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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 살아온 얘기 들어볼래?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선녀씨 이야기’
대학로 아트센터K 네모극장 내달 15일까지
우리 문화계에 오랜 창작 원천인 ‘어머니’. 요즘엔 ‘아버지’ 쪽으로 문화계 큰 흐름이 방향을 돌린 분위기이지만, 어머니 소재 창작도 새록새록하다.

다음달 15일까지 서울 동숭동 대학로 아트센터K 네모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선녀씨 이야기’<사진>는 또 어머니 얘기다. 자칫 식상할 뻔한 이야기는 시공간을 허문 액자식 구성, 옆집 평상에 앉아 듣는 듯 생생한 일화, 배우들의 열연 덕에 생명력을 얻었다.

막이 오르면 무대 가운데에 성인 키 높이의 큰 영정사진이 놓여있고, 그 앞에 흰 국화와 향불이 피어있다. 무대 왼편에는 큰 상이 차려져 있다. 상갓집이다. 오른쪽에선 젊은 어머니(이재은)와 인형으로 대신 표현된 아들 종우가 다정하게 얘기하고 있다. 장면이 바뀌면 15년간 가출했던 아들 종우(임호ㆍ진선규)가 뒤늦게 어머니 장례식에 나타난다. 어머니는 뇌사 판정을 받고 1년간 병상에 누워있다가 안락사했다. 큰딸 정숙과 막내딸 정은이 어머니가 수술받기 전에 녹음해 둔 유언에 따라 어머니의 호흡기를 뗀 것이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종우는 영정사진 앞에서 “선녀씨”라고 불러본다. 선녀(先女)는 일곱번째 딸로 태어나 아들보다 먼저 나왔다는 뜻으로 지어진 어머니 이름이다. 아들의 호출에 영정 속에서 미소 짓고 있던 늙은 어머니(고수희)가 영정 밖으로 걸어나오며, “니하고 한잔하고 갈란다. 엄마 살아온 얘기 들어볼래?”라며 어머니의 삶이 반추된다.

연극은 죽은 어머니가 종우에게 자신의 일생을 들려주는 액자식 구성이다. 출생부터 처녀시절의 꿈과 결혼, 포악한 성정의 남편의 폭력에 시달린 젊은 날의 장면에선 이재은이 연기한다. 장녀의 이혼, 막내딸의 혼수비용 문제, 큰아들의 죽음 등 장성한 자녀와의 갈등에서 아픔을 겪는 나이든 어머니 일화는 고수희 몫이다. 과거 회상 장면을 어머니 혼령이 옆에서 지켜보며 당시의 심경을 해설하고, 때론 장면에 적극적으로 끼어들기도 한다.

자식들 뒷바라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헌신하지만 정작 자식들로부터 버림받는 선녀 씨는, 고난의 시절을 견딘 이 땅의 모든 어머니의 이름이다. 손수건을 필참해야 한다. 데뷔 20년 만에 연극에 도전한 임호는 연습 때는 물론 본 공연에서도 눈물을 쏟았다. 영화 ‘친절한 금자 씨’, 드라마 ‘무신’ 등에 출연한 고수희의 연기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지난해 전국연극제 대상, 희곡상, 연출상, 최우수 연기상 수상작이다. 경남지역 극단 예도의 이삼우 연출이 극작과 연출을 맡았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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