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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명한 달빛 아래 망중한..’동구리’작가 권기수의 제주 신작전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보름달이 휘영청 뜬 어느날, 매화꽃 아래 동구리가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작은 쪽배를 타고 호수에 드리워진 달 그림자를 바라보는 동구리의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꽉 막힌 일상에 쫓기는 현대인의 소망을 담은 권기수의 신작 ‘Reflection of the Moon-Blue’이다.

권기수의 그림에는 둥근 얼굴의 동구리가 거의 빠짐없이 등장한다. 지난 2002년 처음 등장한 이래 권기수의 트레이드 마크가 돼버린 ‘동구리’는 작가 스스로의 모습(작가가 웃을 땐 동구리를 빼닮았다)이자, 마음 달랠 곳 없이 바삐 살아가는 현대인을 상징한다. 고요한 매화 정원이며 대숲에 홀로 앉은 동구리는 밝은 미소를 머금고 있지만 사실은 역설적인 웃음이다. 삶의 번뇌와 괴로움을 떨치기 위해 짓는 미소다. 작가는 각박한 현실에서 벗어나 이상향에 닿고자하는 도시인의 갈망을 싱그런 치유의 그림을 통해 어루만진다. 그래서 타이틀도 ‘The Golden Garden’이다. 

권기수 Reflection of the Moon-Blue.130x97cm. acrylic on canvas on board 2013 [사진제공=박여숙화랑 제주]

‘삶의 이치를 터득하려면 많은 걸 내려놓으라’고 속삭이는 듯한 권기수의 작품은 지난 24일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의 박여숙화랑 제주에서 개막된 개인전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오는 10월 27일까지 ‘권기수, The Golden Garden’이란 타이틀로 계속되는 전시에 작가는 안빈낙도의 삶을 드러낸 일련의 동구리 연작을 출품했다.

이번에 내놓은 신작 중에는 높은 창공에서 외줄을 타는 동구리를 그린 ‘Road’도 포함됐다. 뭉개구름이 가득한 하늘에서 홀로 줄타기를 하는 동구리는 몸을 기댈 곳도, 마음 둘 곳도 없는 도시인을 은유한다. 작가는 이 땅, 어느 한 언저리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그들의 고단한 삶을 화폭에 담는다. 그러나 권기수의 그림은 어둡지 않다. 동그란 얼굴의 동구리가 늘 씩 웃는 모습이듯, 외줄을 타면서도 미소를 짓고 있다.

권기수 The Golden Garden. 지름 100cm. acrylic on canvas on board 2013 [사진제공=박여숙화랑 제주]

홀로 대나무 숲 아래 앉아 고요함에 빠져드는 동구리를 그린 ‘The Golden Garden’은 “한 고비 또 한 고비, 그대 상심 깊어지거든 늘 푸른 바람을 먹고 그 바람에 칼을 갈아 파랗게 저를 지키는 대숲에 가보라"는 민병도의 시(詩) ‘대나무 숲’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무릉도원에 호젓히 자리잡고, 휴식을 취하는 동구리의 모습은 각자의 유토피아를 갈망하는 현대인의 마음을 정답게 파고든다.

홍익대및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권기수 작가는 한국적 정서를 세련된 조형어법으로 구현해 국내는 물론 영국 홍콩 대만 중국 등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런던 사치갤러리, 런던 플라워갤러리에서 전시를 가졌으며, 국내에서는 KIAF, 화랑미술제, 아트쇼부산 등에 박여숙화랑을 통해 참여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아르코 아트페어에서는 출품작 전량이 판매되기도 했다. 홍콩시청,대만국립미술관, 대만현대미술관, 싱가포르 아트뮤지엄에서 초청전을 가졌으며, 가을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전시를 연다. 전시관람 문의 064-792-7393

yrlee@heraldcorp.com

연남동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한 권기수 작가. [사진= 이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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