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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졸속,무모..뭇매 맞은 25억짜리 행사 ‘평창비엔날레’가 남긴 것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졸속, 부실, 반쪽짜리 행사.. 폐막을 닷새 앞둔 ‘2013평창비엔날레’에 쏟아지고 있는 비난입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하며 국고및 지방비 총 25억원을 들여 강원도가 올해 처음 선을 보인 평창비엔날레는 개막 전부터 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기 시작해 마지막까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강원도가 주최하고 강원문화재단이 주관한 이번 비엔날레는 피서철 성수기인 7월 20일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와 동해 앙바엑스포전시관 두 곳에서 개막돼 오는 8월31일까지 개최됩니다. 문제는 이 비엔날레의 전체적인 구성과 수준이 기대했던 것 보다 더 미흡한 데다, 관람객도 당초 목표 보다 현저히 적다는 점입니다.



주최측은 당초 최대 200만명까지 관람객을 예상했습니다. 해마다 동해의 망상해수욕장을 찾는 피서객 300만명 중 절반 정도가 전시관을 찾을 것으로 예상했고,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의 투숙객 중 50만명 정도만 관람한다면 목표관람객 200만명은 너끈히 달성할 수 있다는 기대였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전망은 너무 핑크빛으로 잡은 것이었습니다. 우선 알펜시아 리조트 투수객이 예상만큼 많지 않았고, 망상해수욕장을 찾은 이들 중 인근의 비엔날레 미디어아트 전시관을 찾은 이는 10%에도 못 미쳤습니다. 결국 비엔날레 조직위측이 발표한 관람객은 16만명(8월26일까지 잠정집계)에 불과했습니다. 폐막이 얼마 안 남았으니 이 숫자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듯합니다.



그런데 당초 논의가 되었던 ’관람객 200만명‘은 너무 높혀 잡은 감이 있습니다. 이같은 규모는 국내 비엔날레 중 수위를 달리며, 아시아를 대표하는 비엔날레로 발돋움한 광주비엔날레 조차 달성하지 못했던 수자입니다. 광주비엔날레는 1회 때인 1995년에 거국적인 홍보와 독려로 162만명이 관람했으나,이후로는 절반 아래로 줄어들었습니다. 게다가 세계 최고의 비엔날레로 손꼽히며 약 12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탈리아의 베니스비엔날레 또한 관람객이 많아야 50만~70만명 선입니다.


평창비엔날레 측은 “목표관객수 200만명은 어디까지나 잠정치였다. 동해망상 해수욕장 피서객과 알펜시아리조트를 찾는 휴양객 수를 고려해 ‘최대 200만명까지는 가능할 것같다'고 전망했던 수치였다”며 “200만명은 따라서 문서화된 공식목표는 아니었고, 내부적으론 60만명 정도를 목표로 잡았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피서객이 비엔날레 관람객으로 이어질 것이란 막연한 기대는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망상해수욕장에서 앙바엑스포 전시관은 불과 5분 거리였지만 해수욕에 지친 휴가객들은 (아무리 관람이 무료라 해도) 대부분 비엔날레를 외면했으니까요. 


더구나 비엔날레에 있어 전시의 내용이 아닌 ’관람객 수자‘에 최우선을 두는 것은 넌센스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비엔날레는 누구나 찾을만한 편안(?)하고, 달콤한 행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험적이다 못해 너무나 난해하고 도발적인 작업들이 즐비한 게 대다수의 비엔날레니까요. 혁신과 도발을 다각적으로 감행하며, 예술적 담론을 만드는 장(場)인 까닭에 선진국에서도 비엔날레는 (일반대중 보다는) 미술계 종사자및 관계자, 미술애호가 등 제한된 사람들이 주로 찾는 행사입니다.

물론 이번 평창비엔날레는 대단히 대중친화적인 작업들이 많이 포함된 것이 사실입니다. 이는 국내의 여타 비엔날레들과는 크게 다른 점입니다. 현재 국내에는 광주비엔날레를 필두로, 부산비엔날레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청주공예비엔날레 등 모두 9개의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습니다. 비엔날레는 2년마다 열리는 국제현대미술제로, 예술적 전복과 혁신을 추구하는 게 본래 좌표이지만 평창비엔날레는 초반부터 이같은 컨셉과는 거리를 두고 출발했습니다.

