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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니스비엔날레…또다른 주인공들
‘프라다’미우치아 프라다-‘케어링’프랑소아즈 피노
열렬한 현대미술 마니아이자 컬렉터·후원자

세계 최대 베니스비엔날레서‘아트’로 대격돌
‘가장 의미있고 훌륭한 전시’로 꼽히며 연일 화제

현대미술은 선진기업에‘영감’주는 화수분
명품업체 오너들, 아트프로젝트 경쟁에 열올려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수중도시 베니스에서는 요즘 명품업체 간 예술 격돌이 한창이다. 지난 6월 개막한 제55회 베니스비엔날레(~11월 24일)가 중반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명품업체 오너가 펼치는 독특한 전시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프라다(PRADA)’와 명품그룹 ‘케어링(Kering:구찌ㆍ발렌시아가 등을 보유한 그룹)’은 베니스에서 ‘아트(Art)’로 한판 대결을 펼치고 있다. 엄밀히 따지면 프라다재단을 설립한 미우치아 프라다(65)와 케어링그룹의 창업주 프랑소아즈 피노(70) 회장 간 격돌이지만 일반 대중에겐 프라다와 케어링(구찌)의 대결로 비쳐진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베니스 레지나의 프라다미술관에서 ‘태도가 형식이 될 때’라는 독특한 이름의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한동안 이 전시를 보려면 서너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했을 정도로 호응이 매우 뜨거웠다. 요즘도 ‘베니스비엔날레 기간 중 열리는 60여건의 전시 중 가장 의미있고 훌륭한 전시’로 꼽히며 인기가 높다.

한편 프랑소아즈 피노 회장이 베니스 두 곳에 설립한 자신의 미술관에서 개최 중인 컬렉션쇼 또한 화제다. 압도적인 전시규모와 작품 때문에 관람객이 줄을 잇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 패션거물은 왜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아트프로젝트를 펼치는 걸까. 그것도 운하의 도시 베니스에서.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프라다와 피노이기에 가능한 아트프로젝트=사실 올해는 미우치아 프라다가 대대적인 공세에 나서는 바람에 두 사람 간 격돌이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사실 오래전부터 ‘격돌’은 있어 왔다. 미우치아 프라다와 피노 회장은 베니스에서 여러 차례 명승부를 펼친 바 있다. 두 사람 모두 열렬한 현대미술 마니아로, 혁신적 미술까지 두루 수용하는 패트론이다.

글로벌 비즈니스계에선 “미우치아 프라다와 피노만큼 진일보한 미술 취향을 지닌 이들도 드물다. 그들의 눈은 매처럼 정확하다”는 말이 정설처럼 나돌고 있다.

특히 미우치아 프라다는 전위적이거나 난해한 작품까지도 독창성만 있다면 얼마든지 수용하는 ‘몇 안되는 현대미술 애호가’로 정평이 나 있다.

두 사람은 베니스비엔날레가 열리는 홀수연도에는 특별히 신경을 써서 베니스에서 멋진 미술판을 벌인다. 그 까닭은 전 세계적으로 150여개에 달하는 비엔날레가 있지만 118년 역사의 베니스비엔날레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미술제전이기 때문이다. 현대미술계에 크나큰 영향력을 미치는 본전시와 각국의 국가관 전시가 일제히 열리는데다, 공인된 특별전만 해도 47개에 달하니 말이다. 비엔날레 프리뷰 기간 중에만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미술관장이며 큐레이터, 평론가가 자그만치 4만5000명이 모여드니 두 거물이 베니스를 택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①크리스티 경매를 이끄는 피노 회장은 자신의 화려한 컬렉션쇼를 베니스에서 개최 중이다. 사진은 피노컬렉션으로 꾸며진 ‘Prima Materia’전. ②피노 회장의 또다른 미술관인 팔라조 그라씨에서는 루돌프 스팅겔 전이 연말까지 열린다. 벽면까지 뒤덮은 현란한 카페트도 작품의 일환이다. ③미우치아 프라다는 베니스의 프라다미술관에서 현대미술의 이정표를 새로 쓴 고 헤럴드 제먼의 44년 전 전시를 오늘로 불러와 특별전을 열고 있다. ④프라다재단의 ‘태도가 형식이 될 때’에 출품된 작품. ⑤미우치아 프라다(왼쪽)와 프랑소아즈 피노 회장. 두사람은 현대미술계 최고의 패트론이자 선의의 라이벌이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그간 밀라노와 베니스에서 각종 아트프로젝트를 꾸준히 열어왔다. 2009년에는 서울 경희궁에서 ‘프라다 트랜스포머’라는 타이틀로 움직이는 건축물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베니스 내 친니 미술관에서 특별전을 여는 등 나름대로 프라다가 지향하는 예술성을 펼쳐왔다. 그러나 이들 이벤트를 워낙 소리소문 없이 개최해왔기에 잘 드러나진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신문ㆍ잡지 등에 대대적으로 광고를 내는 등 심혈을 기울였다. 그 이유는 수년 넘게 끈질기게 준비해온 프로젝트가 마침내 실현됐기 때문이다.

