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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을 바꾼, 그리고 바꿀 디자인들
[헤럴드경제=윤정식 기자]“‘창조경제’가 시대의 화두다. 이미 세계는 지식기반 경제시대에서 창의성 기반 경제로 나아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 아니다. 런던 비즈니스스쿨의 개리하멜 교수의 말이다.

예전에는 상품이나 기술을 포장하는 정도의 의미에 머물던 ‘디자인’의 개념이 지금은 기업과 지자체 정부, 심지어 시민운동이나 종교에서도 신경을 쓰는 핵심 단어가 됐다.

왜, 언제부터 이렇게 디자인이 중요한 개념이 됐을까? 인류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디자인에 돈이든 시간이든 투자를 하면 할수록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터득했기 때문이다. 디자인의 소비층이 아니었던 인류 98%의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이제는 디자인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있고, 또한 개발과 지구온난화로 인해 황폐해지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하기에 ‘지속가능한 디자인’도 주목을 받고 있다.

▶디자인이 기업을 살린다= 우리 속담중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는 말이 있다. 최근 성공한 기업들은 기술개발 이전에 디자인을 먼저 하면서 기술과 마케팅을 동시에 하는 선행디자인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1983년 모토로라가 무계 1㎏에 배터리 수명은 한시간이 고작이었던 다이나택(DynaTAC) 8000X로 세계 최초 모바일 폰을 선보였다. 당시는 디자인보다는 휴대전화라는 개념이 나왔다는데 열광했던 때다. 하지만 2007년 스티브잡스의 애플이 아이폰을 내놨을 때는 보다 큰 의미가 있다. 다이나택은 기술적 혁명을 보여주면서 전화기의 활용도를 높여 인류 생활을 더 편리하게 해준 반면 아이폰의 등장은 아예 전화기의 개념을 바꿔버렸다. 그것도 디자인으로.

애플같이 거창한 사례가 아니더라도 디자인 하나만으로 세계적인 기업이 된 이탈리아의 인테리어 기기 제조사 알레시(Alessi)가 있다. 알레시가 취급하는 제품은 주전자, 탁상시계, 후추통 등이다. 글로벌경제를 이끌어가는 반도체나 자동차 인터넷 기업도 아니다. 하지만 이 회사의 가장 대표작인 레몬즙짜개 ‘주시 살리프’(Juicy Salif)와 와인오프너 ‘안나-지’(Anna-G) 등은 일상용품들이 생활문화의 아이콘이 된 사례다.


▶사회통합을 이루는 디자인= 독일 통일 후 동독의 모든 산물은 서독에 비해 열등하다고 인식됐다. 하지만 어린이의 교통 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독독의 신호등 캐릭터 ‘암펠만’은 사장 직전에 가까스로 안 서독 디자이너에 의해 부활되면서 잃어버렸던 동독의 가치를 극적으로 부활시켰다.

1961년 동베를린은 교통심리학자 카알 페글라우 박사에게 의뢰해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고 교육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신호등 아이콘을 만들었다. 친근함은 물론 시력이 나쁜 노인이나 지각 능력이 성인에 비해 떨어지는 아이들을 위해 색이 차지하는 면적을 최대화 했다. 그 결과가 바로 암펠만이었다. 하지만 독일 통일 직후 모든 독일의 사회 시스템은 서독식을 따르면서 신호체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조명디자이너 핵하우젠은 암펠만의 부활을 이끌어내 조명부터 열쇠고리 컵, 티셔츠 디자인에 적용하고 심지어 암펠만 레스토랑까지 생겨나기에 이른다. 단순 재활용 디자인에 그칠 뻔 했던 암펠만 디자인은 통일 동독인들의 마음에 향수의 불을 지폈고 결국 1997년 독일 정부는 구 동베를린 지역에 암펠만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현재 독일인들은 당시 동ㆍ서독 사람의 마음 속 깊이 팬 감정의 골을 메워주며 문화통일을 이룬 암펠만은 디자인적 유산으로까지 치켜세우고 있다.


▶미래 아이콘, 디자인의 사회적 책임= 이제 이것만으로는 안된다. 디자인도 우리 사회에서 부여받은 역할을 해내야 한다. 도시의 범죄를 줄여주고 아프리카의 물부족 사태를 일정 부분 해결해줄 수 있는 디자인도 있다.

영국의 센트럴세인트마틴 대학 부설 ‘범죄 대항 디자인 연구센터’에서는 도난방지용 자전거부터 도난방지용 가방걸이 의자 등을 개발했다. 이는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 자체를 사전에 차단하는 디자인으로 범죄자의 양산을 막는 기능도 했다.

영국 최대 유통업체 테스코는 매장 내 범죄를 줄이기 위해 방벽처럼 느끼는 진열대의 높이를 낮추고 통로를 넓혔다. 방범용 카메라를 추가 장착한 건 기본이었다. 물론 이런 리노베이션은 매장 1㎡당 평균 매출을 줄어들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 고객들이 맘 놓고 편히 쇼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면서 장기적으로는 매장 방문 고객 수는 증가했고 범죄율은 현격히 떨어졌다.

흔하게들 90%의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애칭이 붙은 ‘Q드럼’도 있다. Q드럼은 물통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대다수 저개발국가에서는 물부족 사태로 인해 몇 시간을 걸어가야 물을 길어올 수 있는 환경에 놓인 사람들은 기른 물 마저도 운반 도중 심하게 훼손돼 오히려 몸을 해치는 물이 되곤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이나 어린이도 쉽게 이동시킬 수 있는 물통 Q드럼이 디자인된 것이다. 미적 감수성 위주가 아닌 사회적 책임을 위한 디자인의 대표 사례다.

yj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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