휴가지에서 가족단위로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미술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미술제, 유명 스타작가가 아닌 우리 주변의 평범한 작가들을 위한 미술제를 표방한 것입니다. 알펜시아리조트의 스키슬로프 위에 알록달록한 헝겊으로 오륜기를 상징하는 대지미술을 시도한다든지, 리조트 곳곳에 일반 대중이 편안히 즐길만한 조각이며 설치작품이 많이 전시된 것은 그 때문입니다. 알펜시아리조트 내 인터콘티넨탈호텔 앞 호숫가에 30여개의 대형 풍선을 부유하듯 띄어놓은 작업 등 장소적 특성을 살린 작품도 간간이 눈에 띄었습니다. 또한가지 특이한 점은 대중공모를 통한 작품설치와, ‘아트뱅크’라는 이름 아래 작가들의 출품작 중 적지않은 수를 매입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노선은 비엔날레가 지향해야 할 비전과는 너무도 달라 ‘뜬금없다’는 인상을 줍니다. 비엔날레 전체 주제는 ‘지구하모니’였지만 워낙 많은 작가의 다종다기한 작품들이 설치되다 보니 통일성도 부족했습니다. 대중친화적인 미술제, 휴가지 미술제를 지향한다면 굳이 ‘비엔날레’라는 이름을 왜 고집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평창비엔날레는 ‘제1회 강원국제미술전람회'라는 부제를 (작은 글씨체로) 병기하고 있긴합니다만 이는 단지 부제일 뿐, 대내외적으론 평창비엔날레로 홍보하고 있으니까요.

따라서 굳이 비엔날레를 고집할 게 아니라 ’평창국제미술제‘라든가 ’강원미술축전'같은 용어를 쓰는 게 차라리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제발 “추경예산이 늦게 나오는 바람에 급하게 전시를 꾸리느라 어쩔 수 없었다”느니 “많고 많은 국내외 비엔날레와 차별화된 행사를 열기 위해 눈높이를 대폭 낮췄다“느니 하는 말은 더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명색이 국제미술제인 비엔날레가, 비전문가들이 몇달 만에 ‘뚝딱’하고 만들어내는 이벤트가 되어선 곤란하니 말입니다. 작품 수자와 전시장 규모만 키워놓았을 뿐 출품작과 전시의 질적 수준이 고개를 돌리고 싶을 정도로 낮아서야 어디 동계올림픽을 개최하는 도시의 비엔날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번 비엔날레를 위해 강원도는 도비 15억원에, 국비 10억원을 투입했습니다. 재정이 매우 열악한 강원도로선 큰 투자였습니다. 그런데 과연 온당한 결정이었는지 다시금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불특정 다수가 휴가차 찾는 리조트를 무대로, 고만고만한 장식적 작품을 환경미화하듯 늘어놓는 게 비엔날레일 순 없습니다. 아무리 특별이벤트라고 해도 대학생 졸업작품까지 끌어와 전시한 것은 비엔날레라는 예술행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란 지적이 많습니다.

주최측은 이번 비엔날레가 신진작가 발굴 및 인큐베이팅, 관객친화적 비엔날레, 아트뱅크 구축이라는 세가지 노선을 잘 실천했으며, 대지미술, 국민공모전 등 기존 비엔날레에선 만나기 어려운 프로그램을 펼쳐보였다고 자평했습니다. 더구나 전체 집행예산 중 30%인 6억원을 투입해 신진및 중견작가의 조각을 매입해, 작가들의 사기를 적잖이 끌어올렸다고 덧붙였습니다.

어쨌거나 42일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와 동해망상의 앙바엑스포 전시장을 장식했던 평창비엔날레는 곧 저물어 갑니다. 불과 두 달 만에 국제미술행사를 열었기에 “비엔날레의 막을 제 때 연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뒷담화가 끊이지 않습니다. 이는 한동안 우리 문화예술계에 널리 회자될 듯합니다.

첫 행사가 이렇게 언론과 문화계로부터 뭇매와 비판을 받았던만큼 2회 미술제는 험로가 예상됩니다. 부디 출품작가수라든가 작품수같은 규모는 좀 줄여도 좋으니, 내실있고 밀도있는 미술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늬만 요란할 뿐 내실이 없는 행사는 이제 문화강국을 목표로 하는 우리로선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요.

더구나 평창은 세계 최고 수준의 스포츠축전을 열 곳이니 문화행사 또한 세계 어디에도 내놓아도 빠지지않는 수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이번 2013평창비엔날레의 사후 점검및 평가가 보다 면밀하고 객관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아울러 향후 좌표 설정및 기획, 진행 또한 전문적 연구와 논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마추어 느낌이 물씬 나는, 소박한 행사는 지역 문화축제로도 충분합니다. 앞으로 열릴 2회 평창비엔날레는 ‘평창’이라는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견줘도 손색이 없는 제대로 된 국제미술제가 되길 꿈꿔 봅니다.

동계올림픽이 제대로 잘 치뤄지길 온국민이 열망하듯 평창비엔날레 또한 갈채를 받는 비엔날레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평창만큼 대한민국에서 공기 좋고, 아름답고 소중한 천혜의 지역도 흔치않으니 말입니다. 

[사진제공=2013평창비엔날레]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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