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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커 “아류 만드는 싱어송라이터, 존재 이유 없다”
아류가 없다. 팝의 문법을 따르는 것 같아 방심하는 사이에 퓨전재즈를 방불케 하는 다채로운 리듬과 연주가 자연스레 귓가로 스며든다. 하드록을 닮은 강렬한 연주는 어느새 모던록 특유의 몽환적인 표정을 짓고 있다. 예상했던 코드 진행과 멜로디는 예상을 철저히 배반하며 제 갈 길을 간다. 기승전결조차 모호하다. 그럼에도 조금도 어색함이 없다. 단언컨대 이 앨범에 담긴 음악은 한국 대중음악의 그 어떤 계보에도 속해 있지 않다. ‘독창적’ㆍ‘진보적’이라는 진부한 수식어가 결코 진부하지 않은 앨범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앨범이 신인 뮤지션의 데뷔작이라는 점이다. 에피톤 프로젝트ㆍ박주원 등 동료 뮤지션들은 그를 ‘천재’라고 불렀다. 데뷔 앨범 ‘칼레이도스코프(Kaleidoscope)’를 발매한 싱어송라이터 조커(본명 이효석)를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조커는 “대중의 귀에 이미 길들여진 음악의 틀에 무임승차하고 싶진 않았다”며 “선이 굵은 음악을 들려주되 그 안의 섬세한 감정들을 놓치지 않는 나만의 음악을 만들어내고 싶었다”고 앨범 발매 소감을 밝혔다.

사진 설명 : 데뷔 앨범 ‘칼레이도스코프(Kaleidoscope)’를 발매한 싱어송라이터 조커. [사진제공=엔라이브엔터테인먼트]

사실 조커는 신인이라고 부르는 일이 민망할 정도로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다. 그는 앨범 발매 전부터 이미 알만한 뮤지션들은 다 아는 유명 키보드 연주자였다. 그는 임재범ㆍ신승훈ㆍ이소라ㆍ김범수ㆍ김태우 등의 공연과 앨범의 연주자로 활약했다. 또한 그는 단순한 연주자를 넘어 이들의 곡에 작ㆍ편곡으로도 참여하는 등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기도 했다.

조커는 “원래 작곡을 전공했고 또 개인 솔로 앨범을 발매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세션 연주자로서 생업에 충실하고 또 함께 했던 가수들이 상당한 자율성을 보장해줘 그 안에서 나름 음악을 즐기다 보니 발매가 늦어졌다”며 “앨범에 담긴 음악은 2004년부터 최근까지 만든 곡들을 아우르는데, 진작 부지런히 앨범을 만들지 않은 것이 조금 아쉽다”고 말했다.

앨범엔 세련미 넘치는 연주와 사운드로 청자를 압도하는 첫 번째 곡 ‘로미(Romi)’를 비롯해 뒤 따라 물처럼 이어져 깔끔한 연주와 멜로디를 들려주는 ‘소 섹시(So Sexy)’와 ‘수(Sue)’, 일상의 부조리와 좌절을 무거운 록 사운드로 냉소하는 ‘21C 청춘’ㆍ‘메이플라이(May Fly)’ㆍ‘투나잇(Tonight)’, 고조된 냉소를 가라앉히는 감성적인 트랙 ‘이상’ㆍ‘에이프릴(April)’ㆍ‘눈물’, 앨범 전체에 흩어진 다양한 감정선을 추스르는 사실상 마지막 트랙 ‘2011’, 역동적인 연주로 선물처럼 귀를 즐겁게 만드는 연주곡 ‘카도시(KADOSH)’ 등 11곡이 담겨있다.

만화경(萬華鏡) 속으로 들여다보이는 무늬는 결코 다시 같은 모양을 보여주지 않지만, 그 순간만큼은 얼음 결정처럼 일종의 규칙성을 띄는 것이 특징이다. 앨범에 담긴 곡들은 저마다 만화경이란 의미를 가진 타이틀 ‘칼레이도스코프’처럼 다채롭지만 흐름에서 홀로 이탈하지 않으며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조커는 “주위의 호평은 고맙지만 냉정히 앨범을 들여다보면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앨범에 담긴 음악의 상당수는 200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곡인데, 독창적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대중음악의 수준이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조커는 데뷔작을 싱글이나 미니앨범 대신 정규앨범에 담아내는 보기 드문 선택을 했다. 녹음 과정 또한 컴퓨터에 의존하기보다 스튜디오에서 연주자들의 역량을 살리는 고전적인 방법을 택했다.

조커는 “음반 시장의 불황 때문에 정규앨범 발매를 꺼리는 현실을 잘 알지만, 곡을 받아 부르는 가수가 아닌 음악으로 이야기를 하는 싱어송라이터라면 당연히 정규앨범에 곡을 담아야 한다”며 “싱글과 미니앨범으로 대중의 간을 보며 눈앞의 결과에만 집착하는 것은 길게 보면 싱어송라이터에게 독이라고 생각한다”고 나름의 철학을 전했다. 이어 그는 “싱어송라이터라면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느냐보다 더 좋은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를 먼저 고민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며 “대중 역시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듣는 여유를 가진다면, 뮤지션들이 더 좋은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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