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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괴,독설의 채프만형제 “아름다운 미술? 세상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거든요”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파괴적이고도 시니컬한 작업으로 세계 현대미술계에서 큰 이슈를 일으키고 있는 영국작가 채프만 형제(Jake and Dinos Chapman)가 한국에 왔다. 이들은 서울 청담동 송은 아트스페이스에서 국내 첫 개인전을 갖는다.

이번 전시는 국제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나 아직 국내에선 제대로 다뤄지지않은 외국 작가를 정기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송은 아트스페이스의 ‘해외작가 초대전’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제이크와 디노스 채프만 형제는 인습을 타파하는 작업을 연달아 선보여온 작가. 그들의 신랄한 유머와 파괴적인 에너지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정치, 사회, 종교, 도덕성을 사정없이 까발리며 동시에를 낱낱이 비춘다. 특히 이들 형제는 전쟁, 대량학살, 환경파괴, 죽음, 소비지상주의같은 주제를 그로테스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다루고 있다. 

새로운 작업 앞에 선 디노스 채프만(왼쪽)과 제이크 채프만. 다락방이나 골동품점에 쳐박혀 있던 옛 초상화 속 주인공들은 한 때 지체 높거나 부유한 계층이었으나 채프만형제에 의해 엉뚱한 형상이 돼 현시대에 불려나왔다. [사진=이영란 기자]
 
오는 12월 7일까지 ‘The Sleep of Reason’이란 타이틀로 약 석달반 계속될 채프만형제의 전시는 지난 20년간 예민하고도 독창적인 작업으로 동시대 작가 중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채프만 형제의 일련의 주요 작업들을 한자리에서 살필 수 있다. 출품작은 조각 드로잉 회화 포함 45점이다.한국을 처음 방문한 이들 형제를 만나봤다.

-당신들의 작업은 대단히 그로테스크하다.
인간이란 존재는 소멸을 피할 수 없다. 편안하고, 단선적인 정서로는 이 복잡미묘한 대상을 해석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죽음이라든지 공포 불안 등을 외려 유쾌하게 드러내고 싶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불편한 작업들이 많이 나왔다.

-당신들의 작업은 문화권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겐 다르게 읽힐 수 있을 것같다.
그럴수 있다고 본다. 다른 문화권에서도 제대로 똑같이 해석되길 원하진 않는다. 왜냐면 지역마다 문화가 다르니까. 서구에서 진행되는 담론으로 똑같이 이해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예술이 전세계를 아우르고, 아름다와야 한다고 생각진 않는다. 그런 고정된 인식은 수용할 수 없다. 예술이 심미적인 필요가 있나? 세계에 대해서도 긍정적이어야 하나? 우리의 답은 ‘노’다. 예술이 목적성을 띄는 건 원치 않는다. 기존의 예술이 갖고 있던 것에 대해 반기를 드는 게 우리의 작업이다.

Jake and Dinos Chapman ‘Minderwertigkinder-Rat Child’, 2011_Mixed media_122 x42 x30cm [사진제공=송은아트스페이스]

-전쟁, 지옥, 파괴, 인체절단 등 불쾌한 이미지가 작업에 많이 등장한다. 그런 부정적 예술을 하는 이유는
우리는 그런 것들이야말로 세상에 대한 진정한 투영이라 생각한다. 이 것이 제대로 세상을 다루는 것이 아닌가? 세상은 미화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에 대해 어떤 세계관을 갖느냐는 개인의 신념이다. 우리가 보기에 세상은 혼돈으로 가득차 있다. 물질주의도 그렇고. 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정당한 것 아닐까? 우리는 북유럽의 시니컬하고 회의적인 세계에 끌린다,

- 작업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자연을 보존하는 문제가 많이 나온다. 살면서 그런 코드를 따라가는지?
아니다. 작가의 삶이 도덕적 가치를 반영한다고 생각진 않는다. 우리 또한 정의된 도덕체계를 반영한 도덕적인 생활을 하고 있지도 않다. 우리는 큰 차를 몰고 있고, 두세번씩 공회전도 거리낌없이 하고 있다. 사실 부정적인 정서가 유쾌한 것은 아니다. 허나 인간이란 존재는 ‘소멸’이란 피할 수 없는 숙명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다. 그들의 죽음이라든가 공포 불안 등을 거꾸로 유쾌하게 드러내려 했다.

