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백웅기 기자ㆍ홍석호 인턴기자]
전세(傳貰)를 영어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쓸까. ‘rent’일까, ‘lease’일까? 그도 아니면 ‘housing repo(융자주택)’?
모두 틀렸다. ‘jeonse(전세)’로 쓴다. 우리 고유의 전통 문화 ‘김치’나 ‘태권도’를 발음대로 쓰는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만 보이는 독특한 임대차 제도이기에 고유명사로 쓰는 것이다.
전세는 부동산 소유자에게 일정 금액을 맡기고 그 부동산을 일정기간 빌려쓰는 제도다. 임차인이 돈을 집주인에 위탁하면서 별도의 임대료를 지불하지 않고 계약종료시 상환받는 조선시대의 가옥임대차 방법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 지금의 전세제도로 굳어졌다는 게 가장 일반적인 견해다.
이 같은 조선의 계약 방식은 중국 고유의 ‘전(典)’에서 그 근원을 찾는다. 타인에게 일정 금액을 받고 이에 대해 자신의 부동산을 사용토록 한 뒤 계약 종료시 금액을 돌려주고 사용수익도 종료하는 개념이다.
고려시대부터는 귀족, 승려, 관리 등 기득권 계층이 급전이 필요한 자작농들에게 부동산을 채권담보 형식으로 돈을 빌려주면서 이 같은 전이 행해졌다. 담보목적물의 사용수익이 이자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채권 담보로써 전이 정착된 건 농경사회의 토지에 대한 깊은 애착심이 그 배경이다. 돈이 필요한 경우에도 땅은 안 팔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전당제도를 통해 담보로 얻은 부동산의 경우 소유권 이전만 안됐지, 당사자들 사이에선 매매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 같은 전당제도가 조선으로 이어졌지만 그 대상을 가옥으로 삼은 경우는 극히 적었다. 가옥의 경우는 매매도 근대에 이르러서야 성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개항 이전까지만 해도 다섯 가정에 세를 공동부담케 하는 오가작통법(五家作通法)이 있어 인구이동이 제한된 데다, 봉건적 통치질서를 위해 농촌인구의 도시이동을 금했던 것도 집을 사고파는 것을 막는 요인 중 하나였다. 풍습상 중인 이상 신분이 타인의 집을 빌리는 건 체면상으로도 좋지 않은 것으로 간주돼 집은 거래나 전당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17~18세기 대동법 실시로 공인(貢人)들이 상업자본으로 성장하자, 부를 축적한 거상들이 양반이나 소작인을 상대로 고리대를 벌이면서 일부 몰락한 농민들이 전답과 집까지 빌려야 하는 형편에 이르게 된다.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로 인한 부산ㆍ인천ㆍ원산 개항은 급진적 변화의 시작이었다. 지방 인구가 경성으로 몰려 주택 수요가 급격히 늘었다. 이 같은 수요 급증은 전세제도 발달로 이어졌다. 가옥가격의 반값에서 70~80%에 이르는 기탁금으로 1년 정도 계약을 맺는 것이 보통이었다.
기간을 정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지만 서울에선 100일을 계약기간으로 보는 관례도 있었다. 계약 종료후 유예기간은 기와집은 15일, 초가집은 10일 정도로, 가옥 수선은 임대인이 부담하되 간단한 수선은 임차인이 하는 등의 관례도 생겨났다. 이 같은 제도가 일제강점 초반까지 인정됐지만, 1912년 공포된 조선민사령으로 우리 민간 관습에 따른 법률행위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전세권자들의 권리가 대폭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전세권이 약화된 것과는 별개로 전세제도는 확산돼, 1944년 전세관행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주택거래 유형이라는 보고도 있다. 광복 후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주택이 부족해져 자연스레 전국적으로 전세제도가 번졌다.
산업화 과정에선 빠른 속도로 도시화가 이뤄지면서 현재의 전세제도가 자리를 잡았다. 주택수요가 폭증하면서 부동산 가격 상승폭도 컸던 데다 고금리 정책이 이어지면서 빚을 내서라도 집ㆍ땅을 사는 것이 당시의 유일한 재테크 수단으로 인식됐다.
임차인 입장에선 적은 돈으로 집을 구할 수 있고, 임대인은 부동산 자산과 함께 전세보증금을 활용할 수 있다는 양쪽의 이해가 모두 맞아 떨어져 전세제도는 더 공고해졌다. 산업화 이후 전체 주거형태 대비 전세의 비율은 1975년 17.3%, 1980년 23.9%, 1990년27.8%까지 높아져, 핵심적 주거형태로 자리잡았다.
이를 거꾸로 보면 현재 전세난이 두드러진 원인도 쉽게 알 수 있다. 최근의 시장 분위기처럼 부동산 거래를 통한 시세차익 실현이 어려워지면 집주인은 기존 금융비용을 감당할 만한 돈만큼 전세금을 올리기 마련이다. 그게 아니면 보증금 상승액에 준하는 돈을 다달이 받는다거나, 아예 월세로 돌아서는 것이다. 반대로 집이 없는 사람들도 집값이 오르지 않자, 빚을 내서 집을 구매하지 않고 전세로 눌러앉는 세태가 됐다.
과거에도 전세난이 심각했던 때가 있었다. 1981년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제정해 임대차 기간이나 임차인의 보증금 일부를 보장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장 상황에 따라 임대차 방식이 다양해지는 등 구조적 변화에 따라 정부가 임대주택 공급 정책 뿐만 아니라 금융, 세제 등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처방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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