룹 계열사들을 분리하지 말고, 이 회장이 총수로 지배, 경영하는 삼성그룹 울타리 속에서 원만하게 통합 경영하라는 유지를 실현하기 위해 구성이 추진된 것으로 보여진다는 것이다.

승지회는 하지만 호암의 유지에 반해 통합 경영에 반대하는 일부 상속인들의 반대로 유명무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승지회는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전제로 한 것이지, 이를 부정하기 위한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게 삼성 측의 설명이다. 이 회장이 영빈관으로 사용하는 한남동 승지원도 ‘승지회’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삼성 주장은 호암의 생전 유언을 통해서도 뒷받침된다는 게 중론이다. 호암은 1977년 8월께 일본 경제전문 일간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삼성 이건희 회장을 후계자로 결정했다”고 공표한 이후 87년 11월19일 타계하기 전까지 이같은 뜻을 거듭 분명히 밝혔다. 특히 타계 1년 전인 1986년 발행된 자서전(호암자전)을 비롯해 여러차례 언론 보도를 통해 이 회장이 삼성그룹을 계승할 후계자임을 대내외에 천명했다.

주목되는 것은 이 씨가 저술한 자서전 ‘묻어둔 이야기’에서도 승계와 관련된 내용이 언급돼 있다는 것이다. ‘묻어둔 이야기’ 284쪽에서 그는 “앞으로 삼성은 건희가 이끌어 가도록 하겠다. 어머니와 누이들 그리고 아내까지 있던 자리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충격을 나는 잊지 못한다”고 썼다.

결국 호암이 이미 1976년 삼성의 경영권을 이 회장에게 물려준다고 가족들에게 천명했으며, 유언을 통해 이를 다시 강조했다는 점에서 이 회장이 삼성 경영권을 빼앗았다는 이 씨 측의 주장은 이같은 대목에선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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