Jake and Dinos Chapman ‘Chess Set’,2003 [사진제공=송은아트스페이스]

-당신들 작업에서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는 매우 중요한 키워드다.
우리는 고야를 좋아한다. 고야는 근대작가 중 인간심리를 투영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 이전까지 회화는 그저 종교적 회화에 그쳤다. 고야 이후부터 인간 심리가 그림에 들어갔으니 그는 새로운 표현영역을 개척한 작가다. 과연 고야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의미를 어떻게 다룰까 고민했다. 그래서 고야의 에칭을 조각 버전으로 바꾸었고, 고야 사후에 제작된 에칭 판화에 우리 식대로 터치를 가하기도 했다. (이번 한국 전시의 타이틀인 ‘The Sleep of Reason’도 고야의 에칭 판화연작 ‘The Sleep of Reason Produces Monsters’(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에서 따왔다.)

-대가인 고야의 오리지날 에칭 판화를 당신들이 훼손하는 거라곤 생각 안하나? 이에대해 비판도 적지 않다.
그런 지적을 받긴 했다. 그러나 고야의 에칭작업이긴 하지만 세번째 또는 네번째 판이다. 시중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고야의 사후에 제작된 판화는 네번째 판으로 그리 비싸지 않다. 고야의 작품 훼손했다는 말도 들었는데 우리는 흥미로운 작업을 한 것이다. 고야의 모든 에칭 작업을 전부 다루려 했으나 우리의 이 작업 이후 고야의 사후판화들의 가격이 많이 올랐다. 딜러들께서 고야의 판화값을 올려놓았다고 들었다.

-아돌프 히틀러의 그림에도 손을 댔던데
그렇다. 나치 전범 아돌프 히틀러가 그렸던 그림을 구해 아름다운 무지개 등을 그려넣었다. 단색조 그림이 우리의 리터치로 화사해졌다. 히틀러가 만약 원했던 미술학교에 들어가 화가가 됐더라면 인류사에 그 끔찍한 전쟁과 학살은 없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며 작업했다. 

Jake and Dinos Chapman ‘One Day You Will No Longer Be Loved‘ 2013.[사진제공=송은아트스페이스]

-만약 반 고흐의 드로잉이 확보된다면 마찬가지로 작업할 것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우리의 생각하는 방향에 그림이 들어맞는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런데 반 고흐의 오리지날 드로잉은 우리 앞에 주어지기 힘들지 않겠는가?

-아프리카의 에스닉한 민속조각을 차용해 맥도날드를 비판했는데.
아, ‘채프만 패밀리 컬렉션’ 연작에서 우리는 그렇게 했다. 70년 전 채프만 패밀리에서 예술품을 수집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일련의 조각 작업이다. 채프만 가문에서 소장한 아프리카의 이국적인 민속조각에 맥도날드의 로고와 맥도날드의 빅맥을 집어넣은 컨셉의 입체작품이다. 물론 채프만 패밀리의 컬렉션은 실제하진 않는다. 어디까지나 설정일 뿐이다. 맥도날드는 패스트푸드로 시작됐고, 대중에게 더 많은 자유를 준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이는 계몽주의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패스트푸드가 요즘의 인간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고 있다고 생각하나?

-인간의 욕망과 금기, 무의식을 다루고 있다. 프로이드적 시각과 맥락을 같이하는 듯하는데 동의하나?
글쎄. 우리 작업에 욕망과 터부가 들어가 있는 건 맞다. 그러나 굳이 이를 다루려 목적을 지닌 건 아니다. 어긋나거나 빗나가는 것을 다루고자 했을 뿐이다.

-예술의 무목적성을 여러차례 언급했다.
예술은 인간으로서, 작가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자유를 구가하게 한다. 경계도 없고 유연해서 좋다. 예술은 또한 침습(invasion)적인 행위다. 우리는 명시적으로 무슨 목적을 갖고 하는 걸 경계한다. 예술은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계가 주어지지 않는 주관식의 세계, 작가가 느낄 수 있는 혼돈의 장이어서 예술을 좋아한다. 우리의 목표는 많은 파급효과를 내려는 게 아니다.

