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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한의학도 ‘한류'의 주역으로 뜰 날이 과연 올까요?
얼마전 한 나이가 지긋하신 60대 초중반의 한의원 원장과 점심심사를 함께 했습니다. 한의대를 졸업하고 아버지의 한의원을 그대로 물려받아 대를 이어서 한의원을 하는 분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아들이 곧 미국에서 MBA를 끝내고 돌아와 취업준비중이라는 말을 햇습니다. 제가 “2대에 걸쳐 계속 한의사를 해오셨는데 왜 아드님에게는 한의사를 안시키셨나요? ”라고 묻자 솔직히 저의 예상과는 뜻밖의 답변이 돌와왔습니다. “한의사는 미래가 없어요. 예전처럼 한의사가 그냥 앉아서 돈 벌던 시대는 지났거든요” “....” 전 지나치게 솔직한 이 답변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왠만하면 “자신의 적성이 그게 아니라서...”라던가 “글로벌시대에 맞게 새로운 학문을 배우게 하려고...”라는 식의 포장된 말도 잇었을텐데요.

사실 지금 한방업계는 그야말로 답이 없는 상황입니다. 불과 10~20년 전만해도 가정에서 부모님이 쇠약해지시거나 남편이 회사일로 힘들 때, 자녀들이 취업시 등에는 봄가을로 보약 한 첩은 지어먹는 것이 보편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때부터인가 한의원에서 조제했던 녹용이니, 보약을 지어먹는 모습은 이제 보기 힘듭니다. 10여년전부터 나온 비아그라 등 발기부전치료제와 홍삼, 그리고 유산균제제 등 수도 없이 많은 각종 건강기능식품이 이젠 우리곁에 넘쳐납니다. 과학적인 임상실험과 검증된 약효로 무장한 건강식품앞에 00탕이니 XX환이니 하는 브랜드는 이젠 애처롭게까지 보입니다. 한의대가 최고 인기학과인 시대도 이미 지나갔습니다. 현직에서 한의사로 일하는 필자의 지인들도 “ 의대를 진학하는건데 후회막심이다”라는 말을 술자리에서 종종합니다.

도대체 한의업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최근 한의업계가 사정이 어려워진 것은 양방과의 갈등도 한 몫을 하고있습니다. 한의업계에서 그동안 자신들의 영역이라고 여겨왔던 천연물을 이용한 신약을 양방업계에서 개발하는데 정부에서 지원을 해 한방업계가 반발하고 있습니다. 한의업계는 천연물신약이 사실상 한약의 포장만 달리했는데도 의사만 처방할 수 있고 한의사는 처방할 수 없는 등 관련 법규를 모두 고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한방업계에서 어려워진 상황을 타개하려고 피부과 등에서 쓰는 의료기기나 MRI같은 첨단의료기기로 환자를 진료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자 양방업계에서는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극렬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양방업계에서는 “한의사를 의사로 인정할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최근에는 약사들과도 심각한 갈등을 빚고있습니다. 한의사 2만명은 최근 집회를 열고 정부에서 실시하려는 ‘첩약급여’ 시업사업에서 한방조제약사를 배제하라고 집회를 했습니다. 한방업계는 “허술한 시험을 통해 자격을 얻은 한약조제약사의 경우 보수교육들을 통한 질관리가 되어있지않아 국민건강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이에 대해 약사회는 "국민의 건강보장성을 높이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재정이 마치 자신들만의 몫인양 착각하는 직능이기주의"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한 첩에 수 십만원을 호가하는 가격때문에 꺼렸던 한방첩약에 대해 보험이 되면 싼 값에 한약을 먹을 수 있어 나쁠 것은 없지만 그들끼리의 밥그릇 싸움에 마음이 다소 불편한 것은 사실입니다.

아무튼 필자는 그 연세 지긋한 한의사분이 “이제 한의사로 돈벌던 시대는 지나갔다”라는 말을 할 때 다소 실망스러웠던게 사실입니다. 적어도 한의업계에서 수 십년을 종사하셨던 분에게서 최소한 “한방이 나아갈 길은 이런이런 것이다” 라는 식의 말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게 그렇게 단순한 문제만은 아닌 듯 싶습니다. 지금의 상황을 이렇게까지 만든 것은 한방업계 스스로의 책임도 있지만 정부의 무관심과 냉대, 말로는 "우리 전통의 것이 세계최고"라고 외치면서도 정작 한의학을 발전시키려는 아무런 의지와 전략도 없었던 결과입니다.

음악 뿐아니라 드라마,음식 등에서도 '한류'가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가장 한류스러운 것이 바로 한의학, 한방이지만 지금까지의 추세라면 한방이 한류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은 요원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도 있습니다. 한의학이 제 가치를 인정받고 지금보다 좀 더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할 수 있는 날이 곧 올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김태열 기자/kt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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