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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연한 파격, 독일 디자인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독일관 11일부터…주얼리·패션등 현대적 미감 총망라
독일 디자인 하면 벤츠와 BMW의 견고하면서도 탄탄한 외양이 떠오른다. 합리주의와 기능주의에 입각해 ‘통일된 질서’를 추구하는 나라이다 보니, ‘디자인 강국’이란 표현은 왠지 걸맞지 않다.

하지만 강직하고 기능적이었던 독일 디자인이 변하고 있다. 일반화된 인식 너머로, 일상의 이야기와 현대적 미감이 새록새록 더해지며 한결 유연하고 과감해졌다. 이 같은 트렌드를 살필 수 있느 자리가 마련됐다. 오는 11일 개막해 10월 20일까지 청주시 일원에서 개최되는 ‘2013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는 마침 독일을 초대국가관 국가로 선정했다. 이에 우리는 독일 현대 디자인의 여러 측면을 공예와 조형디자인을 통해 살필 수 있게 됐다.

▶엇! 이런 과감한 주얼리가 독일 것?=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성의 머리에 앙증맞은 검은 모자가 얹혀졌다. 검은 모자에선 작은 나뭇잎새 같은 조각들이 가느다란 선을 따라 휘휘 감기며 내려온다. 허리까지 찰랑거리는 검은 끈의 길이는 60cm에 이른다. 독일 디자이너 크리스티엔 엔글스버거(44)의 머리장식이다. ‘Sofree’라는 이름의 이 모자장식은 검은 면사로 줄을 휘감은 뒤, 깃털과 앤틱 조화장식을 곁들였다. 따라서 단순한 모자라기보다는 일종의 ‘헤드웨어(headwear)’에 가깝다. 모자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Soy como soy’라는 브랜드의 장신구를 만들어 온 엔글스버거는 “나는 머리에도 옷을 입히고 싶다. 꼭 몸에만 옷을 입으란 법은 없지 않는가? 단, 그 옷은 무겁거나 심각한 게 아니라 장난스럽고 가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세계 곳곳을 여행하길 즐기는 그는 여행에서 받은 영감으로 새로운 것을 끝없이 창안해낸다.

▲ 기능과 실용을 중시하던 독일 디자인이 최근 들어 유연한 파격을 추구해 화제다, 왼쪽부터 재독작가 전은미의 브로치 ‘북극곰’. 유전공학적 상상력으로 동물과 인간의 환원성을 탐색한 작품이다. 필립 사제트의 반지 ‘잃어버린 보물을 찾아서’. 스테인리스 스틸로 꽃모양을 만든 미리암 힐러의 브로치 ‘Dromaleas’. 페터 후크의 높이 52cm의 묵직한 도자기 ‘돔XXL’, 아래는 크리스티엔 엔글스버거가 디자인한 머리장식 ‘Sofree’. 모두 ‘2013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독일관 출품작이다.

주얼리 디자이너 한 베이 뤼르센(65)의 목걸이는 매우 대담하다.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우아한 진주 대신, 흰 플라스틱을 썼다. 동그란 플라스틱을 이어주는 것은 붉은 옻칠을 한 금속이다. 원형과 직선, 가벼운 플라스틱과 묵직한 은이 대비를 이루며 평범한 사람도 단박에 멋장이로 만들어버릴 것같은 목걸이다. ‘roll-on-red’라는 이름의 이 목걸이는 주얼리의 가치에 대해 지속적으로 질문해 온 뤼르센의 의도를 엿보게 한다. 그는 “흔히들 주얼리는 고급 소재를 써서 앞으로의 가치 상승을 염두에 두며 만든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고 싶다. 동시에 혁신을 원한다”며 “다양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주얼리가 목표”라고 밝혔다.

포츠담에서 개인 부티크를 운영하는 디자이너 미리암 힐러(39)의 브로치는 만개한 꽃 형상이다. 심플한 재킷에 달면 세련됨을 더할 법한 브로치의 이름은 ‘Dromaleas’. 힐러는 스테인레스 스틸에 코팅을 해서 꽃 모양의 브로치를 만들었다. 차가운 스테인리스 스틸을 절단하고 접어 이렇듯 부드러운 브로치를 만든 역발상이 새롭다.

▶명품 라벨이 옷이 되다니=스위스 출신의 패션디자이너 피아 휘쳐(54)는 전 세계 유명 패션브랜드의 라벨(상표)로 아트웨어를 만든다. ‘이브닝 라벨드레스’라고 명명된 발목 길이의 드레스에는 무려 3000여개의 럭셔리 패션 상표가 사용됐다. 휘쳐는 손바느질로 온갖 명품 브랜드의 상표를 정교하게 이어붙여 ‘세상에서 둘도 없는’ 드레스를 만들었다.

떵떵거리는 명품 브랜드의 상표들을 모아 몸에 꼭 맞는 드레스를 만든 디자이너는 “작업을 하며 자연히 명품의 속성과 가치를 끝없이 탐구하게 됐다. 이 옷은 누가 입어도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페터 하이드호프가 디자인한 서랍장은 매우 독특하다. 서랍장이라기보다는 마치 벽돌, 또는 각목을 쌓아 놓은 듯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나무로 만든 대단히 기능적인 서랍장이다. ‘쌓아 올린 나무’라는 높이 76cm의 서랍장은 서랍이 4칸이나 돼 매우 쓸모있게 디자인됐다. 하이드호프의 디자인은 목공예의 전통적 요소를 반영하면서도, 전통가구와는 거리가 먼 것이 특징이다. 이는 미묘한 파격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하이드호프는 “나무토막이라는 재료의 실제 본성에 집중하되 혁신적 오브제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독일의 현대 디자인과 공예는 기능적인 내구성과 함께 시대를 아우르는 폭넓은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실용과 기능을 중시하는 독일인 특유의 정서에, 현대의 라이프스타일을 과감하게 불어넣은 독일 디자인은 철저한 장인정신에, 예술적 성찰이 더해지며 발전하고 있다. 따라서 이는 곧 ‘스튜디오 크래프트(Studio Craft)’라는 문화적 코드로 귀결되고 있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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