Jake and Dinos Chapman ‘One Day You Will No Longer Be Loved‘ 2013.[사진제공=송은아트스페이스]

-그렇다면 예술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돈을 벌기 위해서인가?
아니다. 많은 돈벌려고 한다면 마약을 팔거나 매춘을 해야 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예술가의 역할과 책임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축적해왔던 ‘경험의 조건들’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파리의 몽마르트르 사원에 간 적이 있다. 사원으로 오르는 길가에 차가 많이 오가는데 그곳에 이젤을 놓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은 자동차를 한대도 안그리더라. 그저 아름다운 풍경이며 정물화를 그리고 있더라. 그 작가는 그게 자신의 경험인 모양인가 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조건과, 목소리를 드러내려 한다. 자기의 사상과 경험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무책임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게 더 심리적으로 불결한 것 아닌가? 세상은 무조건 아름답게 미화시키는 게 오히려 더 단편적인 것이다. 우리에겐 그것이 매우 낯선 것이다.

▶채프만형제는?= 채프만 형제는 글로벌 현대미술계에 큰 파란을 일으켰던 yBa(young British artists) 출신 작가다. yBa의 핵심멤버인 데미안 허스트 등이 골드스미스 대학 출신인 것과 달리 이들 형제는 1990년 영국 왕립 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를 졸업했다. 15년째 공동작업을 해온 채프만 브라더스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전쟁의 참상’과 같은 미술사에 커다란 전기를 마련한 작품 뿐 아니라, 맥도날드의 로날드 캐릭터같은 지극히 대중적인 아이콘까지 온갖 사회적 대상과 금기를 탐구해왔다. 초창기 머리가 2개 달린 엽기적인 여성마네킹 조각 등으로 파란을 일으킨 형제는 1999년, 전쟁의 아비규환을 다룬 ‘지옥’이란 대형 설치작업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채프만형제는 인간의 ‘이성과 상상’ 사이에서 균형잡힌 예술을 추구하고자 했던 고야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고야의 작품을 차용하거나, 고야가 다뤘던 주제를 다룸으로써, 같은 주제에 대해 더 모호하면서도 복잡미묘한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동생인 제이크 채프만의 “계몽은 이성을 맹신하게 만들었지만 고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리도 이성에 치우친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는 말은 이들의 작업을 관통하는 키워드이다.

이번 서울 전시에는 고야의 작업의 오리지널 에칭작품을 재해석해 9.5kg 순은으로 제작한 조각 ‘The Same Thing But Silver’(2007)가 나왔다. 또 공동예술사업체인 RS&A London의 의뢰로 제작한 체스작업 ‘Chess Set’(2003)도 출품됐다.

잠자리에서 어린이에게 읽어주던 계몽주의적 동화 형식을 잔혹버전으로 바꾼 ‘Bedtime Tales for Sleepless Nights’(2010)의 에칭삽화와 텍스트도 볼 수 있다. 대작 지옥(Hell)(1999)의 맥락을 잇는 설치작품 ‘Unhappy Feet’(2010)와 ‘No Woman No Cry’(2009) 도 출품됐다. 아울러 벼룩시장이나 고서점에서 판매되는 낡은 초상화에 리터치를 가한 페인팅 작품 5점도 내걸렸다. 이들 5점의 초상화 연작은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것이다. 

Jake and Dinos Chapman ‘Unhappy Feet‘(detail), 2010. Fiberglass, plastic and mixed media. 216x171x171cm [사진제공=송은아트스페이스]

채프만 형제는 다양한 작업방식과 폭넓은 주제를 통해 도덕적인 척, 완전무결한 척 하는 인간의 행위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쟁점들을 지속적으로 다뤄왔다. 이들의 작업은 때론 수용키 어려울 정도로 불쾌하거나 끔찍하다. 천박해 보이거나 과도한 성적 유머를 담은 표현들도 적지않다. 찬사와 함께 비난 또한 거세지만 채프만형제는 다루기 까다로운 예민한 주제들을 거침없이 탐구하며 인간이, 그리고 사회가 감추고 싶어하는 실체와 본령을 관객 앞에 흥미롭게 드리우고 있다. 무료관람.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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