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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스포츠 칼럼 - 이종덕> 문화가 도시브랜드를 만든다
도가는 일본 혼슈 서쪽 동해 연안에 위치한 인구 600명의 아주 작은 마을이다. 겨울이면 눈이 많이 오는 해발 1000m의 이 산간마을은 폭설 피해를 막기 위해 발달한 독특한 건축양식인 A자형의 ‘합장가옥’으로 유명하다.

이 벽촌은 또한 국내외서 방문이 잇따르는 일본의 대표 연극도시다. 문화 불모지를 탈바꿈시킨 건 한 뛰어난 예술가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였다. 그 주인공은 바로 세계적으로도 명성이 높은 연극 연출가 스즈키 다다시(74)다. ‘스즈키 메소드’라는 특유의 연기술로도 잘 알려진 그는 1966년 과밀했던 도쿄를 떠나 자신이 운영하는 와세다소극장 근거지를 이곳으로 옮겼다. 지역 전통인 합장가옥 양식으로 지은 도가 산방 무대와 고대 그리스 건축을 모방한 야외극장 등을 지어 ‘도가예술공원’을 조성했다. 이 공간에서 1982년부터 매년 하계ㆍ동계 연극제를 개최해 세계 연극계의 주목을 받았고, 도가는 일약 세계 연극계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필자가 회장으로 있는 문화모임인 ‘광화문문화포럼’은 지난달 스즈키 다다시가 이끄는 스즈키도가극단(SCOT)의 하계축제를 찾았다. 출연배우가 각자의 모국어인 6개국어로 공연을 한 ‘대머리 여가수’, 도가의 야외극장에서 열린 불꽃놀이극 ‘세상 끝에서 안녕’이 무척 인상깊었다. ‘세상 끝에서 안녕’은 일본이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 역할을 모색하기 위한 공연이라는데, 이 작품의 상연에 앞서 스즈키는 “일본의 과거 잘못을 인정하고 앞으로 세계에 어떻게 공헌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감동을 줬다. 문화가 정치인이 해결하지 못하는 국가 간 화해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이번 축제에선 한국 배우 4명을 비롯해 15개국 연극 종사자 100여명이 공연과 훈련에 참여하고 있었다. 일주일간 축제를 찾은 관객 수가 4500명 정도였다고 한다. 마을주민이 고작 600명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수다. 문화가 도시의 가치를 제고하고, 도시의 브랜드를 만든 선례다.

중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세계적인 거장 장예모 감독의 ‘인상(印象) 시리즈’다. 인상 리장을 비롯해 인상 서호, 인상 대홍포, 인상 해남, 인상 계림 등 5개 ‘인상 시리즈’는 모두 소외지역과 소수민족을 선택해 산과 호수ㆍ들판 등 주변의 자연경관을 무대로 해 선보이는 공연이다. 이 시리즈는 세계의 수많은 관객을 끌어모았고, ‘실경산수’ 공연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문화관광상품을 개척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인상 계림을 보기 위해 계림에 가고, 인상 서호를 보기 위해 서호를 찾는 관광 풍속도를 만든 것이다. 지역민을 배우로 기용해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뤘고, 더 나아가 소수민족에게 문화적 자긍심을 고취시켰다.

한국에서도 영화 ‘별들의 고향’으로 잘 알려진 이장호 감독이 양수리 호수에서 장예모 감독의 관광이벤트를 벤치마킹한 도시문화 이벤트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중국 못지않게 빼어난 경관과 좋은 관광자원이 많다. 앞으로 한국도 일본의 도가나 중국의 계림ㆍ서호처럼 문화 도시 브랜드가 나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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