프라다재단은 스위스의 유명 큐레이터 헤럴드 제만(1993~2005)이 1969년 베른에서 선보였던 전설적인 전시를 오늘로 불러와 재구성했다. 일종의 복원전인 셈. 프라다재단의 디렉터인 제르마노 첼란트와 건축가 렘 쿨하스가 기획한 ‘태도가 형식이 될 때:1969 베른/2013 베니스’전(11월 3일까지)에는 요제프 보이스, 브루스 나우먼, 리처드 세라, 에바 헤세 등 미술사에 우뚝 선 작가들의 당시 작품이 대거 출품됐다. 옛 자료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전 세계 미술관과 컬렉터의 도움을 얻어 전시를 엮은 것도 놀라운데다 모더니즘에 과감히 종언을 고하며 아방가르드(전위) 미술의 기치를 높이 든 기념비적인 작품은 오늘 다시 봐도 놀랍다. 특히 결과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프로세스아트, 개념미술, 아르테 포베라, 대지미술 등이 어우러져 미묘한 화음을 내고 있어 뉴욕타임스 등은 앞다퉈 호평을 쏟아냈다. 이 전시는 베니스비엔날레 기간 중 열리는 미술전 중 가장 지적이고, 가장 뛰어난 전시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한편 구찌, 발렌시아가, 보테카베네타 등을 보유한 케어링그룹의 오너이자 세계적 미술경매사 크리스티의 회장인 피노는 베니스의 옛 세관창고(도가나)를 미술관으로 개조한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아르테 포베라와 동시대 일본의 모노하(物派) 등을 주제로 소장품전을 열었다. ‘피노 회장의 화려한 컬렉션쇼’로 불리는 이번 전시는 그 규모가 압도적인데다 세계 미술계를 쥐락펴락하는 파워인물의 따끈따끈한 수집품이 대거 운집해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프라다 전시에 비해 주제와 맥락이 약한 것으로 평가돼 올해는 ‘미우치아의 승리’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선진기업에 필요한 것은 예술적 영감과 남다른 콘텐츠=프라다, 케어링그룹 같은 앞서가는 기업의 오너가 아트프로젝트에 열을 올리는 것은 ‘예술적 영감’이야말로 현대 기업경영에 있어 필수요건이기 때문이다.

특히 럭셔리 패션기업 또는 미술경매사의 경우 예술적 경쟁력이야말로 기업의 존폐를 좌우하기에 ‘아트’에 열과 성을 쏟을 수밖에 없다. 매년 여타 브랜드와는 확연히 다른 아이템을 선보이며 ‘혁신성’면에서 수위를 달리는 프라다의 경우 미우치아 프라다의 뜨거운 예술적 열정과 촉(觸)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또 피노 회장의 경우도 작금의 미술계 지형도를 컬렉션을 통해 앞장서 그려나가며, 크리스티를 세계 정상의 경매사로 키워나가고 있다. 이래저래 현대미술은 선진기업에 끊임없는 영감을 주는 화수분임에 틀림없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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