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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힘든 민초의 삶…가슴 뻐근한 현실…
‘영원한 청년조각가’ 구본주 10주기展
곡선이 아닌 직선의 삶. 그리고 인간과 세상을 사랑하며 빚은 진심의 조각.

지난 2003년, 서른일곱의 나이로 안타깝게 세상을 뜬 조각가 구본주. 그의 10주기를 추모하는 ‘세상을 사랑한 사람, 구본주’전이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서 개막됐다.

구본주는 1980년대 말 정치ㆍ사회적 격랑 속에서 노동자들의 삶을 직설적으로 표현해낸 작가다. 이른바 ‘현실주의(realism)조각’의 대표주자였던 그는 이 땅의 역사와 정치, 사회, 가정 등 갖가지 이슈들을 뚜렷한 시대의식을 바탕으로 호소력 있게 빚어냈다.

고단한 직장인의 낡은 구두에, 무거운 쇳덩이를 얹은 구본주의 대형조각 ‘하늘’.                                 [사진제공=성곡미술관]

미술관 앞마당에 들어선 한 켤레의 구두 작품이 좋은 예다. 낡아빠진 구두 위에, 이를 짓누르는 어마어마한 무게의 쇳덩어리를 올려놓은 조각은 감당하기 힘든 삶의 무게에도 묵묵히 사회를 받치고 있는 민초들의 모습을 은유한다. 구구한 설명을 하지 않았음에도 저절로 가슴이 뻐근해지는 조각이다. 초창기 작업인 ‘갑오농민전쟁’은 불의에 맞서 분연히 일어난 농민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또 나무를 깎아 실물 크기의 ‘위기의식’이란 작품에선 경찰에 쫓기는 사상범의 절박한 모습이 읽혀진다.

성곡미술관 전관 및 옥외공간에서 열리는 이번 10주기전은 구본주가 고교시절부터 작고 직전까지 제작했던 작품 중 90여점이 엄선됐다. ‘구본주식 구상표현 조각’으로 현대조각사에 큰 족적을 남긴 작업 여정은 ‘세상’ ‘사람’ ‘사랑’이란 3개의 키워드로 구분됐다. ‘세상-역사/시대정신(1986-94)’ ‘사람-사회/현실비판(92-97)’ ‘사랑-삶/현실(97-2003)’이 그것으로, 당대 현실적 이슈를 치열하게 담고자 했던 고인의 작업정신을 모두 읽을 수 있다. 출품작은 포천작업실의 유작은 물론, 국립현대미술관, 모란미술관, 개인 등이 소장하던 주요작품으로 미공개작과 에스키스도 포함됐다.

구본주는 노동자와 서민들의 척박한 삶과 일상의 깊은 주름을 어루만진 작가였다. 따라서 전시장에는 구본주의 따스한 호흡이 넘쳐난다. 날카로운 현실인식과 함께, 지극한 인간애로 빚어낸 작품에선 땀내음이 진득하게 묻어나고 있다. 현실을 향한 직설적이면서도 건강한 비판의식, 특유의 정감이 살아꿈틀대는 작품은 오늘 다시 봐도 감동적이다.

홍익대 미대와 대학원을 나온 구본주는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작업에 매달리다가 2003년 9월, 뒤에서 달려오던 차에 치‘’여 작고했다. 당시 MBC구상조각대전 대상, 모란미술작가상을 휩쓸며 촉망받던 작가는 많은 꿈을 남긴 채 생을 마감했던 것.

박천남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은 “이번 추모전은 작가들에겐 긴장과 깨달음을, 대중들에겐 척박한 작업 여건에도 무릎 꿇지 않고 스스로의 중심을 뚜렷이 세웠던 작가의 옹골찬 의지를 느끼게 할 것”이라며 “진한 사람냄새, 뜨거운 열정의 작가 구본주는 우리들의 영원한 파랑새”라고 밝혔다. 전시는 10월 13일까지. 02)737-7650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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